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신문) 오흥녕 기자 = ‘유교 최고의 의례’인 추기석전이 음력 8월 상정일(上丁日)인 지난 9월 20일(음력 8월 10일 정유(丁酉)) 전국 대부분의 향교에서 봉행됐다.
창간 이후 57년째 성균관 및 전국 향교의 춘기석전 및 추기석전의 모습을 보도해 온 본지는 물론이고, 전국 각지의 언론도 광역단체장·지역단체장·지방의회 의장 등의 주요 인사가 초헌관·아헌관·종헌관 등으로 참여한 모습을 집중보도하여 모처럼 유교 행사가 주목을 받았는데 ‘음력 8월 상정일 봉행’이라는 오랜 원칙을 지킨 향교로 9월 28일 오후 3시까지 관련 기사가 보도된 곳은 다음과 같다.(그 외 많은 향교가 9월 20일 봉행한 것으로 추정됨)
▶가평향교 ▶강릉향교 ▶강양향교 ▶거제향교 ▶거창향교 ▶경산향교 ▶경주향교 ▶고산향교 ▶고성향교(경남) ▶고창향교 ▶광주향교 ▶기장향교 ▶능주향교 ▶단성향교 ▶대구향교 ▶대정향교 ▶동래향교 ▶동복향교 ▶무안향교 ▶무장향교 ▶문경향교 ▶부안향교 ▶산청향교 ▶삼가향교 ▶삼척향교 ▶상주향교 ▶양구향교 ▶양천향교 ▶언양향교 ▶연풍향교 ▶영덕향교 ▶영암향교 ▶영월향교 ▶영해향교 ▶옥천향교 ▶온양향교 ▶용담향교 ▶울산향교 ▶울진향교 ▶원주향교 ▶음성향교 ▶의흥향교 ▶자인향교 ▶장수향교 ▶전주향교 ▶정선향교 ▶정의향교 ▶제주향교 ▶지도향교 ▶진잠향교 ▶창원향교 ▶철원향교 ▶청도향교 ▶청산향교 ▶청양향교 ▶청주향교 ▶초계향교 ▶칠원향교 ▶태안향교 ▶평해향교 ▶하동향교 ▶하양향교 ▶함양향교 ▶함창향교 ▶합천향교 ▶홍천향교 ▶화순향교 ▶화천향교 ▶회덕향교 ▶횡성향교 ▶흥덕향교
‘음력 8월 상정일’이 아닌 9월 21일, 9월 28일, 9월 29일, 10월 7일 등의 다른 날짜에 봉행한다고 알려진 곳들도 있는데 그곳 관계자들은 “오래전부터 해왔던 날짜이다” “예전에 성균관에서 날짜를 여러 번 바꿔서 혼란이 발생했다가 내부 논의를 거쳐 지켜나가기로 정한 날짜이다”라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유교 종단 중앙기관인 성균관(관장 최종수)도 매우 이례적으로 1주일을 늦춰 9월 28일에 봉행했는데 “지방에서 봉행한 유림들이 서울 성균관으로 올라와 참석함으로써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한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음”이 주요 목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1. 유교 최고의 의례’ 석전의 의미와 역사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표준국어대사전 홈페이지에서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문묘(文廟)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라고 정의되어 있는 석전(釋奠)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단어이지만 유교문화에 관심이 있거나 유림(儒林)을 자처하는 이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개념이다.
제23·24·26·27·28·29대 성균관장으로 최장수 기간 재임하며 대한민국 종교계의 대표 지도자였던 최근덕(崔根德, 1933-2024) 원임 성균관장이 성균관대학교 유학과 교수로 재임하던 지난 1995년에 작성하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등록한 석전에 관한 설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교 경전인 『주례』·『예기』에서 본래 석전은 산천에 베풀기도 하고 혹은 묘사에 베풀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학교에서 올리기도 했으나 시대를 내려오면서 학교의 의식만을 뜻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석(釋)은 ‘놓다(舍也)’·‘두다(置也)’의 뜻이고, 전(奠)은 ‘그치다(停也)’의 뜻으로서 ‘제물을 올릴(薦饌)’ 따름이고 ‘시동을 맞이하는(迎尸)’ 등의 제사 절차는 갖추어 베풀지 않았다... 석전은 석채(釋菜)·석전(舍奠)·정제(丁祭)·상정제(上丁祭) 등의 일컬음이 있는데 정제니 상정제니 하는 것은 석전을 봄 2월(음력), 가을 8월(음력)의 상정일(上丁日: 첫 丁日)에 모시기 때문이다... 주대(周代)에는 순·우·탕·문왕을 선성(先聖)으로 모시는 것이 고대 중국의 관례였다. 한나라 이후 유교를 국교로 받들게 되자 공자를 점차 선성·선사의 자리로 올려 문묘의 주향(主享)으로 모시는 동시에 석전으로 우러러 모시는 관례가 정착되었다. 후한의 명제(明帝) 같은 제왕은 주공(周公)을 선성, 공자를 선사로 삼아 공자의 고택을 찾아가서 석전을 올리기도 하였다. 위·수·당나라 이후로는 대체로 공자를 선성, 안회(顔回)를 선사로 받들어 석전을 올렸다. 명나라에 와서 태학(太學)의 문묘를 대성전(大成殿)이라 일컬어 석전을 올리는 사당으로 확립이 되었다.」
372년 고구려의 태학 설립, 백제의 다양한 유교문화 모습, 648년 김춘추(뒷날 태종무열왕)의 중국 당나라 석전 의식 참관 등의 내용에 이어 본격적으로 유교문화가 왕실 및 상류층을 중심으로 전파되던 고려와 유교가 국가통치이념 및 사회운영원리로 작용했던 조선에서의 석전 봉행 사실을 자세히 설명한 최근덕 원임 성균관장은 ‘지금도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에서는 해마다 봄(음력 2월)과 가을(음력 8월)의 상정일에 석전을 봉행하고 있다’고 하며 석전 봉행일을 다시 언급했다.
여기서 강조한 상정일(上丁日)은 매달 천간(天干)이 정(丁)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날을 뜻하는데 예를 들어 정축(丁丑), 정묘(丁卯), 정사(丁巳), 정미(丁未), 정유(丁酉), 정해(丁亥)로 표시되는 날짜가 모두 정일(丁日)이지만 ‘처음’의 의미를 가진 ‘상(上)’의 개념에 맞춰 올해 병오년(丙午年) 음력 8월의 상정일은 지난 9월 20일(음력 8월 10일 정유(丁酉))이었다.
천간 중 ‘정(丁)’이 선택된 이유는 정성스럽다, 조용하고 단정하다, 성숙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학문과 사도의 상징으로서 불꽃이 번지듯 학문과 가르침을 세상에 넓히고,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가다듬어 성현을 모시는 정밀함(精密)에 부합한다 하여 정일(丁日)로 정해졌다고 알려지고 있다.
유교가 시작된 중국에서는 주나라 시대부터 이미 선사(先師)와 선성(先聖)에게 학교에서 제사를 지냈고, 유교를 국교로 채택한 한나라에서는 황제가 공자의 고향인 취푸에 나아가 제사 지내고 태학에 공자와 72제자를 모시며 공식 국가 제례로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이후로도 계속하여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 봉행이 관례화되었으나 ‘하늘의 변괴’로 판단되던 일식(日蝕·日食)이 있을 때는 불가피하게 날짜가 변경된 사례도 확인된다.
■ 홍무 7년(1374), 봄 두 번째 달의 첫 번째 정일에 일식이 있었으므로 두 번째 정일로 바꾸어 시행하였다(洪武七年 仲春上丁日食 改用仲丁) - 『명회전(明會典)』
중국의 유교문화가 전래된 한반도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석전이 봉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유교를 국교로 채택한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가 개성 수창궁에서 즉위한 1392년 7월 17일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은 8월 8일에 예문춘추관 태학사(藝文春秋館太學士) 민제(閔霽, 태종 이방원의 장인)에게 명하여 (개성에 있는) 문묘에서 (가을) 석전제를 지내게 했다.
국가 예법을 정리한 대표적인 책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권1 길례(吉禮) 시일(時日)은 ‘무릇 제사에는 일정한 날이 있다(凡祀有常日者)’라는 문구로 시작하여 각각의 제사 지내는 날을 규정했는데 ‘중춘과 중추의 상정(上丁)에는 문선왕에게 석전을 지내고, 삭망(초하루·보름)에는 문선왕에게 전을 드린다(仲春仲秋上丁 釋奠文宣王 朔望 奠文宣王)’라고 명시하여 봄의 가운데인 음력 2월과 가을의 가운데인 음력 8월의 상정일에 문묘 석전이 봉행됨을 명시했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권2 길례(吉禮)에서는 왕세자, 유사(有司), 주현(州縣)의 석전 봉행하는 법을 각각 구분하여 설명하기까지 했는데 이렇듯 날짜와 절차 등에 담긴 의미까지 중시했던 조선시대의 유교 전통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의궤』 등에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되었다.
2. 유교의 본(本)고장 중국이 배워갔던 한국의 유교 석전
유교가 탄생하고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중국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으며 유교 본래의 모습과 자료를 상당수 영구 상실했다.
특히 1966년 5월부터 1976년 10월까지 진행된 ‘무산계급 문화대혁명(无产阶级文化大革命, Great Proletarian Cultural Revolution)’은 1981년 6월 27일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1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건국 이래 당의 일부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하며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당, 국가와 인민은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입었다. 이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 동지가 시작하고 지도한 것이다’라는 공식 표현이 들어갔을 정도로 중국 사회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파사구(破四舊, 낡은 사상·낡은 문화·낡은 풍속·낡은 관습을 타파하자)” “문화, 교육, 정치, 가족 등 모든 것에서 옛것을 모조리 숙청하자”는 구호로 상징되듯이 지난 1700년대까지 세계 최고의 강국을 형성했던 중국의 모든 문화재 파괴와 2천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식인의 숙청 등 그 내용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당연히 전통을 상징하는 유교전통문화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1966년 11월 29일에 산둥성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 무덤 주위로 모여든 홍위병들은 역대 황제들에 의해 ‘대성지공문선왕(大成至公文宣王)’으로 추숭된 비석을 부수고, 공자는 물론이고 후손의 무덤마저 닥치는 대로 파냈으며, 심지어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신의 목에 끈을 묶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내거는 등 4주의 기간 동안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에 난입해 천 년 이상 보존되어 오던 유물과 유적을 상당수 파괴했다.
공묘 핵심 건물인 대성전의 공자 신위와 대형 공자 흙상, 10철 및 제자들의 상이 망치로 부서지고 불태워졌으며, 당·송·원·명·청대에 걸쳐 세워진 수천 개의 역사적 비석들도 부서지거나 쓰러진 것은 물론이고, 국가급 문물과 고서적 약 10만여 권(14~15만권으로 추정하기도 함)이 불에 타거나 파손되었는데 이 때에 중국이 가지고 있던 석전 관련 대부분의 자료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중국 정부는 공자의 고향 취푸의 공묘·공부·공림을 복원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으며, 매년 중국국제공자문화절(中國國際孔子文化節) 및 공제공자대전(公祭孔子大典)을 성대하게 개최하여 유교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려 애쓰고 있다.
한국의 유교 종단도 유교 중흥에 발을 맞춰 지난 2024년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이뤄진 ‘2024 중국국제공자문화절(中國國際孔子文化節)·갑진년공제공자대전(甲辰年公祭孔子大典)’에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을 단장으로 하는 29명의 성균관 대표단(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 안장환 성균관 부관장, 남후식 성균관 부관장 겸 성균관유도회총본부 부회장, 정영숙·장정희 성균관유도회총본부 부회장, 민해원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 명예회장, 이재학 임실향교 전교, 이춘배 성균관유도회 공주지부 회장, 김기현 효산서원 원장, 정수연 효산서원 부원장, 류희목 영남선비문화수련원 사무총장, 김도영 원광대학교 교수, 김숙자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자문위원 겸 (사)석전대제보존회 이사, 민인순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자문위원 겸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 중앙위원, 김영희 성균관여성유도회 양구지부 회장, 최경지 성균관여성유도회 양구지부 전 회장, 주은숙 성균관여성유도회 언양지부 회장, 박광춘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사무총장, 서민철 성균관유도회총본부 기획실장, 전수연 성균관유도회총본부 기획팀장, 김시연 대학생유도회 총무국장, 정승환 대학생유도회 편집국장, 김옥자·김재문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원, 류한옥 임실향교 사무국장, 이석우 파이낸셜뉴스 북경특파원, 오흥녕 유교신문 주간, 공정 통역)이 공식 참석하기도 했다.
한편 뒤늦게 유교전통문화가 국가 및 사회적으로 매우 유용함을 깨달은 중국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사라져 도저히 복원이 불가능한 석전의 내용을 다시 파악하기 위해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교의 원형을 그나마 보존하고 있다’고 평가받던 한국유교의 본부인 성균관에 접촉을 시도하였다.
오랫동안 성균관대 유학과 교수를 지내며 한국유교 연구를 이끌다가 총장까지 역임한 직후 성균관장에 취임한 김경수(金敬洙) 제21·22대 관장과 역시 성균관대 유학과 교수로 근무하며 젊은 시절부터 성균관에 관여하며 부관장 등을 역임했던 최근덕(崔根德) 제23·24·26·27·28·29대 관장은 넓은 마음으로 중국 측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더하여 한국방송공사(KBS)가 성균관 석전의 과정을 촬영하도록 허락했으며, 일부 배워간 내용으로 진행되는 중국 석전의 모습을 참관하기 위해 현지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던 사실이 본지 전신인 <유교신보>에 기록되어 있다.
1990년 3월 3일에 2천여 명의 참례객이 함께한 가운데 봉행된 성균관 춘기석전은 KBS가 모든 과정을 공식 촬영하고 편집하여 중국 측에게 제공되어 이후의 석전 봉행의 기초 자료로 사용되었으며, 당시 관련 논의를 함께 진행했던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음력 2월 상정일에 춘기석전, 음력 8월 상정일에 추기석전을 봉행한다는 기본 원칙도 당연히 함께 전달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1990년 9월 22일부터 10월 7일까지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11회 아시안게임의 개막문화행사로 한국의 석전대제가 초청되기도 했다.
김경수 제21대 관장을 중심으로 하는 성균관은 최근덕 성균관 부관장 겸 성균관대 유학과 교수의 주도 아래에 헌관 등 집례자 33명, 악사 60명, 행사요원 6명 등 약 100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구성하고, 문체부 등의 정부 기관과도 유기적으로 협력했던 사실이 본지 전신인 <유교신보>와 <경향신문> 등의 일반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 후에도 중국 측의 문의와 참관은 여러 차례 이어졌는데 지난 1990년대와 2000년대 선배유림들의 논의 속에서 몇 차례나 석전 봉행일이 변경되었던 사실을 오랜 유림 생활을 해온 이들은 이미 아는 바이나 그 이후에 유림에 입문한 이들은 ‘성균관과 향교들마다 석전 봉행일이 왜 다른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내용 파악도 못한 채로 예전부터 해왔던 날짜에 맞춰 진행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하니 중앙과 지방이 같은 날짜에 한꺼번에 중요 행사를 진행하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등의 주요 이웃종단과 너무 대비되는 모습이다.
3. 인위적인 참례 인원 증가를 보여주기 위해 편법을 시도한 ‘공기 2577년 성균관 추기석전’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서울 문묘 성균관의 춘기·추기석전은 단순하게 때가 되면 그냥 진행하는 행사가 아니라 한국유교의 전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자 공부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을 더욱 우러러 받들며 유교인, 유림으로서의 올바른 삶을 다짐하는 의례였다.
조선 왕조에서 왕세자 및 영의정을 비롯한 주요 관료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매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고위 인사들의 참여는 물론이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등의 대통령들이 매번 금일봉(金一封)으로 표시되는 헌성금과 청와대 고위 인사를 보내 축하해왔으며 KBS, MBC, 연합뉴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당시를 대표하는 언론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뤘다.
그러나 지난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종교계를 이끄는 위상이었던 유교 종단과 성균관은 관장을 비롯한 성균관 집행부의 무능과 무리한 연임 시도, 의욕 없는 직원들의 장기 재직과 미래 비전 부재, 중흥을 이루기 위한 목표 인원수조차 설정하지 않는 유림지도자들의 무사안일주의, 공개적이고 사회 보편적 기준 및 절차로 진행되지 않는 예산안 수립·집행·정산·공표와 재산 관리, 특정 인물 몇 사람만의 단합으로 이뤄진 각종 제도 변경, 수없이 많은 근거자료조차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독단적으로 진행한 의례 진행, 유림의 급속한 고령화와 청·장년층 유입 저조 등이 맞물리며 이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퇴행을 거듭했다.
여기에 더하여 대한민국의 종교 업무를 관할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 관계자조차 믿지 않는 ‘1천만 유림’ ‘2천만 유림’의 표현들이 각종 회의와 행사마다 남발되며 정부 고위 인사, 정치권, 서울특별시, 이웃종단, 기타 주요 인사들은 물론이고 유교를 본분으로 설립되었던 성균관대 주요 보직자 및 학생, 주한외국인, 일반 국민들도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성균관을 오랫동안 출입했던 이들만으로 조촐하게 봉행하고는 몇 배나 인원을 부풀려 마치 많은 이들이 함께한 것처럼 눈속임하는 관행이 되풀이 되어왔다.
아울러 ‘의례를 가장 중시한다’는 유교 종단 중앙기관 성균관은 지난 2025년 11월 27일 개최된 ‘2025년도 성균관 정기총회’에서 2026년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설명할 때는 춘·추기 석전 봉행과 관련하여 ‘2·8 상정일(춘기 (양력) 3월 24일, 추기 (양력) 9월 20일)’이라고 명시하여 원래대로 진행할 것임을 전국 유림에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석가모니의 탄생일인 매년 음력 4월 8일에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진행하는 불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기념일로 매년 양력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 행사를 여는 천주교 및 기독교, 창시자 박중빈의 대각과 종단의 개교를 기념하며 매년 양력 4월 28일에 ‘대각개교절’을 개최하는 원불교 등 한국의 주요 4대 종단처럼 원칙을 지키지 않고, ‘유교 최고의 의례’이자 가장 큰 행사인 석전의 봉행 일자를 이례적으로 1주일이나 늦췄다.
더군다나 그렇게 바꾼 이유가 “향교는 원래대로 먼저 봉행하고, 대신에 9월 28일의 성균관 석전에 가급적 많이 참석해 달라. 우리도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니 그런 논리라면 차라리 성균관 명륜당 앞마당의 은행나무 단풍을 구경하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매일 수백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양력 10월 말~11월 초의 어느 맑은 날을 선택하여 추기석전을 봉행하는 것이 ‘인원수 채우기’에는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
서울 문묘 성균관 석전이 가지는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고려하여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과거 문화재청 시절부터 매년 5,400만 원(춘기석전 및 추기석전 각 2,700만 원) 정도의 국비를 (사)국가무형문화재 석전대제보존회(이사장 최종수 성균관장)를 통해 성균관에 지원해 왔고, 석전 당일에 들어오는 헌성금 약 2천여만 원 내외를 보태어 봄과 가을의 석전마다 대략 5,000만 원 정도의 금액이 준비 및 봉행 과정에 사용되어 왔는데 이번 석전을 앞두고 전국에 발송한 공문에서 성균관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투입되지 않았던 1억 원을 사용하겠음을 알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투명해야 하는 성균관 석전 비용의 입·출금 세부 내역은 성균관 총회, 중앙종무회의 등의 자리에서 단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아 “일반 언론에 보도되는 사진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참례 인원이 항상 몇 배 부풀려지는 것도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등의 각종 추측을 스스로 불러 일으키고 있다.
4.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의 석전 봉행, 이제 지킬 필요조차 없나?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추석을 앞두고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번 추석에 차례나 제사를 지내겠다’는 응답이 30%에 그친 결과가 발표되어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변화하는 사회 흐름 속에서 지킬 것은 지키고, 변할 것은 변해야겠으나 무엇을 지키고, 어떤 것을 바꿀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유교 최고의 의례’이던 석전조차 유교 종단 전체의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이 성균관 집행부의 일방 선언으로 1주일이나 늦춰짐으로써 여기에 대한 유림들의 다양한 평가가 전해지고 있다.
“예전의 추상(秋霜)같던 어른들이 지금 상황을 봤으면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다” “우리 것, 전통문화에 대해 가장 보수적이고 원칙론자여야 할 유림이 스스로 가장 중요한 원칙을 어겼으니 앞으로 설과 추석 명절을 없애자는 주장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각종 의례서와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확인되는 것을 지키지 않았다” 등의 의견이 전해지는 가운데 지난 2022년 추석을 앞두고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명절 차례상 간소화」를 발표하던 상황과 비교하는 여론도 있다.
당시의 발표 내용은 이번 추석을 앞두고 여러 언론에서 다시 언급되기도 했는데 국민적인 환대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상 대대로 이어온 것을 훼손한 것이니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던 이들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번 성균관 추기석전 봉행일 변경에 대해서는 대부분 일언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으며 침묵하고 있다.
한편 지난 9월 25일 추석 당일의 ‘음력 8월 성균관 망분향례’에서 육철희 신시민운동연합 의장(재단법인 성균관 교육원장,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전 사무총장, 성균관유교문화활성화사업단 전 단장, 성균관 전례위원, 성균관대 유학과 졸업)은 「석전일 변경을 개탄한다-성균관은 석전 날짜 변경의 이유를 밝히라」는 성명서를 배포하다가 성균관 총무처 관계자의 격렬한 제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명서에서 육철희 의장은 ‘성균관과 향교에서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석전 향사를 봉행하는 것은 한국유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사적 행사이다’ ‘석전은... 음복과 향음주례와 대사례가 있는 것인데... 향사이므로 공부자의 생일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도 명분에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석전일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추기석전을 상정일이 아닌 공부자탄강일에 봉행해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 굳이 변경해서 해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타탕한 이유가 무엇이고, 어떤 절차를 거쳐서 결정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체계가 없고, 말이 체계가 없으면 일이 성공하지 못하고, 일이 성공하지 못하면 예절과 음악이 일어날 수 없음을 명심하고 석전일 변경으로 유림의 정체성을 훼손한 것에 대해 유림 사회에 대한 사죄와 엄중한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국가로부터 지원되는 수천만 원의 국비로 인해 지역의 향교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일무단(佾舞團)과 악단(樂團)이 초청되므로 성균관 석전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어떻게 세련되게 준비하고, 홍보하고, 진행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외국인 관광객 및 한국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공자의 고향인 중국 취푸 등에서 진행되는 유교 행사의 석전이나 일무 공연을 직접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느끼듯이 좀 딱딱한 분위기의 중국과 달리 한국의 석전은 경건하고 엄숙하면서도 예의를 다하는 모습을 통해 원래의 유교가 지향하는 자기 수양, 인간다움의 추구, 세상의 조화와 번영에로의 헌신, 겸손의 미덕 등을 추구해 왔다.
선배유림들에게 배워간 ‘유교 본(本)고장’ 중국,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봉행한다’고 적고 있는 각종 국가 기록물과 언론 보도, “유교 석전 날짜가 왜 이번에 달라졌나요?” 질문하는 정부·정치권·이웃종단·언론인·사회지도층 인사들, “지방 향교는 날짜를 바꾸지 않는데 성균관은 왜 수시로 날짜를 바꾸느냐?”고 항의하는 유림들에게 유교 종단 중앙기관 성균관은 이번의 ‘추기석전 1주일 연기 봉행’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
2
3
4
5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