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5 (금)

  • 맑음동두천 28.0℃
  • 맑음강릉 28.8℃
  • 맑음서울 27.8℃
  • 맑음대전 29.2℃
  • 맑음대구 27.8℃
  • 맑음울산 24.0℃
  • 맑음광주 27.2℃
  • 맑음부산 23.1℃
  • 맑음고창 23.8℃
  • 맑음제주 23.5℃
  • 맑음강화 23.4℃
  • 맑음보은 27.3℃
  • 맑음금산 29.0℃
  • 맑음강진군 24.4℃
  • 맑음경주시 25.9℃
  • 맑음거제 22.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사설> 이인호 KBS 이사장은 유림들을 모독하지 마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한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705명 중에는 종교 부문에 유교 관련자 7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이들은 경학원의 대제학이나 사성을 지냈고, 조선유도연합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자들이다.

7명 중의 한 명인 이명세(李明世, 일본명 春山明世 1893~1972)는 이완용에 버금가는 인물로서 광복 이전에는 친일로, 광복 이후에는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부역한 골수 친일파다.

그런데 일반인에게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행적이 최근 새삼 회자되고 있다. 자기 할아버지의 추한 과거를 미화하고 왜곡하기 위해 심산 김창숙 선생과 유림들을 모독하는 이인호 KBS 이사장 때문이다.

이명세는 1939111일 친일 인사들을 앞세워 한국인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총독부가 조직한 사이비 유림단체인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참사로 선출됐고 194161일에는 상임이사로 선출됐다.

194110월에는 일제의 태평양전쟁 지원을 위해 여러 단체들을 통합해 조직한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1944422일 경학원의 사성으로 임명됐다. 일제가 일왕의 하사금으로 성균관을 경학원으로 바꿨을 때 정통 유림들은 일제의 하사금을 거부하고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나라를 세운 이래 만세일계의 천황을 받드는 빛나는 역사를 가지며, 세계 인류를 위해 최고 문화의 건설을 사명으로 하는 우리 일본은 이번 대동아전쟁을 계기로 동아 신질서 건설을 실현하고자 또 하나의 걸음을 내디뎠다며 일제를 찬양했다.

조선의 청년들이나 그 부모들을 상대로 일제를 위해 태평양전쟁에 나가 싸워 죽으라며 집안에선 아들 난 것을 중한 일임을 더욱 알고 나라 위해 죽는 것은 가벼이 여겨야 하리 우리들은 후회 없나니 하루빨리 전란의 시대가 평화의 시대 되길 바랄 뿐이라네라고 노래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자기 할아버지의 이런 친일 행적과 발언을 두고 유학의 세를 늘려가기 위해 일제 통치 체제하에서 타협하면서 사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친일을 단죄하면 일제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다라고 망발을 했다.

또한 이명세는 1957711일 심산 선생을 축출하라는 이승만의 밀명을 받은 이른바 재단파가 폭력으로 심산 선생을 몰아내고 유도회와 성균관대를 차지하자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장에 취임한다. 이들은 기독교 신자인 이승만을 유도회 총재에 추대하고, 역시 기독교 신자인 이기붕을 최고 고문에 추대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이를 두고 다른 이의 입을 빌려 당시 일제가 요구하는 협력의 글을 쓰실 수밖에 없는 위치에 계셨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의 목표는 서양의 사조에 맞서 유학의 영향력을 증대시키자는 데 있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김창숙 옹을 총장으로 영입하셨으나 현대 대학의 역할에 대한 감각이 맞지 않아 분규가 발생했던 적도 있다고도 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자기 할아버지의 친일 행각을 변명하기 위해 일제에 목숨을 걸고 항거했던 항일의병장들을 유학의 세를 스스로 갉아먹은 이들로 전락시켰고, 일제에 타협하지 않고 독재와 맞선 심산 김창숙 선생을 유교의 세를 위축시킨 유림분규의 장본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망발을 일삼던 이인호 이사장은 권력에 기대어 자기 할아버지의 친일 행각을 비호하고 친일 청산을 적극 방해하려고까지 했다. 이 때문에 이제는 그 죄악이 자기 할아버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무너진 권력의 끝자락에 집착하는 자신의 모습이 자기 할아버지의 죄악을 더욱 각인시킬 뿐이라는 점을 왜 모를까.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