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자이크민주주의》의 저자 백왕순 모자이크민주주의평화그룹 대표와의 2번째 인터뷰. 이번 인터뷰에서는 87년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 ‘3분의 2 합의제’ 구상을 살펴본다. 백 대표는 '51대49 정치'를 넘어서야 한다며, 에너지나 연금과 같은 장기 국가 과제는 '3분의2 합의제'로 가자고 제안한다. 그는 '합의'가 정책 지속성을 결정한다고 보고 87체제의 병폐인 '부수는 정치'에서 '쌓는 정치'로 가자고 역설했다. <편집자 주>
(유교신문) 김철우 기자 = 백왕순 대표는 ‘유기적 세계관’으로 정치 철학을 정립하면, 세상에 쓸모없거나 배제되어야 할 존재는 결코 없다는 입장이다. 모든 생명과 구성원이 그물망처럼 긴밀히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이기 때문에,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도우며 공존하는 관계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지향이 달라도 결코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상생을 위해 공존해야 할 ‘동반자’인 셈이다.
정당 역시 다양한 주권자의 서로 다른 삶과 가치를 대변하는 대리인이다. 여당과 야당이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주권자를 대표하는 파트너로서 상대를 존중하고 대화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 사람과 자연의 관계도 이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 자연은 인간의 욕망을 위한 정복과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숨 쉬고 순환하는 공존의 대상이다. 인간과 자연, 나와 타자, 여당과 야당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 이것이 바로 ‘의식의 대전환’이자 《모자이크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는 유기적 세계관이다.
백 대표는 정치 지도자의 이러한 철학적 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 철학이 현실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사회 시스템과 제도의 변화가 필연적으로 연동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영 논리와 대결 구도를 넘어, 실질적인 대화와 협치가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놓자는 것이다.
백 대표의 문제의식은 바로 ‘87년 체제’의 구조적 한계에서 출발한다.
“1987년 체제의 가장 절박한 시대적 과제는 군부독재의 부활을 막고 민주적 절차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거의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날의 ‘87년 체제’는 권력을 쥔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며 끝없는 갈등과 대결만을 양산하는 질곡의 구조가 되었습니다. 대화와 협치가 실종된 정치는 진정한 민주주의라 부를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주권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제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새로운 민주주의의 틀을 세워야 합니다.”
그는 1987년 체제가 권위주의 시대를 종식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한다. 실제로 1987년 개헌은 장기집권과 독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한 5년 단임제를 도입했고,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백 대표는 반독재라는 시대적 과제 속에서 형성된 정치 시스템과 문화가, 오늘날 다원화되고 성숙해진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와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진영 간의 극한 대결 정치는 승자독식에서 잉태됩니다. 다자 구도에서 대통령이 전체 과반의 표를 얻지 못해도 권한만큼은 100%를 독점합니다. 헌법에는 삼권분립이 명시되어 있지만, 제왕적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취약한 시스템입니다.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일탈을 통제할 실질적인 수단이 ‘탄핵’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가 제도의 비극입니다.”
그가 가장 심각하게 진단하는 병폐는 선거 승리 집단이 모든 권력과 국가 정책의 결정권을 독점하는 승자독식 구조다. 이를 백 대표는 ‘승자독식 51대 49의 정치’라고 규정한다. 과반 다수결이라는 형식적 논리로 밀어붙이면, 반대편에 선 49%의 국민은 국정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기 마련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패자의 불복과 분노를 부르고, 정치 전체를 극단적 대결과 투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백 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에게 집중된 제왕적 권력을 내각 및 국회와 수평적으로 나누고, 협치가 구조적으로 작동하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분권형 4년 중임제 개헌이 절실합니다. 헌법에 대통령의 권한을 책임총리에게 대폭 분권하는 내용을 명문화하고, 권력형 비리와 정부를 감시할 감사원 등을 국회 산하로 이관해야 합니다. 아울러 중앙정부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지방정부로 과감히 이양하는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을 함께 추진해야 합니다.”
그는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외교·안보와 남북관계를 책임지고, 국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내정을 총괄하는 분권형 책임총리제(이원집정부제)를 제안한다. 총리의 의회 선출을 통해 독립성과 국정 책임을 보장하고, 지방정부는 500만 명 이상의 메가시티 권역으로 재편해 자율적인 국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대통령의 민주적 대표성과 정당성을 확고히 뒷받침하기 위한 ‘결선투표제’ 도입도 필수 과제로 꼽는다.
“소선거구제를 통해 국회의원을 1명만 뽑는 현행 선거제도의 개혁 역시 필수적입니다. 단 1표만 앞서도 당선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현행 제도는 주권자 절반에 가까운 표심을 가차 없이 ‘사표(死票)’로 만듭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함께 완전개방형 비례대표제를 결합해야 합니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가 결합된 구조에서는 여야가 사생결단의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국정을 잘 이끌어도 야당으로서는 결코 박수를 보낼 수 없다. 상대 진영의 성공은 곧 자신의 집권 실패를 의미하기에,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발목을 꺾어야만 하는 적대적 공생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만약 한 지역구에서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 독점을 깨고 다양한 민심을 대변하는 소수 정당들의 의회 진출이 가능해진다. 유권자의 소중한 표가 사표로 버려지지 않고, 특정 정당이 의석을 독식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국회는 자연스럽게 연대와 연정, 타협의 협치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
아울러 당 대표와 당 지도부가 쥐고 흔들던 공천권을 유권자에게 돌려주는 ‘완전개방형 비례대표제’ 도입도 함께 주장한다. 유럽 등 정치 선진국에서 폭넓게 채택하고 있는 이 제도는 유권자가 1차로 지지 정당에 투표해 해당 선거구에서 정당별 의석수를 결정하고, 2차로 해당 정당의 후보 명부 가운데 직접 원하는 인물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정당 지도부의 줄 세우기 공천이 아니라, 시민들의 직접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당선 순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백왕순 대표가 《모자이크 민주주의》에서 제안하는 제도적 해법 중 가장 독창적인 방안은 바로 ‘3분의 2 합의제’다.
“단순 과반 다수결 체제에서는 51%의 다수가 49%의 소수를 굳이 설득할 이유가 없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3분의 2의 동의라는 문턱을 마련해두면, 반대편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지 않고는 의사결정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모자이크 민주주의》는 3분의 2 합의를 단순한 의결 비율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 대화의 테이블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제도화된 공존의 장치’로 규정한다. 서로 상충하는 두 개의 주장을 기계적으로 반반씩 타협하는 봉합이 아니라, 치열한 대화를 통해 양측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질적으로 새로운 ‘제3의 대안’을 창조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현행 헌법에도 특별다수제 원리는 이미 녹아 있다. 헌법 개정안(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나 대통령 탄핵소추, 국회의원 제명 등 헌정질서의 근간을 다룰 때 3분의 2 요건을 엄격히 적용한다. 시민단체나 성숙한 조직의 의사결정 역시 만장일치에 가까운 합의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분명한 원칙과 전제가 있다. 백 대표는 ‘모든 정책을 3분의 2로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일률적 적용에는 선을 긋는다.
“당장 모든 정책을 ‘3분의 2’ 요건으로 묶어버리면 3분의 1을 가진 소수 세력이 국정을 전면 마비시키는 ‘발목잡기’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의 지속성을 담보해야 할 중장기 핵심 과제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국민연금 개혁, 백년대계 교육 정책,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정책 등 국가와 미래세대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과제만큼은 여야와 주권자가 충분한 숙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자는 취지다.
“1년이고 2년이고 충분히 토론하고 사회적 숙의를 거쳐야 할 사안들이 있습니다. 당장은 의사결정 속도가 다소 더뎌 보일지 몰라도, 이렇게 국민적 합의로 형성된 정책은 정권이 교체되어도 뒤흔들리지 않고 백년지대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일방적인 속도’보다 ‘공존의 지속 가능성’을 우선하는 질서 있는 합의 민주주의로 요약된다.
“정권 교체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는 안 돼”
백 대표가 이러한 합의 정치의 절박성을 뼈저리게 체감한 현장은 바로 평화·통일운동이었다. 남북 간의 대화와 합의가 정권 교체에 따라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지 않으려면, 한 정권의 단발성 업적이 아니라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회 비준 동의’를 거치는 단단한 제도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절감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국가의 기본 틀과 역사적 합의가 원점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유럽의 정치가 전임 정부의 성과 위에 다음 층을 쌓아 올리는 ‘쌓는 정치’라면, 우리의 정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부가 세운 기둥을 모조리 부수고 바닥부터 새로 짓는 ‘단절과 파괴의 정치’에 머물러 있습니다.”
정책을 둘러싼 정당 간 시각차는 당연하지만, 국가의 미래 전략마저 정권의 향방에 따라 요동치는 혼란은 이제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백 대표는 이 현장 경험을 통해 “여야 협치의 깊이가 곧 대한민국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한다”는 확신에 도달했고, 그 결론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3분의 2 합의제’다.
“상대를 설득하고 배려하지 않고는 국가의 중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정치를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모자이크 예술에서 단 하나의 조각이라도 깨지거나 배제되면 온전한 작품이 될 수 없듯이, 모자이크 민주주의 역시 크고 작은 다양한 조각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간직한 채 조화롭게 맞물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승자가 패자를 배제하는 냉혹한 정치를 끝내고, 서로 다른 주권자의 조각들이 어우러지는 정치. 백왕순 대표가 열고자 하는 ‘협치의 광장’은 바로 이 유기적 세계관과 모자이크 철학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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