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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특집 - 훼손된 성균관의 정신 되살려야 한다

정통 유림 어윤경 성균관장은 지난 제31대 성균관장 선거 과정에서 그 동안 방치되어 왔던 성균관 문묘 관리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어 성균관장이 지적한 이들 문제들은 사실 그 동안 성균관이 왜 정상화되지 못하고 혼란을 겪어야만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모성지심이 신실한 유림이었다면 반드시 짚었어야 할 문제였고, 이 같은 문제 의식이 있었다면 성균관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지난 시절의 혼란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선거 과정에서 지적된 성균관 문묘 관리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짚어본다.

 

善政의 상징 팥배나무를 되살려야 한다

 

고사한 팥배나무

 

甘棠之愛[선정을 베푼 인재나 관리를 사모하는 마음]라고 하여 周나라 재상 召公을 칭송하며 심던 선정의 상징이 팥배나무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를 담고 있던 성균관의 팥배나무가 정부의 무관심과 관리소홀, 후손들의 무책임으로 인해 마침내 문묘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됐다. 300여 년의 星霜을 문묘와 함께 했던 팥배나무가 枯死한 것이다. 문묘의 한 그루, 풀 한 포기마다 선현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고사한 팥배나무를 베어내어 정부의 잘못을 감출 것이 아니라 후손들의 잘못을 뼈아프게 채찍질하는 상징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傳香門의 붉은 칠을 복원하라


칠이 벗겨진 전향문


전향문은 임금이 직접 手決하고 보살핀 축문과 향을 향관청에 모시기 위해 통과하는 문으로 붉은 칠에 둥근 기둥을 사용한다. 하지만 전문가라고 하는 교수 출신으로 구성된 문화재위원들이 지난 2010년 전향문의 붉은 칠을 전부 벗겨 버렸다. 전향문의 의미를 모르고 그저 동재의 정문쯤으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그 동안 성균관이 얼마나 무지한 집단들에 의해 훼손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좋은 예이다. 

 

下輦臺는 관리소가 아니다

 

하련대 앞의 흉물스런 관리사무소

 

하련대는 임금이 문묘에 거둥할 때 타고 온 가마를 놓는 곳으로 성균관의 정신이 깃든 중요한 유적이다. 그런데 종로구청은 하련대 앞에 성균관 관리소를 두어 聖殿을 함부로 훼손하고 있으며, 관리 직원들이 예의 없이 무단으로 행동하는 근거지가 되고 있다. 성균관의 유림들에게는 성균관의 주인이 유림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공표하고 유림들의 소유로 되찾아 와야 할 책무가 있다. 

 

한 그루 잣나무와 떡갈나무도 의미가 있다

 

             

                           뽑힌 장원백                       떡갈나무 앞의 하수구                   잘려나간 뿌리들

 

성균관 대성전에 있던 ‘壯元栢’이라는 잣나무가 2010년 태풍에 의해 뽑혀나갔다. 장원백은 잣나무에 청룡이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꿈을 꾼 후, 그 밑에서 낮잠을 잤던 최항이 다음날 장원급제한 데서 유래했다. 성균관의 상징인 장원백을 다시 심어 과거의 찬란한 이름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 이 밖에도 2011년 서재 앞에 하수구를 만든다고 떡갈나무 주위를 파헤쳐서 떡갈나무 뿌리를 마구 잘라내고 방치하다가 결국 고사시키고 말았다. 

 

600년 역사 중에 동·서재에 학생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동재 전경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문화재 훼손을 이유로 600여 년의 전통을 이어 동재와 서재에 거주하던 성균관대학교의 학생들을 퇴거시켰다. 동재와 서재에 학생들을 상주시킨 까닭은 과거의 급제보다도 성묘 수호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조정의 정책에 불만이 있으면 학생들이 자퇴하는 이른바 空館을 행했다. 공관을 하면 대사성 이하 모든 관리들이 귀가하지 못하고 학생들이 성균관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것이 유교적 정신이며 전통이었다. 동·서재에서 학생들을 퇴거시킨 것은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사찰 등에서 기거가 허락되고 있는 현실과는 상반된다. 유교적 명제와 전통으로 모르고 역사를 단절하는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충신 鄭信國의 후손들과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서리청 (중앙건물)

 

정묘호란 때 대성전의 위패를 지켜낸 정신국의 소원의 받아들여 인조 임금은 그의 후손들이 서리청에서 대대손손 살 수 있도록 왕명으로 허락했다. 후손들 또한 할아버지인 정신국의 뜻을 이어받아 숭례문이 불타기 전까지 서리청에 거주하며 성균관과 역사의 맥을 같이 했다.

묘수호는 忠의 상징이며, 후손들이 조상의 뜻을 어기지 않고 계속 서리청에서 성균관을 위해 봉사한 일은 바로 孝의 표상이다. 유형의 건물 보호를 빌미로 시대를 초월해 인류의 귀감으로 삼아야 할 충과 효를 헌신짝처럼 버려서는 안 된다. 

다산 정약용은 "무형을 가지고 유형을 다스린다(以無形御有形)"라고 했다. 유형의 건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무형의 혼이 살아 숨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성균관과 234개 향교, 800여 개의 서원과 사우에서 묵묵히 朔望으로 향을 사른 한국 유림들의 헌신에 힘입은 게 크다. 수백 년 동안 유형의 산물뿐만 아니라 유교의 본령인 정신을 소중히 지켜 온 유림들의 마음이 이룬 성과인 것이다. 

유림들이 지켜온 유형, 무형의 유교 자산들은 소중하게 관리되어야 하며 후대에 계승되어야 한다. 팥배나무, 잣나무, 떡갈나무는 유형이자 성균관의 정신이다. 600년 조선성리학의 정신이 소중하게 결집된 산물들이다. 

성균관의 나무 한 그루 돌 하나도 그 자체가 귀중한 성균관의 역사이다. 이제라도 훼손되고 잘못 관리되고 있는 성균관의 상징물들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되돌려 놓아야 한다. 

유교의 맥을 잇는 성균관의 역사적 산물들이 하나 둘 훼손되어도 바로잡지 못한다면 유림의 소임을 다한다고 할 수 없다. 이제라도 유림이 주인이 되어 성균관과 유교 관련 시설들의 위상을 바로잡고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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