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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창간 54주년 특집] 유교신문 과월호에 기록된 여성유림 ①여성유림의 자세-조애영“여성은 가문의 전통 존중하고, 경로정신에 투철해야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지금과 달리 1973년 당시에는 여성의 숫자가 적었다.(통계청 홈페이지 인용)

 


 

통계청 홈페이지(https://kostat.go.kr)의 국가통계포털-2023년 추계인구 자료에 의하면 현재 대한민국의 총인구 5155만 8034명 중 남성은 2574만 9708여성은 2580만 8326명으로 여성이 오히려 더 많은 사실이 확인된다.

 

 

반면 1973년에는 총인구 3410만 3149명 중 남성은 1723만 4877여성은 1686만 8272명으로 예상대로 남자아이를 선호했던 분위기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각종 지표와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여성들의 변화상을 확인하고 분석하는 연구들이 다양한데지난 시간 동안 유교신문에서 여성유림들이 어떻게 보여지고 활동했는가를 살펴보는 과정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일정한 도움이 될 것이다.

 


 

 

유림월보 1973년 12월25일자 6면 하단의 유도회총본부 신년광고에 부녀부장으로 표시되어 있다.

 


 

 

유림월보 1974년 12월25일자 7면 하단의 신년광고에서도 여전히 부녀부장을 맡고 있음이 확인된다.

 


 

유교신문의 전신인 유림월보(儒林月報) 19731225일자 5면에 여성유림으로서는 최초로 게재된 조애영(趙愛泳, 1911-2000) 유도회총본부 부녀부장의 글 여성유림의 자세를 소개한다

 

조 부녀부장은 이후 1975년 523일 여성유림회(女性儒林會,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의 전신)가 창립될 때 초대회장에 선출되는데, 둘째 오빠 조헌영(趙憲泳, 1901-1988)의 둘째 아들로 청록파(靑鹿派) 시인이자 문학가로 유명한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의 고모였던 그녀의 삶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을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여성유림의 자세(姿勢)

 

 

 

조애영 유도회총본부 부녀부장

 

 


 

유림의 뜻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나는 옥편을 찾아보았다.

 

간단히 말해서 유도(儒道)를 닦는 학자들이라 했다.

 

유림이라면 머리에 갓 쓴 양반을 연상하게 되는데 여성유림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에는 시기상조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여성의 규방가사(閨房歌詞)로 바꿔 쓸까 한다.

 

한국문학상에 한 자리를 차지하는 규방문학의 내방가사 유래는 한시를 인용한 고문이 많은데, 유식한 부녀 뒤에 유식한 유림들이 지도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한문을 가르치지 않았다. 언문(諺文, 한글)만 가르쳐서 문안편지와 사돈에게 보내는 편지를 쓸 줄 알면 문장명필이라 했고, 내방가사 몇 필씩 짓는 것은 예사이다. 현대시에 비교하면 서정시와 비슷한 장가사와 단가 두 필을 소개한다.

 

 

 

1장 자장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은()자동()아 금()자동()

 

천지건곤(天地乾坤) 일월동(日月童)아 만첩산중(萬疊山中) 보옥동(宝玉童)

 

창해(滄海)바다 진주동(眞珠童)아 채색(彩色)비단 오색동(五色童)

 

수명장수(壽命長壽) 부귀동(富貴童)아 자손창성(子孫昌盛) 만복동(萬福童)

 

()을 주면 너를 살까 금()을 주면 너를 살까

 

나라에는 충신동(忠臣童)이 부모에는 효자동(孝子童)

 

동기간(同氣間)에 우애동(友愛童)이 일가친척(一家親戚) 화목동(和睦童)

 

동내(洞內)방네 의리동(義理童)이 친구(親舊)에는 유신동(有信童)...

 

 

 

2장 애련가(哀戀歌)

 

 

 

야월삼경 적막한데 독수공방 이내신세

 

뉘를 위해 살아가며 뉘를따라 예왔는고

 

우리 부모 날 키울제 금지옥엽 같이길러

 

남의 가문 보낼 적에 눈물짓고 안고나와

 

오색유리 사인교에 고이 태워 보내면서

 

한님 셋이 말을 타고 가마 뒤에 딸케하고

 

새 신랑은 앞에 서고 상객손은 뒤에 따라

 

바리바리 실은 짐은 신행가는 의롱이라

 

왈강잘강 방울소리 동네사람 부르듯이

 

간곳마다 구경꾼에 부끄럼을 참아가며

 

첫날걸음 육십리요 새날걸음 삼십리에

 

오리한님 마중나와 이내 영접하던 그날

 

시집 대청마루 끝에 가마채가 대자마자

 

유리영참 주름 걷고 데려내다시피하여

 

이리저리 끌려가며 대례청에 나갈 준비

 

초일부터 말이 많고 부산하기 한량없이

 

쪽도리는 머리위에 월연지는 이마위에

 

첩지머리 당겨매어 큰 비녀로 바꿔꽂아

 

큰 낭자로 목을 눌러 푹숙이고 서있으니

 

눈썹까지 풀로붙여 두손묶여 끌려갈제

 

왜밀성적 흰 얼굴에 연지 찍고 눈썹 그려

 

천하일색 비켜놓고 혼자미인 된듯한데

 

두손감은 명주수건 절할때엔 얼굴 가려

 

일가친척 모인 곳에 꾸벅꾸벅 절함이라

 

좌우한님 부축하여 안고서로 따라하니

 

앞 못보는 장님같이 시댁일도 모를내라

 

또 한 수모 부산하게 왔다갔다 수군수군

 

새댁대신 잔드리고 폐백상자 올렸도다

 

시부친께 올린 것은 고기 다져 만든 폐백

 

소주안주 하시라고 갖은 양념하여 담고

 

시모친께 옛 폐백은 입 다물고 계시라고

 

정성고리 차기 전에 수지골라 담았는데

 

층층이로 받는 절에 수도모를 폐백함이

 

왔다감도 볼 수 없는 대례청의 새댁이라

 

꾸벅꾸벅 절을 하고 꾸벅꾸벅 졸아댈 때

 

좌우한님 민망해서 꾹꾹찔러 깨우더니

 

한밤자고 이튿날에 떠날 행장 배변상에

 

비오듯이 뜨는 눈물 금치 못해 작변이라

 

산도 설고 물도 선 곳 뉘를 따라 예왔는고

 

초립동이 새 서방은 혼자 기뻐 벙실벙실

 

남의 딸을 끌고와서 사대봉사 맡겨놓고

 

곁에가서 글공부에 수개성상 보내더니

 

잔뼈굵어 어른되자 과거보러 서울가서

 

이따금씩 오는 서신 님본 듯이 보았어라

 

입던 옷이 돌아오면 땀내맡고 울어 세워

 

춘잠처서 짠 명주로 거울같이 다듬은 옷

 

낭군님께 보내고자 밤을 세워 꾸몄나니

 

오리오리 숨은 정성 우리님이 아실는지

 

춘풍추우 궂은 날에 이내 생각 하시는가

 

유두분면 찾아가서 허송세월 하시는가

 

초로인생 가는청춘 이내혼자 슬픔인지

 

장장추야 지루한데 달을 보고 묻는구나

 

우리 낭군 독서하다 구부리고 잠 드셨나

 

등잔불이 깜빡일 때 집생각을 하시는가

 

소동나무 열매털어 기름짜서 모아놓고

 

야심토록 공부하라 등불준비 하였건만

 

기러기도 우는 밤에 님은 어찌 안 계신고

 

산심야심 명월하에 안타까운 이내신세

 

가슴풀어 헤쳐노니 밝은 달이 만지난 듯

 

못온 님이 대신보내 어루만져 달래는 듯

 

백옥같은 젖가슴에 앵도같은 젖꼭지는

 

너무 익어 터질듯해 조심해서 감춘 사랑

 

어느 때나 오시려나 부디 성공하고 오소

 

오늘 밤도 일편단심 단을 모아 축원이라

 

과거보고 돌아올 때 풍악잡혀 들어오면

 

사당문을 열어놓고 분향재배 준비할 때

 

동네사람 모여들어 이내보고 흠선하고

 

우리 친정 딸내 중에 이내팔자 제일되리

 

미리 상상 기쁠시고 하늘같은 우리 낭군

 

천리유경 수년이라 형설지공 금의환향

 

말을 타고 오시려나 수레타고 오시려나

 

옥관자를 붙이려나 금관자를 붙이려나

 

산호동곳 은구영자 점잔하게 차린 행차

 

금의환향 하실적에 다른 계집 달지마소

 

우리나라 법치국가 삼강오륜 삼종지도

 

날 데릴러 님이 오면 여필종부 이내영광

 

조강지처 박대않고 부모조상 공경하면

 

수신제가 평천하에 일국공신 절로 되리

 

비나이다 비나이다 달님보고 비나이다

 

우리 낭군 보시거든 부디 이뜻 전해주소

 

쉽게 못올 님이라면 생각조차 말자하고

 

달밤에도 실을 꼬여 뜸새뜸새 꽂은 정성

 

한불두불 꾸며노니 서울가는 옷이로다

 

부대부대 이 옷입고 장원급제 하고오소

 

밤이 되면 임 그리워 한 개 두 개 쌓은 탑이

 

그럭저럭 이내 키와 거의 같이 되었도다

 

야속할사 명월이요 삼추같은 촌음이라

 

오동나무 그림 자에 고침안고 울어울어

 

가는 청춘 오는 날을 한숨지어 바꾸난줄

 

낭군님이 아신다면 필적인들 왜 못주리

 

오동낭게 부는 바람 수군수군 말하는 듯

 

백년고락 유타인의 여자신세 가엾어라

 

달은 어이 가지않고 날새도록 기다리며

 

귀뜨랑도 자지않고 울며울며 새우는고

 

저리 울어 님 부르고 이리 울어 님 온다면

 

나도 같이 울어세워 우리낭군 오시련만

 

수월간에 막힌 소식 오매불망 그리워서

 

밤낮으로 쌓인 회포 엮어보니 졸필이나

 

지필묵이 없었던들 이내 벗이 뉘가 되며

 

공산명월 아니들면 이내 속을 뉘 알리오

 

 

 

이 가사는 우리 어머님 책상자에서 발견했으나 해방 후 내 친정이 화재로 인하여 소실됐으므로 작자의 딸로서 다시 엮은 규방가사를 은촌내방가사집(隱村內房歌辭集)1부에 실었다.

 

작자 이호정(李鎬貞) 여사, 용계댁은 이퇴계 선생 종파(宗派)의 딸이 된다. 고종 갑술(甲戌, 1874)생이다. 아직까지 살아계셨으면 금년이 100세인데, 계축년(癸丑年, 1973) 세모(歲暮)에 유가 규방가사를 옮겨둔다.

 

조선시대 500년간 유림의 세도는 굉장했다. 벼슬을 하려면 성균관 유생으로 3년간이나 유림인 성균관 강사의 지도를 받아야 3년만큼 있는 과거 시험에 응할 수 있었다. 그 때에 운이 좋으면 알성급제 도장원이 되어야 어전에 들어가서 축배를 받았고, 벼슬에 오르는 진사(進士)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능한 인재를 배출한 성균관이요, 대성전에 모셔 놓은 공자님과 안자, 증자, 자사, 자맹자 다섯 분의 성현은 중앙··우에 봉안했고 제자 72현은 동서로 나누어서 춘추로 석전을 봉행하는 제관은 유림 자격이 있어야 당상, 당하로 오르내리던 모습!

 

나는 옛날을 돌아보며 눈물을 뿌렸다. 왜냐하면 공자님 정신의 인의예지와 윤리도덕관으로 법이 없어도 안심하고 살던 태평성세가 일장춘몽같이 사라져버렸다. 오늘날까지 유명무실한 유림의 존재는 해방 이후 극심한 파쟁과 분열로 자멸을 초래한 추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성균관이 건재하고, 유도회가 있으니 혼란한 이 시대에 등태후할(燈台後割)을 할 것인가.

 

나는 여성유림의 자세라는 글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한글이 전용되는 현 사회 유림들에게 확인을 얻고자 지면을 빌렸으니 동지가 있으런지... 옛날에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 했으니 유신정책에 따라가는 수밖에 없고, 윤리 도덕을 숭상하는 성균관대학 출신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굳이 여성유림의 자세를 말하라니 끝으로 몇 마디만 덧붙일까 한다.

 

조상을 숭배하던 유가 부녀자 여성들이여! 남의 가문(시댁) 전통을 무시 말지어다.

 

왜냐하면 천대받던 고문(古文)도 문화재요, 고물(古物)도 문화재이니 그러면 유식한 유림부녀 할머니들도 인간문화재로 등장될 날이 멀지 않았다. 경로 정신에, 알뜰한 살림살이를 잘 배우라고 부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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