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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溫故而知新】 나를 살리는 단무지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구글 검색에서 유교신문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추석이었다. 20세기 후반에 태어나 21세기 전반을 사는 사람은 설, 정월 대보름, 추석이 과거에는 얼마나 대단한 명절이었는지 모른다. 그 대단함을 여기에 일일이 풀면 요새 유행하는 ‘늙ㅋㅋ’나 ‘라떼’라며 우습게 여겨질 뿐일 테니 생략하겠다. ‘늙ㅋㅋ’는 ‘아이스께끼’처럼 연속극 '응답하라 1980'에서나 들을 수 있는 과거의 생소한 생활 언어를 세대 차이를 풍자하는 유머의 소재로 삼는 것이고, ‘라떼’는 “흠...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과거의 회상을 젊은 세대가 시답잖게 여긴다는 은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때는 말인데, 일 년 동안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이 아니면 감히 먹을 수 없는 음식, 아니면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에나 먹었지 이제는 굳이 먹을 이유도 구할 곳도 없는 음식들이 많았다며 개구리 뒷다리나 참새 구이를 얘기하면 기겁을 할 것이다. 그중에는 사라져도 진작에 사라졌을 것 같은데 아직 꿋꿋하게 버티는 음식도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노란 단무지’다. 그 시절 학교나 일터로 싸갔던 도시락 반찬의 9할은 간장에 절인 콩이나 노란색 단무지였다. 아, 단무지! 소금에 절인 무에 노란 색소와 귀한 설탕을 대신한 사카린 푼 물이면 끝이었던 단무지야말로 어린 백성들의 생존을 떠받쳤던 반찬의 제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음식이 아닌 단무지가 하나 또 있다. 밥상의 반찬이 아니라 인생의 천년 반찬인 ‘단순, 무식, 지속’이다. 오늘도 TV에 출연하는 온갖 달인들의 기막힌 실력은 하나같이 이 단무지가 몸에 밴 결과다. 수제 만두를 만드는 달인이 감각으로 집어 드는 만두소의 양은 그때마다 거의 똑같고, 수십 년 경력의 포클레인 기사가 땅바닥에 깔린 날계란을 자유자재로 들어 올린다. 관록의 정치인 박지원 의원은 다선의 비결을 묻자 ‘금귀월래(金歸月來)’라고 대답했다. 금요일이면 지역구로 가서 월요일이면 여의도로 돌아오는 일정의 무한 반복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하는 일의 가장 기본을 ‘단순 무식하게 지속하는 것’으로써 달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이토록 소중한 인생 반찬 단무지의 비결은 현대인들이 어느 날 깨달은 것이 아니라 고대인들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금백련출홍로(精金百鍊出紅爐 좋은 쇠는 백 번을 단련해야 화로에서 나온다),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 매화는 혹독한 추위를 극복한 후에야 맑은 향기를 뿜는다), 인봉간난현기절(人逢艱難顯其節 사람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절개가 드러난다) 같은 훌륭한 가르침은 죄다 고대 중국에서 비롯된 유교의 오대 경전 중 하나로 공자께서 편찬하신 것으로 알려진 『시경(詩經)』 등 옛 교훈에 나오는 것들이고, 우리 조상께서도 성공의 조건에 대해 ‘거미는 줄로 놀아야 쓰는 법’,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라는 단무지의 비결을 진작에 설파하지 않으셨던가.

 

‘달인 시리즈’로 큰 인기를 얻은 연예인 김병만 씨가 펴낸 자서전의 표지에 적힌 문구인 ‘쉬지 않고 했습니다. 기어서라도 가겠습니다. 가진 건 꿈밖에 없었습니다. 될 때까지 했습니다’가 단무지의 가르침을 생생하게 입증한다. 남보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으면 다른 무엇보다 남보다 더 쓰고, 쓰고, 쓰고 또 써야 한다.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 한강은 기자가 언제 가장 행복하냐고 묻자 ‘머릿속에서 문장을 굴릴 때’라고 대답했다. 세계적인 대문호도 날마다 하는 일은 그저 쓰고 또 쓰는 일이다. 우리 아마추어가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 저들 프로는 자신이 눈 뜨면 하는 일을 그냥 한다. 이제, 인생의 큰 도전을 결심한 청년이 기대에 차서 고찰(古刹)의 큰스님을 찾아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 여쭈었더니 큰스님께서 그 즉시 답하셨다.

 

“한눈팔지 말고 쭉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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