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라는 말이 있다. 손님을 정성껏 맞이한다는 뜻으로, 단순히 웃으며 친절하게 응대하는 수준을 넘어 손님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말하기 전에 헤아리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미리 준비하는 일본 특유의 접객 정신을 가리킨다.
말의 뿌리는 손님을 대접하고 정성스럽게 대한다는 뜻의 ‘모테나스(もてなす·持て成す)’에서 찾는다. 이 말은 일본의 다도 문화와 결합하면서 손님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상징하게 됐고,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적 가치로도 자리 잡았다.
2013년 도쿄올림픽 유치 과정에서는 다키가와 크리스텔이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 연단에 올라 한 음절씩 끊어 “오·모·테·나·시”라고 소개했다. 일본은 이 한마디를 통해 세계인을 세심하게 맞이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강조했고, 오모테나시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26년, 일본은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통해 다시 아시아의 손님을 맞았다. 그런데 대회를 지켜보면 일본이 그토록 자랑했던 오모테나시가 정작 어디에 있는지 되묻게 된다. 준비 부족으로 선수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다른 나라의 아픈 역사까지 건드린 행사를 온전한 환대라고 부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비용 절감과 지속가능성을 내세워 대규모 선수촌을 새로 건설하지 않았다. 선수와 관계자들은 기존 호텔과 크루즈선, 컨테이너형 임시 숙소 등에 분산 배치됐다.
국제대회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설을 건설한 뒤 대회가 끝나면 사용처를 찾지 못하는 ‘화이트 엘리펀트’를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비용을 줄인 결과가 선수들의 불편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대회를 앞두고 각국 선수단에서는 숙소 부족과 비좁은 공간 등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국 선수단도 입국 과정에서 셔틀버스 배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공항에서 수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고, 다른 나라 선수단에서도 숙박과 수송을 둘러싼 불만이 이어졌다.
절약은 운영의 미덕이 될 수 있지만 준비 부족까지 미덕으로 포장할 수는 없다. 조직위원회가 비용을 줄이고 그 대가를 선수들이 불편으로 치러야 한다면, 이는 지속가능한 대회라기보다 책임과 부담을 선수들에게 떠넘긴 대회에 가깝다.
선수에게 숙소와 이동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먹고 자고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모든 과정이 컨디션과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오랜 시간 대회를 준비한 선수들이 숙소를 걱정하고 공항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체력을 소모하게 만들었다면, 대회 운영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부터 놓쳤다고 봐야 한다.
오모테나시가 손님이 말하기 전에 필요한 것을 헤아리는 마음이라면 조직위원회가 가장 먼저 살폈어야 할 대상은 선수들이었다. 숙소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이동 수단도 제때 제공하지 못하면서 화려한 구호를 내건다고 환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손님을 불편하게 해놓고 주인이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환대가 아니라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도 있었다. 선수단 숙소로 사용되는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호의 환영행사에 ‘나고야 오모테나시 무장대’가 등장한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분장한 공연자들이 아시아 각국에서 온 선수단을 맞았다.
아이치·나고야 지역에서 이들을 지역 역사와 관광을 상징하는 인물로 활용해 왔다는 설명만으로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다. 한국인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 지역의 관광상품이나 흥미로운 역사 인물이 아니라 1592년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국토를 폐허로 만든 침략 전쟁의 책임자를 아시아 각국 선수단을 맞는 환영행사에 등장시킨 셈이다.
대한체육회가 아시아올림픽평의회와 대회 조직위원회에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한 것은 당연한 대응이다.
조직위원회는 특정 역사적 인물을 옹호하거나 미화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지역 문화와 관광을 소개하기 위한 행사였다고 해명했다. 국가와 지역에 따라 표현이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앞으로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 같은 해명은 오히려 준비 과정의 허술함을 드러낸다. 국제대회를 개최하면서 참가국이 어떤 역사적 상처를 지니고 있는지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몰랐다면 무지이고, 알고도 강행했다면 무례다.
환대는 주인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일방적으로 펼쳐놓는 행사가 아니다. 손님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먼저 생각하는 데서 시작한다. 지역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라도 초대받은 손님에게 침략과 학살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면 국제대회의 환영 인물로 적절한지부터 따져봤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야말로 일본이 말해 온 오모테나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가 내건 메시지는 ‘Imagine One Asia’다. 아시아가 하나 되는 모습을 상상하자면서 한쪽에서는 침략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을 환영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입으로는 하나의 아시아를 말하면서 행사장에서는 이웃 나라의 역사적 기억을 외면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배려 부족을 넘어 역사 감수성의 부재로 볼 수밖에 없다.
개회식에서도 아쉬움은 이어졌다. 3만석 규모의 주 경기장에는 빈자리가 적지 않았고 일부 선수단이 행사 도중 자리를 떠나는 모습도 보였다. 거대한 경기장과 화려한 공연만으로 국제대회의 품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선수에게 제때 버스를 보내고, 편히 쉴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하며, 참가국이 지닌 역사적 기억을 세심하게 살피는 일이 먼저다. 국제대회의 수준은 거창한 구호나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이처럼 작아 보이는 기본에서 드러난다.
우리에게도 손님을 맞는 오래된 예가 있다. 유교에서는 손님을 맞이하는 접빈(接賓)을 단순히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행위로 여기지 않았다. 상대를 존중하고 예를 다해 맞이하는 것이 접빈의 본뜻이며, 형식보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것이 예의 출발이었다.
일본의 오모테나시 역시 본래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드러난 혼선은 더욱 씁쓸하다. 오모테나시를 국가 이미지로 내세운 나라에서 손님들은 공항에 발이 묶였고 잠자리를 걱정했으며, 환영행사에서는 침략의 역사를 마주해야 했다.
환대는 주인이 선언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손님이 존중받았다고 느껴야 비로소 환대가 된다.
손님을 세워놓고 비용부터 계산하고, 준비 부족에서 비롯된 불편을 감수하게 하며, 아픈 역사까지 헤아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환대의 실패다. 그 앞에 ‘지속가능성’이나 ‘지역 문화’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선수들의 불편보다 비용 절감이 먼저였는가. 참가국의 역사적 상처보다 지역 관광 홍보가 중요했는가. 아시아가 하나 되자고 말하기 전에 이웃 나라를 존중할 준비는 돼 있었는가.
지금 나고야에서 보이는 것은 오모테나시가 아니다.
손님의 불편과 상처를 헤아리지 못한 주인만의 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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