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씨가 창작한 '1980년 석전 일무' 무무(武舞)를 마치 '석전 일무' 원형인양 라바노테이션으로 기보한 『아악일무보』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와 석전대제보존회는 일무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지난해 12월20일, 올해 2월2일과 13일 3차례 회의를 개최했다. 검증위원회에는 무형문화재과에서 추천한 전문가 3인, 석전대제보존회에서 추천한 전문가 3인이 참여했고 양측의 실무자들이 참관했다.
검증위원회 회의가 진행되면서 무형문화재과 추천 전문가들에게서는 “‘1980년 석전 일무’의 잘못된 부분을 당사자들이 고쳐서 추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관련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로 인해 ‘1980년 석전 일무’의 잘못을 더 이상 비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나온 얘기였다.
석전대제의 의례와 악무를 분리해서 의례는 석전대제보존회, 악무는 국립국악원에서 맡는 것으로 하자는 것이었는데, 지난 십수년간 ‘1980년 석전 일무’의 잘못을 비호해 온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었다.
더욱이 일무를 포함하고 있는 석전대제가 유교 종단 성균관에서 춘·추기로 봉행하는 유교의례라는 점과 국가무형문화재 제85호 석전대제의 전승주체가 석전대제보존회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립국악원 궁중무용무보 13집 『아악일무보』는 검증위원회에 무형문화재과 추천 전문가로 참여한 C 씨가 과거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으로 있을 때 기획했던 책이다. 이 책에는 C 씨가 기획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C 씨는 검증위원회에서 석전대제가 유교의례가 아니라 궁중의례라고 주장해 소란을 일으킨 당사자이기도 하다. 유림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얘기다.
C 씨는 ‘문묘제례 일무 검토 의견서’에서도 “문묘제례 일무를 포함한 문묘제례(석전대제)는 본래 궁중제례의 하나였다. 유교의례가 아니었다. 일무는 궁중제례에 수반되는 궁중무용이다”, “현재 석전대제보존회는 문묘제례를 유교의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문묘제례가 유교의례라면 문묘제례악과 일무가 포함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유교제사가 궁중의례라는 주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발언이다. 성균관과 전국 234개 항교에서 행하는 석전이 궁중의례라면 유림들은 궁중관리인이라는 말인가? 조선의 궁중예법이 유교식이라는 말은 가능해도 공자를 비롯한 성현을 모시는 유교제사를 궁중의례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화재청 발간 자료를 비롯해 어느 자료에도 석전대제를 궁중의례라고 한 예는 이들 말고는 없다.
C 씨는 이 같은 주장은 『아악일무보』에서도 나온다. C 씨는 『아악일무보』에서 “일무는 고려시대 대성아악의 도입과 함께 우리나라 궁중무용의 하나로 정착한 이후 주로 궁중의 제례에 사용되었다. 일무 제도는 시대에 따라 변화되었으며, 그 변화 내용을 살펴 우리나라 아악 일무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라고 썼다.
『아악일무보』를 국립국악원 궁중무용무보 13집으로 발간한 것도 ‘석전 일무’를 궁중무용으로 규정지으려는 이 같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은 유교의례의 전승 원칙을 무시하고 몸에서 몸으로 전해진 것이 ‘석전 일무’의 원형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 아래 국가 기관과 예산을 가지고 일을 벌였다.
A 씨의 창작무인 ‘1980년 석전 일무’를 ‘석전 일무’의 원형인양 동작사진에 설명을 더하고 라바노테이션(Labanotation)으로 기보까지 했다. 라바노테이션은 서구에서 개발된 새로운 무용기보법이다.
국립국악원 궁중무용무보 13집 『아악일무보』는 학문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국립국악원이 더 이상 ‘석전 일무 원형’ 논란에 관여해서는 안 됨을 확인시켜 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국립국악원장으로 있으면서 아내를 비호했던 남편 B 씨, 창작무를 ‘석전 일무’ 원형이라며 30여 년 가까이 주장하고 있는 아내 A 씨, 이를 비호하기 위해 『아악일무보』를 기획했던 C 씨 등 바로 이것이 ‘석전 일무 원형’ 논란의 실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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