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9일 성균관 명륜당에서 이제 막 성인이 된 2명의 젊은이가 성년례를 치렀다. 예년에 비해 규모는 단출했지만 전통 성년례를 치르고 이제 막 어른 대접을 받게 된 두 젊은이의 어깨 위에 지워진 책임의 무게는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성년례 즉 관례와 계례는 예로부터 인생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4대 통과의례 중 하나로 꼽혔다. 아이에서 어른이 됨으로써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할 삶의 대한 책임의식을 우리 선조들은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관례가 부모뿐만 아니라 집안 어른들까지 참석하는 큰 행사로 치러진 것은 성년이 된 젊은이에게 주위 사람들이 지금부터 당당하게 어른대접을 해 주라는 배려였다. 동시에 그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시 한 번 각성하라는 의미였다.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려는 배려였다.
지금 우리들은 이 사회가 얼마나 무책임한 곳이었던가를 다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외양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미성숙함을 그리고 그 미성숙함 즉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가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가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있다.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이 보여준 무책임 그리고 경영주와 그에 동조하는 일부 종교인들의 자세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너무 크고 무겁게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우리 주위의 무책임이다.
근래 들어 우리 유림권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기본적인 규정조차 지키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 듯 일처리를 했다가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를 우리는 지난해부터 봐 왔다. 미성숙함은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한 이후에 여실히 드러난다.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고 이것이 논란과 비판의 대상이 됐음에도 문제점조차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대세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과정상의 오류일 뿐이다"라는 자세는 무책임을 자인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수학에 임계곡선이라는 것이 있다. 작은 함수 값의 변화만으로도 이전과 전혀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곡선이다. 미세한 차이가 양이 아닌 질을 결정할 때 예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작은 것을 지키지 못하는 자세가 어른인가 아이인가를 결정하는 분기점이 되는 것이다. 책임지는가 질 수 없는 가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 작은 차이는 언제든지 커다란 결과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다.
책임은 바른 원칙을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작은 것이라도 말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미성숙함을 다시 볼 수 없기를 바란다. 성년례를 통해 아이에서 어른이 되듯이 유림도 사회도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한 뼘 더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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