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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특집 – 잘못 알고 있는 유교의례(25)“12변(籩) 12두(豆)”

예법(禮法)

성균관의 석전(釋奠)은 중사(中祀)이니 1010두가 바른 진설이다.

 

논쟁(論爭)

현재 성균관의 석전에는 1212두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석전의 변천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1212두가 잘못된 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근자(近者)에 예법에 근거 없이 임의로 진설 원칙을 바꿨기 때문에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한다.

 

해설(解說)

유교 발생지인 중국에서도 이미 사라진 석전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는 실정이다. 실상 우리도 90년 이전까지는 1010두와 유건도복의 석전대제를 봉행했는데 907월 성균관 전례연구위원회 발의로 중국과 대등한 독립국 위치에서 1212두와 금관제복의 석전례를 봉행하게 되었다.” <경향신문 94318일 기사>

위 기사에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1990년 성균관 전례연구위원회에서 발의하여 변두(籩豆)의 수가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예법을 올바르게 고찰한 것이 아니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전례위원회는 우리나라가 이미 독립국이므로, 황제국의 예법에 맞춰 석전례를 봉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과거 황제국의 위상에서는 1212두를 진설하는 전통이 원칙이었으므로 우리나라의 석전례 또한 마땅히 황제국의 지위에 맞춰 1212두를 진설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석전례의 변과 두의 수는 황제국이나 제후국의 지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석전은 중사(中祀)에 해당하므로 중사의 예법을 따르는 것이 올바르다. 중사에는 1010두가 원칙이다. 그래서 조선의 석전에는 1010두가 사용된 것이다. 황제국인 중국이 봉행하는 석전에서도 중사의 예법을 따랐다.

 

예법(禮法)의 근거

1. 반궁예악소(頖宮禮樂疏)이지조(李之藻) ()

대명회전의 옛 제도를 살펴보건대, 선사께 제사할 때 변두는 각각 10개이다. 성화(成化) 12년에 제주인 주홍모(周洪謨)가 변두를 각각 12개 사용하자고 상주했다. 가정(嘉靖) 9년 변두를 각각 1010두로 바로잡았다. 좌변에서는 분자(粉餈)와 구이(糗餌)를 버렸고, 우변에서는 이식(酏食)과 삼식(糁食)을 버렸다.

按會典舊制 先師祭籩豆各十 成化十二年 祭酒周洪謨奏准籩豆各十二 嘉靖九年釐正籩豆各十 去左籩粉餈 糗餌 右豆酏食 糁食

成化(1465~1487)는 명나라 성화제의 원호(元号)이며, 嘉靖(1522~1566)은 명나라 세종의 연호이다. 즉 명나라의 역사 중 약 54년에 한하여 12변두를 사용했을 뿐이다.

2. 태학지(太學志)변사(辨祀) 중사석전(中祀釋奠)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살펴보면 대사(大祀)에는 변두(籩豆)12()이요, 중사(中祀)는 변두가 10(), 소사(小祀)는 변두가 8()이라고 하였다. 혹 사품, 이품에서 일품에 이르기도 하였는데 태학(太學)의 석전(釋奠)1010, 주현(州縣)의 학교에서는 석전에 88두로 한다.

按五禮儀大祀籩豆十二品 中祀籩豆十品 小祀籩豆八品 或四品二品至一品 而太學釋奠 十籩十豆州縣學釋奠 八籩八豆也

 

TIP

요새 우리는 석전대제라는 말을 자주 쓴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도 석전을 중사로 구별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왕조실록이나 선유들의 문집, 태학지 등에 석전을 대제로 표현한 기록들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 예를 하기한다.

1. 조선왕조실록영조(英祖) 46(1770)

임금께서 연화문에 나아가 문묘의 석전대제에 사용할 향과 축문을 지영하다.

上詣延和門 祗迎文廟釋奠大祭香祝

2. 반중잡영(泮中雜詠)윤기(尹愭) ()

삼헌관이 향대청 방에 머물면 제집사는 동서 향관청에 나뉘어 거주한다. 향청에 거주하던 유생들은 모두 피하여 나갔다가 대제가 파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들어온다.

三獻官住香大廳房 諸執事分住東西享官廳 居享廳儒生皆出避 俟大祭罷後還入

※『반중잡영 향대청은 향관청을 말하며, 향관청은 동서월랑을 말한다.

 

()석전대제보존회 의례연구원(방동민·김학경·홍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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