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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오는 송사에 아무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크게 길하다. 상에 말하기를 ‘아무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크게 길함’은 중정하기 때문이다.(송괘 구오)
공자님이 돌아가시자 곧바로 묵자(묵적)가 태어나서 ‘겸애’의 사상을 폈고, 그로부터 40년 후에 양자(양주)가 태어나서 ‘위아’의 사상을 폈다. 묵자와 양자는 춘추시대 말엽에 태어나서 전국시대 초기를 산 철학자이다.
맹자는 “양자는 자기만 위하면서(爲我) 살았다. 내 몸의 털 하나를 희생해서 천하가 이롭게 되어도 하지 않았다. 묵자는 누구나 똑같이 사랑했다(兼愛). 내 몸이 없어지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면 하였다”고 평가했다.
묵자는 친한 사람이나 관계가 먼 사람이나,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대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하는 일이라도 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전국시대를 살면서 겸애를 주장하는 것은 바보멍청이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당시 겸애설은 중국의 모든 나라에 통하는 주장이었다. 강대국의 포악한 탐욕을 물리칠 수 있었고, 묵자의 보증을 받은 제자들이 각 나라의 재상이 되어 겸애를 실천하였던 것이다. 겸애사상은 인간의 탐욕에 의한 전쟁을 잠시 막을 수 있었지만, 빼앗고 약탈하려는 본능적인 욕구 앞에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더 잘 살겠다, 내 것이 더 소중하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무시한 이론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철저한 이기주의자인 양자에게는 남을 위한 수고나 봉사라는 개념이 없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아사상은 함께 노력하며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만족시킨 면이 있으므로, 전국시대뿐 아니라 현재의 중국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만나도 모른 체하고, 다른 사람이 몰매를 맞고 있어도 모른 체 지나가는 것을 최고의 보신책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들보다 반백년을 일찍 태어나서 춘추말엽을 사신 공자님은, 평생을 ‘인’을 주장하셨고, 그 실천 방법론으로 예기의 ‘친친지쇄’를 말씀하셨다. 노나라 애공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친족을 대접할 때 먼 친척은 예를 줄여나가고, 현인을 높일 때도 차등을 둔다. 이러한 원칙에서 예절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가까운 친척은 자주 만날 뿐 아니라 대접도 잘하고 먼 친척일수록 대접을 줄이며, 부모는 3년상을 치르고 먼 친척은 짧게 애도하는 것이다. 또 크게 훌륭한 분은 일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그보다 못한 사람은 대접을 줄인다. 그것이 바로 인성의 자연스런 표현이고, 예절의 분수에 합당한 것이라는 것이다. 친친의 방법은 수신해서 평천하 하는 데에도 적용된다. 나부터 인을 체득한 뒤에, 가까운 주변 사회로, 국가로, 나아가 전세계로 펼친다. 인을 적용하는데도 순서와 차등이 있는 것이다.
맹자도 “동물이나 식물을 사랑하고 아끼기는 하지만 인하게는 대하지 않으며, 백성을 인하게 대하기는 하지만 부모처럼 대하지는 않는다. 부모를 친애하고 나서 백성을 인애하며, 백성을 인애하고 나서 동물이나 식물을 아끼는 것이다”하며, 군자가 인애를 하는 것도 차등과 순서가 있다고 했다.
겸애와 위아의 중간에 공자님의 친친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서 세상을 이롭게도 하고 어지럽게도 한다. 인간의 본능을 추구하면서도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인간성을 살리면서, 단계적으로 세상을 구제하고자 한 공자님만이 만세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역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자기 욕심이 먼저라고 다툴 적에는, 본성을 잘 살펴서 단계적으로 다스려야 성공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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