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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통해 본 조선 그리고 우리 推奴를 통해 본 우리 역사 그리고 교육


 

드라마 추노의 주인공들 (사진제공 KBS)

 

 


 

추노는 지난 2010년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극이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대길은 신분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으려 하는 노비(奴婢)들을 끝까지 쫓아서 잡는 추노꾼이다. 노비사냥꾼이 노비를 쫓는 와중에 당시 임금인 인조(仁祖)는 자신의 맏아들인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아들들을 쫓고 권력가는 자신의 권력유지에 장애물들인 소현세자의 충신들을 쫓는다. 쫓기는 자는 약자요 쫓는 자는 강자다. 강자 사이에서도 엄연히 위계가 있어 추노꾼들은 권력가에게 다시 쫓기고 그리고 비장하게 죽는다. 가장 약자인 노비들의 죽음에는 추노꾼의 비장함 마저 없다. 배신과 비참함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일들은 뒤풀이 되고 있다. 권력을 잡은 이들은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역사서술의 자유를 뒤쫓고 더불어 교육현장에서 놓친 고삐를 다시 잡기 위해 선생님들을 쫓는다. 다른 손에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들고 편중된 법의 잣대로 재단한다. 사회적 배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와 교육은 드라마 속 노비이다. 쫓기는 자 중 가장 약한 고리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조선시대 노비의 역사는 완곡하나 억압과 유지가 아닌 해방의 역사였던 것이다. 조선조 노비의 삶은 드라마 속 그대로 비참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은 노비에 대해 16세 이상 50세 이하의 노비는 저화 4천 장, 16세 이하 50세 이상은 3천 장으로 정하하고  주인은 사노비를 죽이는 경우에만 관청에 보고하고 나머지는 어떤 형벌도 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간이 아닌 물건이었던 것이다. 노비는 주인이 모반이 아닌 이상 관청에 고발할 수 없었고, 고발하는 경우는 강상(綱常)을 어지럽히는 것으로 간주하여 교살되었다. 그러나 조선은 노비의 해방 없이는 국가를 꾸려 나갈 수가 없었다. 재정과 변방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납속이 계속 시행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에는 군량문제 해결과 군공에 대한 대가로서 면천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정은 조선 후기에도 계속되어 노비에 대한 규제도 완화되었으며 영조 7년에는 종모법 대상자를 양인으로 삼을 것을 확정하였다. 노비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부를 축적하는 자가 늘어나  납속하거나 관리와의 결탁을 통해 신분상승을 도모하였으며 이러한 실상은 <속대전(續大典)>에 쌀 13석을 지불하면 사노비가 양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으로 반영됐다.

 

마침내 순조 1년에 내수사 ·궁방 ·관청의 노비안(奴婢案)을 소각하고 6만 여 구를 방량하였고 1886년 즉 고종 23년에 노비세습제를 폐지해 노비 소생의 매매를 금지하고 그들이 양인이 될 수 있도록 규정했다. 1894년 최종적으로 노비제를 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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