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5 (월)

  • 맑음동두천 12.1℃
  • 맑음강릉 15.1℃
  • 맑음서울 13.7℃
  • 맑음대전 13.9℃
  • 맑음대구 17.4℃
  • 맑음울산 16.9℃
  • 맑음광주 16.4℃
  • 맑음부산 18.8℃
  • 맑음고창 14.9℃
  • 맑음제주 19.4℃
  • 맑음강화 12.7℃
  • 맑음보은 11.7℃
  • 맑음금산 14.1℃
  • 맑음강진군 16.3℃
  • 맑음경주시 17.3℃
  • 맑음거제 17.8℃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본관을 찾아서① 강릉김씨] 왕좌 대신 명주로…김주원이 연 강릉김씨 천년 역사

신라 왕위 계승에서 밀려난 김주원, 동해안 명주에 독자적 기반 구축
김헌창의 난에도 명주는 불참…혈연 넘어선 지역 세력의 독자 노선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구글 검색에서 유교신문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강릉=유교신문) 김정기 기자 = 785년 신라 제37대 선덕왕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왕위 계승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졌다.

 

당시 왕위에 가장 가까이 있던 인물은 상대등에 해당하는 상재의 위치에 있던 김주원이었다. 이찬과 시중, 병부령을 거치며 신라 정치의 중심에 서 있던 진골 귀족이었다.

 

왕위는 김주원이 아닌 김경신에게 돌아갔다. 김경신은 제38대 원성왕으로 즉위했고, 김주원은 경주를 떠나 동해안 명주에 정착했다.

 

오늘날 강릉을 본관으로 삼는 강릉김씨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 왕좌를 바꾼 알천의 물

 

『삼국유사』 원성대왕조에는 김주원의 왕위 계승이 무산된 과정을 전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김주원이 왕으로 추대됐으나 큰비로 알천이 불어나 궁궐로 건너오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신하들은 이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김경신을 왕으로 세웠다고 기록했다.

 

김주원이 왕위를 다투지 않고 물러난 일은 후대에 ‘사양지덕’의 상징으로 전해졌다. 권력을 탐하지 않고 양보한 덕이라는 뜻이다.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다른 해석도 제기된다. 당시 군사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김경신이 정변을 일으켜 왕위를 차지했고, 알천의 홍수 이야기는 불규칙한 왕위 계승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승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김주원이 스스로 왕위를 양보했는지, 정치적 대결에서 밀려났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알천의 물을 사이에 두고 신라 왕실의 권력 구도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명주군왕이 되다

 

경주를 떠난 김주원은 기존의 토지와 친족 기반이 있던 명주로 내려왔다. 명주는 현재의 강릉을 중심으로 양양과 삼척, 울진, 평해 등 동해안 일대를 아우르던 지역이다.

 

원성왕은 김주원을 명주군왕으로 책봉하고 동해안 여러 지역을 식읍으로 내려준 것으로 전한다. 책봉 시기는 자료에 따라 786년과 787년으로 엇갈린다.

 

787년으로 기록할 경우 재위 연도는 원성왕 3년이다. 일부 자료에 나타나는 ‘787년 원성왕 2년’ 표기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명주군왕의 지위가 일반적인 지방관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 김주원과 그 후손들은 명주를 중심으로 군사·경제적 기반을 구축하고 일정한 자치권을 행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학계에서는 당시 명주가 신라 왕실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김주원 가문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정치 질서를 형성했다고 본다. 강릉김씨가 단순한 혈연 집단을 넘어 영동 지역의 유력 세력으로 성장한 배경이다.

 

◇ 성씨가 된 지역, 명주

 

강릉김씨는 김주원을 시조로 받든다. 계보는 태종무열왕계 후손으로 전하지만, 구체적인 계통을 두고는 기록과 연구에 차이가 있다.

 

기존에는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후손으로 보는 설명이 널리 알려졌다. 최근 연구에서는 셋째 아들 문왕의 계통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확인되는 핵심은 김주원이 신라 왕실의 진골 귀족이었고, 명주에 정착한 뒤 그의 후손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세력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본관은 단순히 조상의 출신지를 표시하는 지명이 아니다. 한 가문이 정치·사회적 기반을 형성하고 대를 이어 살아온 역사적 공간이다.

 

강릉김씨에게 명주는 왕위 계승에서 밀려난 시조가 새로운 터전을 일군 곳이자 가문의 이름이 된 땅이었다.

 

◇ 아들의 반란, 움직이지 않은 명주

 

김주원의 아들 김헌창은 822년 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국호를 ‘장안’, 연호를 ‘경운’으로 정하고 신라 조정에 맞섰다.

 

김헌창의 거병에는 신라 9주 가운데 5주가 호응했다. 신라 하대 왕위 계승을 둘러싼 불만과 지방 세력의 동요가 컸음을 보여준다.

 

정작 김주원 가문의 근거지인 명주는 반란에 참여하지 않았다. 혈연관계만 놓고 보면 김헌창에게 가장 먼저 호응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었다.

 

명주의 불참은 김주원 가문과 지역 세력이 하나의 정치적 입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헌창의 선택과 명주 세력의 이해관계가 달랐다는 의미다.

 

이를 충절이나 배신이라는 단순한 잣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신라 말 지방 사회가 혈연뿐 아니라 지역의 생존과 정치적 현실에 따라 움직였다는 증거에 가깝다.

 

김헌창의 난은 진압됐고, 825년에는 아들 김범문이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 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진 명주의 기반

 

김주원의 후손들은 신라가 기울어가는 과정에서도 명주를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했다.

 

후손으로 전하는 김순식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부했다. 그는 왕씨 성을 받고 대광의 지위에 오르며 고려의 새로운 정치 질서에 편입됐다.

 

신라 왕실에서 출발한 가문이 명주의 지방 세력으로 성장한 뒤 고려 왕조의 통합 과정에 참여한 것이다. 강릉김씨의 역사는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지방 사회의 변화를 함께 보여준다.

 

이후 강릉김씨는 여러 갈래의 파로 나뉘어 전국으로 퍼졌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와 재상, 학자와 문인을 배출하며 명문가의 위상을 이어갔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강릉김씨 인구는 17만9천593명이다.

 

◇ 왕위를 잃고 얻은 천년의 본관

 

김주원은 신라의 왕이 되지 못했다. 그가 경주에 남아 다시 권력을 다퉜다면 강릉김씨라는 본관의 역사는 시작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는 명주로 물러났고, 후손들은 그곳에서 천년이 넘는 가문의 뿌리를 내렸다.

 

전승은 이를 자리를 다투지 않은 사양의 덕으로 기억한다. 역사학은 신라 하대의 치열한 권력투쟁과 지방 세력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두 시각을 함께 살펴볼 때 김주원은 미화된 설화 속 인물이 아닌, 왕권과 지방의 경계에서 새로운 역사를 연 인물로 다가온다.

 

강릉김씨의 본관은 왕위를 잃은 자리에서 시작됐다. 그 선택과 기억은 명주군왕릉과 능향대제를 통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본관과 성씨는 무엇인가?

 

성씨(姓氏)는 한 사람의 혈통과 가계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오늘날에는 ‘김·이·박’처럼 성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지만, 본래 성(姓)과 씨(氏)는 구분됐다.

 

성은 공통 조상을 중심으로 한 큰 혈연집단을 나타냈고, 씨는 그 안에서 갈라진 계통이나 거주지, 관직 등을 표시하는 이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개념이 합쳐져 오늘날의 성씨가 됐다.

 

본관(本貫)은 한 성씨의 시조나 중시조가 처음 터를 잡았거나 가문이 형성된 지역을 말한다. 개인의 출생지나 현재 거주지가 아니라 해당 가문의 역사적 연고지다.

 

같은 김씨라도 본관에 따라 경주김씨·김해김씨·강릉김씨 등으로 나뉜다. 성은 같아도 시조와 계통, 가문이 형성된 지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본관이 같다고 해서 현재 모두 가까운 친족인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여러 파로 갈라지고 전국으로 흩어졌기 때문에 정확한 관계는 족보와 계보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본관은 한 가문의 출발점인 동시에 지역의 역사를 담은 이름이다. 시조의 삶과 후손의 이동, 혼인과 관직,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이 본관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강릉김씨의 본관인 강릉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시조 김주원이 신라 왕위 계승에서 밀려난 뒤 명주에 정착해 새로운 정치·생활 기반을 마련한 역사에서 비롯됐다. 당시 명주가 오늘날 강릉에 해당한다.

 

따라서 ‘본관을 찾아서’는 유명 성씨와 인물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가문의 뿌리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시대의 변화, 선조가 남긴 정신을 함께 살펴보는 기획이다.

관련기사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