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졌으면 갚아야 한다. 돈을 빌린 사람이 약속대로 갚는 것은 금융을 지탱하는 기본 원칙이고, 채권자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 역시 존중돼야 한다.
그런데 그 원칙이 10년을 넘어 20년 이상 이어지고, 한 사람의 경제적 실패가 장기추심의 대상이 되는 동안 금융회사는 그 채권에서 계속 수익을 얻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그 금융회사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책은행이라면 단순히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는 설명만으로 충분한지 묻게 된다.
김용만 의원실이 IBK기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업은행은 2003년 상록수제일차유동화전문유한회사에 100만원을 출자해 지분 10%를 보유했고, 2008년부터 올해까지 총 215억6,596만원을 배당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00만원과 215억6,596만원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눈길을 끈다. 2008년 배당금만 28억7,488만원이었고 2014년까지 매년 10억원을 넘는 배당이 이어졌으며, 지난해에도 5억7,442만원, 올해도 5억1,521만원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100만원을 일반적인 의미의 투자원금으로 보고 215억원을 단순 투자수익으로 계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상록수의 채권 인수와 자금조달 구조, 기업은행이 부담한 경제적 비용 등을 함께 살펴야 정확한 수익구조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업은행이 100만원을 출자한 주주로서 20년 가까이 215억원이 넘는 배당을 받았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수익을 만들어낸 구조의 반대편에 누가 있었느냐는 점이다.
상록수는 2003년 카드대란 당시 발생한 부실 카드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출자해 설립한 유동화전문회사다. 당시 신용위기에 빠진 금융소비자 가운데 일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채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금융위원회가 올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상록수가 보유한 새도약기금 대상 장기연체채권만 7,235억원에 달했다. 새도약기금은 장기간 연체된 채무 가운데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채권을 매입해 상환 능력을 심사한 뒤 소각이나 채무조정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결국 한쪽에서는 오랫동안 갚지 못한 빚 때문에 정상적인 금융생활로 돌아가지 못한 국민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장기연체채권을 관리하고 회수하는 구조를 통해 주주에게 배당이 돌아갔다.
여기서 유교신문이 주목하는 것은 배당의 많고 적음만이 아니다. 국민의 어려움이 금융상품이 되고, 장기연체가 채권이 되며, 그 채권에서 발생한 회수금이 수익과 배당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20년 넘게 지속됐다는 점이다.
적법한 채권 회수와 배당 자체를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금융회사가 채권을 회수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주주에게 이익을 배분하는 것은 금융시장의 일반적인 작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기업은행에 더 묻고 싶다.
국민의 어려움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를 국책은행은 어떤 기준으로 바라봤는가. 장기연체 금융소비자의 재기를 고민해야 할 시점은 없었는가. 20년 넘게 배당을 받으면서 출자자로서 상록수의 장기추심과 채권관리 방식에 어떤 목소리를 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설명 없이 공익과 금융포용만 이야기한다면 국민의 눈에는 결국 ‘공익으로 포장된 이자놀이’처럼 비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기업은행이 상록수에서 받은 돈은 이자가 아니라 배당이다. 그럼에도 ‘이자놀이’라는 거친 표현이 떠오르는 이유는 금융소비자의 장기연체가 채권이 되고, 그 채권에서 회수된 돈이 장기간 금융회사의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 때문이다.
돈을 빌린 국민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만큼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채무자에게 “왜 갚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금융회사에는 “왜 20년 넘게 이 사람을 추심의 대상으로 남겨뒀느냐”고 물을 수 있어야 금융의 책임도 균형을 갖는다.
기업은행은 일반 시중은행과 다르다. 국책은행이라는 이름에는 수익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이 함께 따라붙는다.
그 공공성은 사회공헌사업을 몇 건 했는지, 취약계층에 얼마를 지원했는지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작 자신의 수익구조 안에서 어려움에 처한 금융소비자를 어떻게 대했는지가 더 본질적인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금융은 신용으로 움직이고 신용은 결국 사람 사이의 믿음에서 출발한다. 은행이 고객의 신용을 평가한다면 금융소비자인 국민 역시 은행이 지켜온 신의(信義)를 평가할 권리가 있다.
금융소비자는 채권 회수표에 적힌 숫자가 아니다.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고, 직장을 잃을 수도 있으며,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빚의 늪에 빠질 수도 있는 국민이다.
그렇다고 모든 빚을 없던 일로 만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상환 책임을 요구하되, 정상적인 경제생활로 돌아올 가능성마저 잃은 사람을 20년 넘게 추심의 굴레에 묶어두는 것이 과연 우리 금융이 지켜야 할 원칙인지는 이제 따져볼 때가 됐다.
상록수의 장기연체채권은 공적 정리 절차에 들어갔다. 시간이 흐르면 법인도 정리되고 채권 역시 장부에서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23년 동안 금융소비자의 어려움 위에서 어떤 수익이 만들어졌고, 국책은행이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까지 함께 청산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행에 묻는다.
국민의 어려움은 금융회사의 수익이 되어도 좋은가. 공익을 말하는 국책은행이 장기연체채권에서 오랜 기간 배당을 받아온 것은 국민에게 어떤 금융으로 기억될 것인가.
금융소비자인 국민의 이름으로 기업은행의 신의(信義)를 묻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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