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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농지 전수조사, 고려 말 토지개혁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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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농지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누가 농지를 소유하고 실제로 경작하는지 확인해 투기성 농지를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행정정보와 항공사진을 활용한 기본조사를 마치고 현장 중심의 심층조사를 진행 중이며, 조사 결과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농지의 현실을 살피는 일은 필요하다. 농사를 짓겠다며 땅을 취득한 사람이 개발이익만 기다리는 동안, 정작 농사를 지을 사람은 땅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 문제는 조사로 드러난 토지 관계를 누구를 위해 바로잡느냐에 있다.

 

◇ 고려 말, 권세가의 땅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려 말에는 권세가의 토지 겸병과 대규모 농장 확대가 국가 재정을 흔들고 농민의 경작 기반을 압박했다. 조준 등 개혁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전(私田) 개혁을 추진했고, 고려는 1391년 과전법을 제정했다. 토지 문제를 장부의 착오에 그치지 않는 권력과 분배의 문제로 본 것이다.

 

그렇다고 과전법을 농민에게 땅을 고르게 나눠준 제도로 미화할 수는 없다. 개혁은 권세가의 토지 지배를 제약하려 했지만, 새로 마련된 과전의 주요 수조권은 관료에게 지급됐다. 누가 개혁의 대상이 되고 누가 새 제도의 혜택을 받는지까지 살펴야 역사에서 온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오늘의 농지 전수조사에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위장 경작과 투기성 보유를 밝혀낸 뒤 그 농지가 실제 농민의 경작 기회로 이어지는가? 임차농과 청년농의 어려움은 줄어드는가. 적발 건수만 늘고 농지를 이용하는 구조는 그대로라면 조사만으로 경자유전이 실현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 조선의 양전은 조사 과정도 공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은 토지를 측량해 양안(量案)에 기록했다. 『경국대전』은 원칙적으로 20년마다 양전을 실시하도록 규정했다. 토지의 현황을 파악해야 세금을 부과하고 누락된 토지를 바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농지 전수조사와 목적과 제도는 다르지만, 국가가 토지의 실제 상태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살펴볼 만한 역사다.

 

양전은 조사 방법이 잘못되면 농민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다. 『성종실록』에는 1494년, 양전 과정에서 토지를 지나치게 많이 측량해 백성의 원망을 샀다는 보고를 들은 성종이 호소를 살피고 "묵은땅을 정상 경작지로 처리한 곳이 있는지 조사하라"고 지시한 기록이 있다. 장부를 바로잡으려던 조사가 잘못된 장부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농지 전수조사에서도 서류와 현장 사정이 다를 때는 농민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 고령이나 질병으로 직접 경작하기 어려워졌는지, 상속받은 농지를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 실제 경작자의 권리는 무엇인지 살피는 절차가 필요하다. 조사 기준과 이의 제기 방법을 농민이 이해할 수 있게 알리는 일도 조사의 일부다.

 

◇ 향약의 ‘서로 바로잡고 서로 돕는’ 뜻

 

맹자는 인정(仁政)이 토지의 경계를 바로잡는 데서 시작한다고 했다. 토지 관계가 분명하지 않으면 분배와 조세도 공평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 말은 오늘의 농지 조사에도 원칙이 될 수 있다. 경계를 바로잡는 일은 농민의 삶을 살피는 일과 함께 가야 한다.

 

조선 향촌의 향약에는 잘못을 서로 바로잡는 ‘과실상규(過失相規)’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이 함께 있었다. 향약을 오늘의 행정제도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지역의 자율 규약 역시 힘 있는 이들의 통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잘못을 바로잡는 일과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함께 놓았다는 점은 되새길 만하다.

 

정부는 명백한 투기성 위반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고, 농촌의 관행에서 비롯된 위반은 현실에 맞게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구분이 현장에서 지켜지는지가 관건이다. 투기 목적의 위장 경작에는 엄격하되, 생계를 이어온 농민에게는 소명과 정비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고려 말 토지개혁은 권세가의 토지 지배를 바로잡는 일이 왜 필요한지 보여준다. 조선의 양전은 그 과정에서 약한 사람에게 잘못된 부담을 지우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농지 전수조사의 성과는 얼마나 많은 농지를 적발했는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투기성 농지를 정확히 가려내고, 실제 경작자의 권리를 지키며, 농민이 농지를 이용할 기회를 넓혔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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