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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6위 복서 대전료로 세운 순천 소천재…붕괴 위기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 보전 대상 선정
순천 유림·교육운동 역사 품어…실태조사와 긴급 보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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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유교신문) 박병섭 기자 = 일제강점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복서 서정권의 대전료와 순천 유림의 교육운동 역사를 함께 품은 근대한옥 ‘소천재(紹泉齋)’가 보전 대상지로 선정됐다.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과 달리 현장에서는 처마가 기울고 지붕 일부가 내려앉는 등 훼손이 진행되고 있어 순천시의 실태조사와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제24회 ‘이곳만은 지키자!’ 시민캠페인 수상 대상지 6곳 가운데 순천시 가곡동 원가곡마을의 소천재를 선정했다.

 

‘이곳만은 지키자!’는 훼손 위기에 놓인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시민이 직접 발굴해 사회적 관심과 보전 활동을 끌어내는 캠페인이다.

 

올해 대상지는 ▲금강수목원 ▲마산 산호리 주택 ▲순천 소천재 ▲임진강 하구 일대 ▲조지서터 인근 너럭바위 ▲청주시 송절동 백로 서식지 등이다.

 

◇ 복서 서정권과 순천 유림의 역사 품은 근대한옥

 

소천재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복싱의 신’으로 불린 서정권이 미국 원정경기에서 받은 대전료를 고향으로 보내 마련한 근대한옥으로 알려졌다.

 

서정권은 미국 원정에서 세계 6위에 올랐으며, 경기 대전료를 고향으로 보내 선산과 제각을 마련했다. 이 과정이 소천재 건립의 바탕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소천’은 일제강점기 순천에서 청년·교육운동에 참여한 서병규(1881~1953) 선생의 호다. 선생은 1920~1930년대 순천고등보통학교와 순천농업학교 설립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승평학원 운영 등에 참여했다.

 

1926년부터 1942년까지는 당시 향교 책임자인 순천향교 직원(直員)을 맡았다. 직원은 오늘날 전교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서병규는 지역 청년들이 향교 뒤편의 땅을 운동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의 건물을 청년회관으로 내주는 등 청년 교육과 지역사회 활동을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손자인 서원석 가족이 소천재에 거주하면서 건물은 ‘서원석 가옥’으로도 불렸다. 순천시가 1992년 순천대학교박물관에 의뢰해 펴낸 『순천시의 문화유적』에도 ‘서원석의 집’으로 소개됐다.

 

소천재는 소슬문을 갖춘 문간채와 앞면 5칸, 옆면 5칸 규모의 본채로 구성됐다. 본채 가운데에는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에 방을 배치했다.

 

처마 아래에는 구한말 관료이자 서예가인 해평 윤용구가 쓴 현판이 걸렸고, 건물 안팎의 기둥에는 주련이 남아 있다.

 

 

◇ 2011년 보호 요청 이후에도 훼손 계속

 

소천재는 서원석 부부가 거주할 당시까지 가족들의 관리 아래 유지됐다. 서원석이 별세하고 부인 박재옥 씨가 이사한 뒤 빈집으로 남으면서 훼손이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생전에 인근 가곡동 택지개발 과정에서 이뤄진 발파로 소천재 문간채가 무너졌다고 증언했다.

 

지역 인사들은 2011년 11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순천시에 소천재 보호와 매입을 요청했다. 당시 순천시는 행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지역 관계자들은 이후 소천재를 보존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이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본채 왼쪽 처마가 기울고 지붕 일부가 꺼져 방 안으로 빗물이 들어오는 상태다. 마당에는 대나무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접근과 관리도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 민간 기록이 보전 대상 선정으로

 

소천재의 훼손 실태를 다시 알린 것은 전통건축문화유산을 조사·기록하는 단체 ‘배무이’였다.

 

강동수 배무이 대표는 2025년 소천재를 답사한 뒤 건물의 훼손 상태와 내부 목조 구조를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개했다.

 

강 대표는 소유자 개인의 힘만으로 건물을 보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2026년 6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이곳만은 지키자!’ 캠페인에 소천재를 응모했다.

 

배무이는 응모 자료를 통해 소천재가 복서 서정권의 활동과 서병규의 교육·유림 활동, 원가곡마을의 지역사를 함께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강성호 전남대학교 연구교수는 “소천재는 1920~1930년대 순천의 지역 엘리트가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교육·청년운동을 통해 지역사회의 근대적 변화를 이끌고자 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건축사적 가치뿐 아니라 근대 순천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정근 순천향교 유림은 “순천 도심에는 향교와 옥천서원을 제외하면 전통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소천재와 원가곡마을의 역사·문화 자원을 연계해 주변 경관과 함께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오는 10월 17일 오후 2시 서울50플러스재단 동부캠퍼스에서 제24회 ‘이곳만은 지키자!’ 시상식을 열 예정이다. 소천재가 받을 상의 명칭은 시상식에서 공개된다.

 

보전 대상지 선정만으로 소천재의 붕괴를 막을 수는 없다. 순천시는 건물의 소유관계와 훼손 정도를 확인하고 긴급 안전조치와 정밀진단, 문화유산 지정 가능성, 매입 또는 민관 공동관리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민이 찾아낸 소천재의 가치가 실제 보존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순천시의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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