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0일 거행된 심산 김창숙 선생 추모제에서 초헌관 서정기 성균관장이
헌작을 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 유교역사의 위상을 높인 심산 김창숙 선생을 기리는 추모제가 52주기 기일인 지난 5월10일 서울 수유동 소재 심산 김창숙 선생의 묘역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성균관(관장 徐正淇)이 유도회총본부, 성균관대학교, (사)심산선생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주최하고 국가보훈처, 강북구청, 서초구청, 광복회, 독립기념관, 의성김씨대종회가 공동으로 후원한 이날 추모제는 당일 배부된 안내문에 따라 헌관은 초헌관 서정기 성균관장, 아헌관 이종목 유도회총본부 전 회장직무대행, 종헌관 김윤철 의성김씨 대종회장이 맡았자. 제집사는 집례 최성종 성균관 전례위원장, 축관 김동목 성균관 전례위원, 알자 서정택 전례위원, 집사 황원일·안도섭 성균관 유교동문회원, 사세 박홍양 성균관 유교동문회원이 담당했다. 제례 순서는 묘전제의 격식에 따라 초헌관이 점시진설을 하고, 삼상향과 땅에 술을 붇는 강신례, 술을 올리는 초헌례와 축문을 읽는 독축,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례,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종헌례를 하고, 음식을 권하는 유식례, 예를 마치는 절차인 사신례 순서로 엄숙히 진행됐다.
제례를 마친 후 이어진 추모식에서 서정기 관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발전은 선생과 같은 선비 정신과 그 실천이 없었더라면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유림은 심산 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숭모하는 데 그치지 말고, 선생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선생께서 꿈꾸던 세상을 이 땅에 실현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김창환 심산김창숙선생기념사업회장은 “선생의 충혼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을 다짐한다”라고 말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 동강(東岡) 김우옹(金宇?)의 13대 종손으로서 1879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27세이던 1905년 유학자들의 친일 행각을 통탄하며 고종에게 을사오적 처단 상소를 올렸으며, 1919년에 137명이 서명한 <독립청원서>를 파리평화회의에 보내는 이른 바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하였다. 50세가 되는 1928년에는 투옥 중에 일제의 법 자체를 부인하여 변호를 거부하고 2년간의 모진 고문으로 인해서 두 다리가 불구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을 하며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1946년에 성균관장과 유도회총본부 위원장에 추대됐고, 75세 때인 1953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된 성균관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이후에도 많은 애국애족 활동과 민주화운동을 펼치고 1962년 5월10일 84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1
2
3
4
5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