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8일 成均館에서 秋期釋奠이 엄숙하게 봉행됐다. 疊疊山中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성균관으로서는 혹시라도 禮에 어긋나는 점이 있을까 예년에 비해 더욱 신경을 써서 봉행한 석전이었다.
준비하는 자세부터 예년과 달랐다. 5차에 걸친 석전준비회의에서는 시시콜콜한 사항까지도 몇 번이나 점검에 점검을 거듭했다. 총무처 중심으로 진행되던 업무 분정도 成均館내 모든 기관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단 한 명도 釋奠 봉행에 빠지는 이가 없었다.
직원 각각이 맡은 업무에 대한 熟知도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釋奠 당일에는 모든 직원이 새벽부터 출근해 만일에 대비했다. 이렇듯 철저한 준비로 秋期釋奠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성공적으로 봉행됐다.
성균관 대학교에서 자원봉사 온 40명의 학생들도 큰 힘이 됐다. 이들은 成均館 직원들의 지시 하에 文廟 일원에서 예의 바르게 손님들을 맞았다. 학생들의 젊음은 성현을 모시는 큰 행사를 더욱 기운차게 했다.
예년에 비해 크게 참관객이 늘어났음에도 작은 혼란조차 없었다. 儀禮를 행 할 때 작은 실수는 즉시 바로 잡혔다. 엄격한 출입 통제로 보도 촬영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大成殿 안의 혼란도 극소화했다.
釋奠을 봉행한 뒤 成均館 관계자들은 자신 있게 성공적으로 秋期釋奠을 봉행 했노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려워도 成均館은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향교에 가서 어깨를 펼 수 있었다.
실제로 석전 다음 날인 29일 강릉향교에서 열린 창건 7백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魚躍 원임 성균관장과 金東大 총무처장은 강릉 유림들에게 석전 참관객 수가 예년을 훨씬 넘었다. 걱정 마라 성균관은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釋奠은 주기적으로 1년에 두 차례 봉행하는 행사가 아니라 매번 봉행할 때마다 새롭게 유림이 자신들의 존재근거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임을 올해 秋期釋奠은 다시 보여 준 것이다.
특히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成均館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 가를 석전 봉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음을 자각하게 해 준 것이다. 先聖과 先賢의 가르침을 기리는 의식으로 수천년 동안 행해진 역사적 무게는 그만큼 크고 무거운 것이다.
특히 오늘날 成均館에서 봉행되는 釋奠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남아 있지 않는 古來의 악기와 제기를 보유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고전음악인 文廟祭禮樂과 古舞인 八佾舞, 祭官이 입는 전통적이고 권위 있는 의상과 고전적 의식절차 등이 화려하고 장중하여 예술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그 가치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나아가 동양의 철학과 학문과 그 인습에 깊이 뿌리를 둔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문화의 양식으로 우리나라를 넘어 오늘날까지 동양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유교의 자랑이다.
이제 한 고비는 넘겼다. 그러나 아직도 成均館이 해결하고 나가야 길은 멀고 험하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예년보다 더욱 충실하게 석전을 봉행하는 成均館이라면 그 길을 힘차게 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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