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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기획취재 - 율곡 선생의 '성동인우 애지산학(性同鱗羽 愛止山壑)' 암각문(岩刻文)을 생각하며

율곡 선생의 필적으로 전하는 암각(가로37cm, 세로 97cm ) 글씨이다.(덕수이씨 800년) 그러나 지금은 없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을 강릉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다. 강릉은 외갓집이 있는 곳으로 태어난 곳일 뿐이고, 실은 파주 사람이다. 파주는 선생의 본가가 있었고 묘가 있으며 자운서원과 화석정이 있다.

선생의 집터가 서울에도 있으나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송월144-11 집터에는 선생께서 직접 바위에 새긴 암각문(岩刻文: 가로37cm, 세로 97cm )이 있었고, 사당인 문성사(文成祠)와 이승만 대통령이 쓴 친필 현판이 걸린 홍파강당(紅把講堂)이 있었다.

그러나 문성사와 홍파강당은 철거됐, 암각은 훼손돼 사라졌으며, 그 글자를 탁본한 비석 하나만 있다. 그 홍파강당 현판은 지금 율곡 선생의 15대손 이천용 종손 종가에 있다.

율곡 선생의 신주는 황해도 해주 해전서원(海前書院)에 있었으나 19474월 선생의 14대손 이재능(李載能) 씨가 북한에서 사유재산이 몰수되는 것을 보고 선생의 신주를 모시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는 율곡사상연구원을 짓고 <율곡전서>를 간행해 만든 기금으로 선생의 암각이 있는 선생의 서울 집터에 1959622일 문성사(文成祠)와 홍파강당(紅把講堂)을 지었고, 문성사에 선생의 신주를 봉안했다.

그런데 이율곡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이주영이라는 자가 개인 명의로 집터와 건물을 저당 잡히고 은행돈을 빌려 써 소유권이 은행으로 넘어 갔고(1966413일자 동아일보), 당시 문성사를 보존하고자 하는 각계의 노력이 있었으나 건물은 철거됐고 토지는 구세군영천교회로 넘어갔다.

교회는 암각이 있는 바위를 없애고 그 자리에 화장실을 지었다(유홍준, 1988). 이 교회는 암각이 있었던 자리에서 20미터 떨어진 곳에 그 글자를 탁본한 비석을 세웠다.

덕수이씨대종회관에서 만난 율곡 선생의 종손 이천용 선생은 "홍파강당이 철거되기 전까지 홍파강당 종가에서 살았다"면서 "암각 바위는 불쑥 튀어 나왔고, 암각 아래에는 굴()이 있었으며, 그 아래에 샘이 있었다"고 말했.

이 암각에는 '성동인우 애지산학(性同鱗羽 愛止山壑)'이라는 8글자가 새겨 있었다. 암각문이 율곡 서체인가에 대한 진위여부에 논란이 많았다. '性同鱗羽 愛止山壑'은 예장왕(豫章王)이 종측(宗測)에게 참군(參軍)이란 벼슬을 제안하자 종측이 예장왕에 보낸 답장에 있는 글이다.(南齊書宗測傳 卷 54) 종측은 "나는 물고기나 새와 같아 산골짜기를 좋아한다"며 벼슬길을 사양했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는 평생 벼슬을 한 율곡 선생이 정치에 나가지 않고 자연과 함께 산 속에 머물겠다고 했겠느냐며, 이것은 선생의 글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이 글 뜻은 "성품은 저 깊은 물 속의 물고기에서 저 높은 하늘의 새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이 모두 같으니(性同鱗羽), 우리의 사랑은 멀리 산과 골짜기의 세상 끝까지 속속들이 미친다(愛止山壑)"이다. 더 풀이하면 "하늘이 내린 성품은 물 속에 사는 비늘이 있는 동물이나 하늘에 사는 깃털을 가진 동물이나 같은 것이니, 사랑은 가장 낮은 골짜기()부터 가장 높은 산()까지 미쳐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퇴계 선생의 물아일체설(物我一體說)과도 통하는 것이다. 또 퇴계가훈 중에는 "물리생초 물답생충(勿履生草 勿踏生蟲: 살아 있는 풀을 밟지 말고 살아있는 벌레도 밟지 말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유학의 거두이신 두 분 모두 "()은 세상 만물에까지 미쳐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율곡 선생의 암각문은 은둔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큰 사랑을 말씀하고자 했던 것으로 본다. 서체의 친필 여부가 중요치 아니하며 글 내용이 중요하고 생각한다. 이 암각문은 유학을 상징하는 하나의 훌륭한 경문(經文)이다.

이천용 율곡 종손은 "문성사와 홍파강당이 있던 시절 불천위(不遷位), 기일(忌日)에는 3일 전부터 전국에서 200-300명의 유림이 제례 봉행에 참례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문성사와 홍파강당은 훼철됐고 선사(先師)의 철학이 깃든 암각문도 없어졌다. 그 자리에 현재 교회건물이 자리 잡고 있으니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유학이 쇠퇴한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쓰린 마음 금치 못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도 거의 없고, 그리고 이 비문의 뜻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선 서울시와 문화재청에게 문성사와 송파학당의 안내간판이라도 세우라고 요청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유림은 덕수이씨종중과 더불어 사라진 문성사와 암각문 복원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선생의 종가 홍파강당(좌측 큰 건물)과 사당인 문성사(우측 기와집)이다.(덕수이씨 800년) 지금 이 건물은 없어졌고 그 자리에 교회가 들어 섰다.

 

이승만 대통령이 쓴 선생의 종가집 현판 '紅把講堂'이다.(덕수이씨 800년)

 

가운데 건물이 홍파강당과 문성사 자리에 들어 선 구세군영천교회이다.

 

승용차 앞 화장실 뒷편에 원래 율곡 선생이 쓴 암각이 있었으나 지금은 훼철해서 없고, 우측 오석이 보이는 곳에 암각문을 탁본한 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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