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신문 역사는 유림의 역사이다. 내우외환 속에 유교신문은 멈칫 거리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면서 1969년 창간이래 다사다난한 역사를 헤쳐 왔다. 유교의 유일한 언론매체로서 질타도 많이 받고 비난도 받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유교신문은 유림 여론의 흐름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올해로 유교신문 창간 45주년을 맞았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성큼 다가섰다. 유교신문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미래를 향한 성장을 모색해 보자 - 편집자 주 -
儒林時報에서 儒林月報로
유교신문은 1969년 유림월보를 제호로 태어났다. 불규칙하게 발행되던 이전의 유림시보에서 비로소 언론의 틀을 갖추고 첫 걸음을 뗀 것이다. 본격적인 유교 언론의 태동이었다. 하지만 신문제작과 배포 환경은 매우 어려웠다. 이때만 하더라도 유교신문 편집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성균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자체적으로 유교에 관 한글과 소식을 모아 신문의 형식으로 내는 것에 불과했다. 크기도 회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타블로이드판이었다. 오랫동안 성균관을 돕다가 작고한 이한우씨는 지난 2010년 경 유림시보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었다.
“당시에는 인쇄가 끝난 신문이 명륜당으로 왔다. 유림회관이 건립되기 이전이었다. 신문이 도착하면 성균관 임직원들이 모두 모여 우편 발송 작업을 했다. 밤늦도록 계속됐다. 다음날 아침에 우편 발송 작업이 끝난 신문을 우체국으로 가져가는 것도 큰일이었다. 차가 없으니 사람이 나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유교신문은 꾸준히 성장했다. 1975년에 공부자 탄강일의 스승의 날 제정 추진을 앞장선 것을 계기로 1977년에는 구독자 수가 2만 명을 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유교신문이 나가는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12.12 쿠데타와 광주민주화 운동 등 역사의 격변과 이로 인한 정기간행물법의 변경으로 80년대 초반 유교신문은 정간을 당해 결국 발행을 중단하게 된다.
가족법 투쟁에 앞장선 儒林會報
유교신문은 1982년 유림회보로 제호를 바꾸고 다시 태어난다. 유림회보는 1984년까지 계속된다. 이 시기 유림권의 주요활동은 호주제 폐지로 대변되는 가족법 개정이었다. 유교신문은 가족법 개정에 반대하는 유림들과 함께 했다. 유교권의 유일한 매체로서 유림의 여론을 이끌어 나간다. 유림과 유교신문의 강력한 투쟁으로 결국 80년대 초반 가족법 개정시도는 무산되고 만다.
신문의 틀 갖춘 儒敎新報
1987년 유교신문은 유교신보로 다시 제호를 바꾼다. 유교신보가 되면서 유교신문은 비로소 신문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다. 당시까지도 타블로이드판이었던 크기는 대판으로 바뀐다. 1988년에는 비로소 유교신문이 성균관 내에 독립기구가 되고 재정적 자립을 추진한다. 제작 환경도 자체 편집이 가능할 정도로 개선된다. 1987년 9월부터 발전기금 모금에 들어가 1억 원이 넘는 금액을 모금하는 커다란 성과를 거둔다. 1994년 1월부터는 지면도 2배로 확장된다. 타블로이드판에서 대판으로 지형이 바뀌었지만 지면은 그대로 이던 유교신문이 대판 4면에서 현재와 같은 8면으로 증면된 것이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유교신문은 1980년대 초 유림월보와 마찬가지로 가족법 개악을 반대하는 유림들을 대변하는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이 시기 유교신문은 가족법 개정반대를 주장하는 기사를 조선일보에서 인용해 크게 보도했을 정도로 당시 대한민국의 언론 매체 중 유림의 가족법 개정 반대 투쟁의 실상을 상세하게 보도한 유일한 매체였다.
儒敎新聞으로 태어나다
1999년 유교신보는 현재와 같은 유교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한다. 2001년 춘기석전 보도부터는 본격적인 컬러 인쇄 시대를 맞이한다. 세로 편집에서 가로 편집으로 지면도 쇄신한다. 2004년에는 살아있는 기사를 생산하고 지방 유림들의 여론을 지면에 반영하기 위한 주재기자 제도가 시작된다. 1기 주재기자는 명예기자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2004년 1기에는 전교와 유도회장의 추천을 받은 77명의 명예기자가 탄생했다. 주재기자 제도는 유교신문이 지방 독자들에게 성큼 다가 선 계기를 마려한 혁신이었다. 지난 해 3기부터 명예기자에서 주재기자로 이름을 바꾼 현 3기 주재기자는 60명에 달한다. 주재기자들은 자체 모임을 갖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006년 4월1일자부터는 유교신문 발행인이 성균관장으로 바뀐다. 유교신보에서 유교신문 초반기까지 (재)성균관 이사장이 발행인을 맡던 체제에서 유림과 함께 하는 새로운 체제로 유교신문이 바뀐 것이다. 2008년부터는 성균관 홈페이지에 유교신문 코너가 별도로 생겨 기사들이 게재되기 시작한다. 디지털 시대에 작은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2010년에는 주식회사 형태의 법인으로 유교신문이 새롭게 태어난다. 객관적 보도와 언론의 독립성 확보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未來로 나아가다
지난 4월4일 (주)유교신문사는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임기 3년의 제2기 이사회 체제를 출범시켰다. 유교 언론의 독립성을 유지시키려는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유림권의 유일한 정론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현재 유교신문은 증면과 섹션의 확대를 계획하고 있고 시사성 있는 인터넷 기사 송출로 실시간 보도 기능도 강화할 예정이다. 시대 흐름에 맞는 지면의 대대적인 개편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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