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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육은 항상 빠르게 흔들린다. 흉하다. 상전에 말하기를, 항상 빠르게 흔들림으로 위에 있으니, 크게 공이 없다(항괘 상육).
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전한 200여 년, 후한 200년을 유지하다가 조조의 위나라에게 망하자 중국은 360여 년간의 대 혼란기에 들어간다. 이른바 위진 남북조 시대이다.
이러한 혼란기에 종지부를 찍고 중국을 통일한 나라가 수나라이다. ‘수’는 춘추시대의 나라 이름이다. 수나라를 세운 양견의 아버지 양충이 수국공(隨國公)에 봉해졌고, 양견이 그 작위를 세습하더니 건국할 때 나라이름으로 썼다. 그전부터 수 땅은 난리가 많이 나서 허둥대는 곳이라 하여, ‘수(隨)’자에서 ‘달릴 착(辵=辶)’자를 뺀 ‘수(隋)’자를 쓰곤 했는데, 양견이 그럴 듯하게 여겨서 나라이름을 ‘수(隋)’로 고쳤다.
수나라의 등장은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 특히 중국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며 영토를 넓혀가던 고구려와 백제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주변의 국가들이 20만 명의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거의 최대치였다면 수나라는 한순간에 100만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었다. 어떤 나라든지 마음만 먹으면 멸망시킬 수 있다는 오만함은 모두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어라 하는 거만한 폭력이 되어 나타났다.
수나라를 건국한 문제는 노회한 임금이라서 물러날 때를 알았다. 동아시아의 강국인 고구려를 치다가 패배하자 나라가 망할까 염려해서 그만두고, 장강으로부터 북경까지 운하를 뚫다가 백성이 힘들다고 하자 그만 둔 것이다. 하지만 그 아들 양제는 아버지와 형을 죽이고 황제로 등극한 사람이다. 양제(煬帝, 불을 때고, 쇠를 녹이고, 모든 것을 말려버리는 임금)라는 시호가 말해주듯이 그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처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임금이었다. 중국 북부의 위협세력인 돌궐과 교류하며 굴복하지 않는 고구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황(문제) 시대의 패배도 기분이 나빴다.
서력기원 612년! 기어코 그가 동원한 113만이라는 병력이 고구려 요동성으로 밀려들어왔다. 고구려의 가동병력이 2~30만 명으로 훨씬 적었지만 수나라 군대의 패배는 이미 정해졌다. 첫 번째 원인은 고구려 백성들의 나라사랑과 문화적 자부심이 컸기 때문이다. 청야작전을 펴자고 하니까 주저없이 자기의 삶터를 불태우고 국가를 위해 하나로 뭉쳤다. 요동성의 백성들도 30배가 훨씬 넘는 적병들을 겁내지 않고 병사들과 합심해서 용감히 항전했다.
두 번째 원인은 남을 믿지 못하고 잘난 맛에 사는 양제가 모든 군사적 명령을 자신에게서 나오도록 한 것이다. 이를 알아 챈 요동 성주가 조금만 불리하면 항복하겠다고 하고, 그러면 북경에 있는 양제에게 “어떻게 할까요?”하고 파발말을 보내고 양제의 대답을 가지고 파발말로 오는 동안 고구려 병사는 휴식을 취하면서 요동성을 수리할 수 있었다. 다섯 번의 거짓 항복과 거센 항전에 3개월 이상을 요동성에 묶여 진군을 못하자 양제가 직접 요동성으로 와서 군대를 다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세 번째는 병사들에게 자기가 먹을 식량을 자기가 운반하도록 한 것이다. 겨울의 추위가 두려웠던 양제가 30만의 특수 정예군을 선발해서 평양성을 기습하도록 했다. 아무리 정예군이라 하지만 50kg이 넘는 짐(100일치의 식량과 보급품)을 지고 전투를 하면서 500km를 행군할 수는 없었다. 결국 식량을 버렸고 고구려의 청야작전으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병사들이 패배하며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항상 마음대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위에 있으면 크게 흉하다’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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