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영국 BBC가 조금 이상한 프로그램 하나를 내놓았다. 유명인의 조상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배우와 정치인, 스포츠 스타 등이 출연해 자신의 조상을 찾아간다. 출생과 혼인 기록을 뒤지고 오래된 신문과 군대 기록을 찾는다. 조상이 살았던 마을과 일터를 찾아가고 때로는 국경을 넘는다.
제목은 《Who Do You Think You Are?》. ‘당신의 조상은 누구입니까?’가 아니다. ‘당신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처음에는 유명인의 가족사를 들여다보는 프로그램 정도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첫 시즌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당시 BBC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국민의 29%가 이 프로그램을 한 번 이상 시청했다. 국민 거의 3명 가운데 1명이 남의 조상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본 셈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이 텔레비전을 봤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실제 행동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첫 시리즈가 방송된 뒤 영국 성인의 7%가 자신의 가족사를 직접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조사도 나왔다.남의 조상을 보다가 자기 조상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시작한 《Who Do You Think You Are?》는 반짝 유행으로 끝나지 않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조상 찾기’ 열풍은 국경을 넘었다.
미국과 호주에서는 자국 유명인들이 조상을 찾아가는 현지판이 만들어졌다. 호주판은 2008년 시작해 2026년 17번째 시즌을 맞았다. 아일랜드에서도 정치인과 배우, 방송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섰고, 네덜란드에서는 《숨겨진 과거(Verborgen Verleden)》라는 이름으로 방송되면서 가족사 전문기관과 각지의 기록보존소까지 조상 찾기에 참여했다.
영국에서 시작된 한 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사를 찾아 나서는 국제적인 포맷으로 성장한 것이다. ‘조상 찾기’가 21세기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된 것이다.
왜 사람들은 남의 증조할아버지와 외고조모를 찾아가는 이야기에 그토록 빠져들었을까. 단순히 유명인의 비밀이 궁금해서만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증조부를 따라가다 보면 전쟁을 만난다. 이름조차 몰랐던 외고조모를 찾아가다 보면 가난과 이민, 산업화와 차별의 역사를 만난다. 교과서 속의 전쟁과 이민은 멀리 있지만 그것을 겪은 사람이 ‘나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역사의 의미가 달라진다.
역사가 가족사가 되고, 가족사는 다시 ‘나’의 이야기가 된다. 사람들은 조상의 이름을 찾으러 과거로 가지만 그 여행의 종착지는 과거가 아니다. 현재다. 그 끝에서 발견하고 싶은 것은 결국 ‘오늘의 나’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제목이 절묘하다. 《Who Were Your Ancestors?》, 즉 ‘당신의 조상은 누구였습니까?’가 아니라 《Who Do You Think You Are?》, ‘당신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다. 조상을 찾지만 질문은 ‘나’를 향한다.
그런데 족보의 나라,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여기서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묘한 역설과 마주친다. 영국에는 한국의 문중 족보와 같은 전통은 없지만 사람들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조상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웃고 울었다.
한국에는 이미 족보가 있다. 그것도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집안이 만들고 고쳐 쓰고 다시 간행하면서 지켜온 방대한 계보기록이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조상 찾기가 20년 넘는 인기 프로그램이 되고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는 동안, 한국에서는 족보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희미해졌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이런 역설이다. 영국에서는 족보가 없어도 조상을 찾는데, 한국에서는 족보가 있어도 조상을 찾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도시화와 산업화, 핵가족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람들이 고향과 동족마을을 떠났고 대가족제도가 무너졌다. 문중의 사회적 역할도 약해졌다. 제사와 묘역 관리, 혼인과 친족 간 상호부조처럼 족보를 실제 생활에서 필요로 하던 영역도 크게 줄었다.
그러나 변화는 가족의 형태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결혼과 출산, 친족과 문중을 바라보는 가족관 자체가 불과 몇십 년 사이 크게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포스터가 전국 곳곳에 나붙었으며 심지어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자극적인 표어까지 써가며 출산을 줄이려 했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걱정한다.
수많은 대책을 내놓아도 좀처럼 반전되지 않는 것을 보면 한두 세대 사이에 일어난 가족관계와 가족가치의 급변을 몇 가지 원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족보와 보학문화가 그토록 빠르게 희미해진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과도 닮아 있다.
한때 기세등등했던 족보와 보학문화가 불과 몇 세대 사이 눈 녹듯 쇠퇴한 것도 이 거대한 가족관계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저출산과 족보문화의 쇠퇴가 같은 현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전통적인 가족관계와 가족가치가 빠르게 변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서로 다른 두 풍경이라고 볼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 있다. 영국도 산업화했다. 미국도 도시사회다. 유럽에서도 대가족과 전통적인 지역공동체가 크게 약화됐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계보 찾기(genealogy)가 현대적인 문화로 다시 등장했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조상에게 관심을 잃었다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구나 한국인은 원래 계보에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휴대용 프로필’ 족보를 품에 넣고 다녔던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자신의 계보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로 만들어 접으면 품속에 넣을 수 있는 세계(世系)·가첩·가승 같은 휴대용 계보기록이 그것이다. 두꺼운 족보 전체를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계보를 추려 기록했다.
대전 뿌리공원에 있는 한국족보박물관에는 안동권씨세계·밀양박씨세계·은진송씨세계·파평윤씨세계·경주김씨세계 등 여러 휴대용 족보가 전하고 있다. 휴대하기 편하도록 절첩 형태로 만든 사례들도 있다.
과거를 보러 먼 길을 떠나는 선비가 지니기도 했고, 보학에 밝은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시집가는 딸에게 전해진 경우도 있었다. 족보가 반드시 문중 서고에 꽂혀 있는 두꺼운 책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족보는 사람의 품속에 있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명함을 주고받는다. 이름과 소속, 직함을 보면 상대가 사회에서 어떤 사람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신분과 가문, 혼맥이 중요했던 조선 사회에서는 어느 집안의 누구이며 누구의 후손인가가 그 사람을 이해하는 중요한 정보였다. 오늘의 말로 바꾸면 이런 휴대용 계보기록은 일종의 ‘조선시대 프로필’이었던 셈이다.
자기 집안의 족보만 본 것도 아니었다. 조선에는 여러 가문의 계보와 혼맥을 줄줄 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살아 있는 족보’라 할 만큼 계보에 박식한 사람들이 다른 집안의 족보 편찬을 돕고, 여러 가문의 족보를 수집하고 서로 족보를 빌려보기도 했다.
조선 후기로 가면 여러 성씨의 계보를 한데 모은 만성보(萬姓譜), 말하자면 ‘여러 집안의 족보를 모은 족보’ 같은 종합 계보기록도 만들어졌다. 《씨족원류》와 《동국만성보》 같은 자료가 등장했고, 지역 사족들의 계보를 정리한 향반보도 있었다.
오늘날로 치면 동창회 명부이면서 일종의 성씨 백과사전이자 인물·가문 관계 데이터베이스였다. 누가 누구의 후손인가. 어느 집안과 어느 집안이 혼인으로 연결됐는가. 한 사람은 어떤 친족관계 속에 놓여 있는가.
계보를 알면 사람을 알 수 있었고, 사람을 알면 사회의 관계망이 보였다. 손에는 가첩을 들고, 머릿속에는 혼맥을 넣어두고, 서가에는 만성보를 꽂아두었던 시대였다. 계보를 연구하는 보학이 발달했고, 계보를 아는 것이 선비 사회의 중요한 교양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품속의 족보가 책장 속의 족보가 되기까지
그랬던 사회에서 족보의 위상은 각별했다. 전쟁과 피란의 혼란 속에서도 족보를 지키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족보는 종이와 먹으로 만든 책 한 질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와 이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집안의 기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집에 족보가 있어도 펼쳐보는 일이 드물다. 젊은 세대로 내려가면 본관은 알아도 어느 파인지, 몇 대손인지 모르는 경우가 낯설지 않다. 전쟁통에도 버리지 못했던 족보를 이제는 평화로운 아파트의 책장에서도 펼쳐보지 않는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수백 년 동안 계보를 아는 것이 지식이자 교양으로 여겨질 만큼 보학문화가 성행했던 사회였다. 그런데 불과 몇 세대 사이 그 기세등등했던 문화가 눈 녹듯 희미해졌다.
반면 21세기의 세계인은 여전히 조상을 찾아 과거로 간다. 시대도 나라도 다르지만 사람은 계속 묻는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렇다면 사라진 것은 뿌리를 찾고 싶은 마음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
BBC의 계보 찾기에서 주인공은 죽은 조상이 아니다. 현재의 ‘나’가 주인공이고, 조상은 나에게 이르는 길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족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성씨, 본관, 시조, 파, 항렬, 몇 대손…. 그리고 한 성씨의 남성들이 대를 이어 내려오는 부계 계보다.
그렇다면 한번 물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이 조상에게 관심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오늘의 한국인이 족보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 어려워진 것일까.
그런데 우리의 옛 계보기록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뜻밖의 모습이 나타난다.
왕실에는 현재의 한 사람을 출발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팔고조도가 있었다. 사대부가의 계보기록에도 내외의 여러 계통을 함께 바라본 자료가 남아 있다. 한 성씨의 시조에서 남성 후손으로 내려오는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에서 출발해 조상을 찾아 올라가는 길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 길은 언제,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오늘 족보에서 그 길을 잘 보지 못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족보일까. 아니면 족보 속에서 ‘나’를 찾는 방법일까.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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