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5년 10월 18일 서울시 광진구 용당산 호텔에서 ‘한국 제(諸) 종교의 공동 과제’를 주제로 열린 우리나라 6대 종교인 최초의 대화모임은 이후에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창립으로 이어지며 국내 종교 간 대화 운동의 초기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 자리에서는 동양 종교(불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는 하루속히 자체 개혁을 통한 현대화를 해야 하고, 서양에서 온 종교(개신교, 천주교)는 하루속히 토착화가 필요함이 강조되었다.
이후 ‘현대화’와 ‘토착화’는 각 종교의 최대 화두가 되었고, 유교 역시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유림 조직의 대중화’, ‘유교 이론의 현대화’, ‘선비정신의 행동화’를 슬로건으로 자체 개혁에 박차를 가하며 1990년대에 ‘장정’(지금의 ‘종헌’)을 제정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체계적인 종단 체제를 만들어 나갔다.
종교단체에서 종단은 같은 신앙과 교리를 공유하는 개별 사원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주는 중앙의 핵심조직이자 최고 의결기관으로서 그 존재 이유와 핵심 역할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교리의 정통성 수호이다. 종조(宗祖)의 가르침을 받들고, 올바르게 해석된 내용이 담긴 표준화된 경전을 만들어 신도들에게 일관된 신앙적 방향을 제시하되 만약 누구라도 이것을 왜곡되거나 자의적 해석으로 사이비, 이단의 길로 이끈다면 단호하게 배척하고 퇴출시켜야 한다.
둘째, 효율적인 조직 관리와 행정 지원이다. 성직자 및 신도들에 대한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자격 심사를 거쳐 서품 및 상벌을 적용하며, 이전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잘 관리하여 이후로도 튼튼한 물적 토대 위에서 이어질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공익에 부합하는 사회적 역할의 수행이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소외와 고통을 느끼는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전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신도뿐만 아니라 국민 및 세계인과 함께 공유하며 재난, 전쟁, 질병 등의 상황 발생시 평소에 배우고 익혔던 대로 나눔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넷째, 선교 및 대중화이다. 현대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미디어, 문화 행사, 학술 연구 등을 활용한 효과적인 포교 방법을 개발 및 지원하고, 종교 간의 평화 도모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되 가장 본질적인 생존법은 결국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신도를 확보하는 것임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종단은 개별 종교 시설이 가진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고, 본연의 가치를 사회에 체계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지휘본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서의 지금 성균관 집행부는 몇 점이라는 점수조차 매기기 어려울 정도의 낙제생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임명장을 준 자들이 바깥에서 유교와 성균관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사이비와 이단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유림도 아닌 이가 유림 조직 지도자로 있는데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알지 못하는 척하니 ‘교리의 정통성 수호’ 임무 위반이다.
석전교육원 폐지, 임원 교육 미실시, 검증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임원 양산, 해종 행위자 미처벌, (유일한 재산인) 서울 성북동 1만 평 땅에 대한 근저당 설정, 20억 원을 훌쩍 넘긴 빚, 분식회계를 통한 실정법 위반 자행 등으로 ‘효율적인 조직 관리와 행정 지원’ 임무 외면이다.
『논어』·『맹자』 등의 기본 경전 원본 하나 없고, 재난·전쟁·질병 등의 사회적 고난기에 성명서 발표나 성금 모금조차 하지 않으며, 일왕생일파티에 참석하여 국민감정을 거스르고 12·3 내란(2024년 불법비상계엄) 동조 입장 전파로 인해 ‘유교 종단=꼴통 집단’으로 인식시켰으니 ‘공익에 부합하는 사회적 역할의 수행’ 임무 역행이다.
로마교황청·천주교와 공동 개최하는 행사에 돈 한 푼 내지 않으며 준비된 시설 이용을 요구해 빈축을 사고, 정부의 인구주택총조사에 아무런 준비 및 대응을 하지 않아 사상 최악의 유교인 숫자 발표를 앞두고 있으며, 4년째 재임하며 단 한 번도 유림증원 목표숫자를 말하지 않으며 틈만 나면 ‘1천만 유림’ ‘2천만 유림’의 우스갯소리를 하니 ‘선교 및 대중화’ 임무 포기이다.
이쯤 되면 조용히 지내면서 임기 종료를 기다리거나 더 이상 불법·편법·위법·무법·멸법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지난 9월 28일에 공기 2577년 추기석전을 봉행하며 진도를 한층 더 나아갔다.
유림이라면 항상 염두에 두고 살펴야 하는 『국조오례의서례』에 분명히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석전을 봉행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지난 2025년 11월의 정기총회에서 ‘2026년 주요 업무 계획 내용이다’라며 발표했던 ‘음력 8월 상정일, 양력 9월 20일’의 날짜를 외면하며 1주일이나 늦게 봉행했다.
“우리도 현대화의 입장에서 다른 나라들이 양력으로 공부자탄강일을 경축하는 흐름을 따라야 한다”고 했던 지난 시기의 추기석전일 변경은 차라리 명분이라도 있었으나 이번에는 오로지 “많은 인원이 참석해야 하니 향교는 원래대로 봉행하고, 되도록 많이 성균관 석전에 와 달라”고 했다니 이걸 사기라고 칭한다.
더욱 가관은 성균관 집행부가 배포한 보도자료 및 관계자들의 설명을 들은 언론들이 「성균관, 해방 후 최대 규모 석전 봉행」「전국 유림 3000명 참석」 등의 제목으로 허위 사실이 담긴 기사를 유포한 점이다.
가장 엄격하고 원론적이어야 하는 유교 종단의 중앙기관인 성균관이 원칙도, 명분도, 실제도 없이 ‘1주일 후속 날짜 실시’로 그나마 예년의 200~300명보다는 훨씬 많은 참례객이 모였으나 그 자리의 언론사 기자, 정부 및 이웃종단 관계자는 물론이고, 큰 행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아무리 많이 잡아도 1천 명 내외였다.
1945년 광복 이후 성균관을 복원하고, 전국 유림을 조직화했던 심산 김창숙 초대 성균관장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 유교를 근본으로 설립된 성균관대학교의 총장·유학대학원장·교수 등을 역임했던 김경수, 최근덕 성균관장의 재임 시기에는 매번의 성균관 석전마다 참례객 숫자가 늘 3000명을 넘었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언론에서 기사로 보도하곤 했다.
대성전은 말할 것도 없고, 서 있는 인원이 동무와 서무의 월대까지 꽉 찼었는데 이번에는 대성전 앞마당에 준비된 8~9백석 좌석에 빈 좌석이 1백여 석이 넘고, 좌석이 없는 공간도 수월했는데 어떻게 3천 명을 넘길 수 있었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지난 1986년 국가무형유산 제85호로 지정된 석전대제는 반드시 원형을 지켜야 역사적 의미와 맥락을 보존할 수 있다.
그런데 봉행 날짜도 마음대로 해버리고, 옛 문헌에 있지도 않은 헌다례를 넣었으며, 산재(散齋)와 치재(致齋)의 의미조차 무색하게 하루 전까지 서울 문묘 성균관을 시끄럽게 하는 행사까지 했으니 이러고서 어떻게 예의와 염치를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이렇게 무리했으면 9월 25~27일의 유교문화축전에 관람객이라도 많아야 했는데 기껏해야 200명도 되지 않았다니 똑같은 시기에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창경궁의 15만 1989명, 창덕궁의 8만 9335명, 종묘의 4만 6366명과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났는가.
정부의 유교국고지원사업으로 소중한 국비를 받아 유교문화활성화사업단 예산을 사용하고도 무열정, 무계획, 무능, 무(無)성과, 무결론까지 이르고 있으므로 지금의 성균관 집행부를 점수를 매길 수 없는 낙제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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