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법(禮法)
신로(神路)를 지날 때 절을 할 필요가 없다.
▣ 논쟁(論爭)
성균관에서는 신로(神路)를 지나갈 때 예를 표하도록 했었다. 그 근거로 신이 다니는 존엄한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 대한 예법의 근거가 없다. 오히려 문묘에서는 신로에 기물(器物)을 올려놓기도 하고 배례자들이 정렬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길을 숭배하는 의식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예서에 길에서 절하는 법은 없다는 항목도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향교에 신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존엄한 길의 의미가 있다면 모든 향교에 신로가 갖추어져 있어야 할 것이다.
▣ 해설(解說)
예서(禮書)의 근거가 없이 길에서 배례(拜禮)를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러한 풍속이 생긴 것은 아마도 일본강점기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신도(神道)에는 배전(拜殿)이 신도의 중앙에 세워져 있어서 이것을 신성시하는 의식의 일환으로 판단된다. 일제는 성균관의 문묘 뜰에도 배전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굳이 문묘나 향교에서 신로를 건널 때 절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논어(論語)』「향당(鄕黨)」편에 따르면 “서 계실 때에는 문 가운데 서지 않고, 드나들 때에는 문지방을 밟지 않으셨다.(立不中門 行不履閾)”라고 한 것처럼 도드라져 있는 신로를 조심하는 모습으로 건널 필요는 있을 것이다.
성균관에 설치되어 있던 배전은 9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거되었다.
▣ 예법(禮法)의 근거
1. 『왕세자입학도첩(王世子入學圖帖)』 - 효명세자

『왕세자입학도첩』 「작헌도」(소장 국립고궁박물관)
위 『왕세자입학도첩』에 따르면 왕세자의 입학에 참여한 학생들이 신로의 중앙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신로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었던 공간이 아니다. 성현(聖賢)에 대한 공경심에서 행실을 조심하려고 하는 의미는 이해하지만 예법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굳이 문묘의 신로에 절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2.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악현도(樂懸圖)』 등에 따르면 ‘헌가(軒架)’는 중앙을 비워두지 않고 중앙에 진고(晉鼓) 등을 설치하고 있다. 이것은 신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신성시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석전대제보존회 의례연구원(방동민·김학경·홍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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