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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逝去 반세기 心山이 그립다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이 서거한 지 벌써 반세기가 넘었다. 전국 곳곳에서 선생을 기리는 추모행사들이 열렸다. 심산이 우리 역사에 남긴 족적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작은 규모로 열렸지만 이 작은 추모행사들에 유난히 눈길이 가는 까닭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의 구조과정과 사후대책에서 보여진 우리 사회의 현실은 참담함을 넘어 쓰라린 아픔으로 다가오고 있고 20여 일밖에 안 남은 지방선거는 우리 사회가 미래로 나가느냐 더욱 뒤로 후퇴하느냐 분수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재는 국권을 상실한 참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선비로서 자신이 나갈 길을 모색해야 했던 젊은 심산이 처해 있던 20세기 초 조선의 그림자가 마치 그대로 투영된  듯하다.

젊은 심산은 조국이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하자 단호하게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었다. 비통함에 빠져 체념하거나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스승인 이승희와 함께 을사오적소(請斬五賊疏)라는 을사오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행동하는 선비의 전형(典型)을 보여 주었다. 알면 알수록 파면 팔수록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세월호의 진실에 우리가 대처해야 하는 모범 답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국채보상운동 활동과 사립학교인 성명학교를 세워 민족주의 교육에 전념했다. 국권을 상실한 뒤에는 중국으로 망명해 상해에서 이동녕, 이시영, 신규식, 김구 등과 함께 임시의정원을 조직했으며 부의장직에도 당선되어 구국활동을 위해 혼신을 다했다. 이미 중년을 넘어선 나이는 그에게 핑계가 되지 않았다. 노년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해방 후에는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성균관장과 유도회 총본부 위원장을 역임하여 유도(儒道) 부흥에 앞장섰다. 세월호 수습 과정과 지방선거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의 바른 길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그림자는 크고 깊다. 어느 인터넷 블로거의 말처럼 그는 혼란의 시대에 참선비의 길을 보여주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그가 그의 당대에 고민했던 것과 유사한 현실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심산은 참 선비의 정신으로 보고 판단하며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림에게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게 단호하게 물러 있지 말고 실천으로 보여 주라고 말하고 있다. 서거 51주년 심산의 후예인 유림으로서 그가 그립다. 아니 굳이 유림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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