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장서비 건립추진위원회 위원들이 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읍사 공원에는 망부석과 달빛공원 그리고 정자가 네 개나 있고 널따란 잔디광장 위에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가 건립되어 있다.
백제가요 「정읍사」는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이후 옛 백제 지방의 노래로 추정되지만 작자와 정확한 창작 연대는 알 수 없다.
「정읍사」는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이며,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가요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작품은 어느 행상인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면서 걱정하는 마음을 달에 의탁하여 노래한 가요이다.
정읍은 전주의 속현으로 그 고을 사람 가운데 행상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산 위의 바위에 올라가 남편 간 곳을 바라보다 이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고려사악지」에 전한다.
「정읍사」는 멀리 나간 남편의 안전을 빌고 있는 갸륵한 아내의 정성을 나타낸 사랑의 노래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노래의 전문이 실린 곳은 1493년에 편찬된 「악학궤범」으로 이 노래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불리어져서 국문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는 이 정읍사 공원 초산 기슭에 세워져 있으며, 2009년 6월29일 오석과 화강암 재질의 높이 5.78m 넓이 48.55㎡ 규모로 건립하고 9월23일 현충시설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파리장서는 1919년 1월부터 세계평화회의가 파리에서 열림을 듣고 면우 곽종석 선생을 비롯한 한국 유림대표 137인이 심산 김창숙 선생으로 하여금 한국의 실정과 왜적의 침략성을 국제 정의에 호소한 긴 글월이다. 이로써 우리 민족 독립운동사와 수천년 유교 국민의 사명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
파리장서의 일원으로 서명한 137인 중 한 분인 김양수(金陽洙) 선생은 정읍 출신으로 호는 류재(柳齋)이고 김해인(金海人)이다. 김양수 선생은 1930년 8월7일 향년 82세로 서거하였고 고향인 소성명 애당리 두암마을 후록에 안장됐다. 후에 두암서원에 배위되었으며 묘정에 추모비가 건립됐다. 추모비도 국가보훈처로부터 2002년 11월21일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이 두암마을에는 선생의 증손인 김용환 성균관 전인이 거주하며 증조의 미덕과 애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정읍 유림들은 김양수 선생의 거룩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자는 뜻을 모아 2006년 9월 25명의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사업추진의 관건인 예산 확보를 위해 추진위원회 임원단은 동분서주하여 2008년 하반기 초에 예산 108,500,000원을 확보했고 2008년 8월10일 추진위원회를 개최하여 추진위원 48명으로 보강했다.
사업추진 당시 기념비 건립 장소 선정에 임해 어려운 점이 있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공사설계로부터 2008년 12월26일 착공에 이르기까지 시청 관계 부서의 적극적인 협조로 현 위치에 웅장한 비를 세우게 되었다.
현재는 호남지역 유림대표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김양수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독립운동의 산교육장으로 3.1절, 광복절 행사시 관련단체와 인사들에게 참석 및 참배기회를 제공해 국가관 확립과 유지계승, 선양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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