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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창간 54주년 특집] 유교신문 과월호에 기록된 여성유림 ④여성유림회 창립 1주년을 맞으면서-호영희

“권위의식과 배타적인 완고한 생각을 버리고, 사회와 가정의 윤리를 되찾는 데 앞장서자”

유교신문의 전신인 유림월보(儒林月報) 1976425일자 6면에 게재된 호영희(扈英姬, ?-1991) 여성유림회 부회장의 글 여성유림회 창립 1주년을 맞으면서를 소개한다.

 

조애영 초대회장이 유림월보에 내방가사와 풍속에 관한 글을 종종 게재하며 우리 글과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렸다면 호영희 부회장은 그 외의 다양한 글을 투고하며 여성들도 논리적이고 수준 높은 글쓰기가 가능함을 증명했다.

 


 

 

 

유교신문의 전신 유림월보 1976년 5월25일자 1면에 '여성유림회 창립1주년 행사' 소식이 전한다.

 


 

 

앞서 호영희 부회장은 유림월보 1976년 4월25일자에 '여성유림회 창립1주년 회고글'을 게재했다.

 


 

여성유림회 창립 1주년을 맞으면서

 

 

 

호영희 여성유림회 부회장

 

 

 


 

가난한 선비집 맏딸이 비록 따뜻한 강보(襁褓, 포대기) 하나 제대로 마련 못했을 망정 조상의 전통과 고고(高孤)한 기품을 자랑으로 태어나듯 우리 여성유림회가 그렇게 조용하고 수줍게 태어난 지 어언 1년이 되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역시 한사(寒士, 가난한 선비)집 딸됨을 간직한 채 화려한 아무것도 안 가진 검소하고 순수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크게 외쳐본 일 없고, 안에서 내 주장을 하여 크게 풍파를 일으킨 일없이 있는듯하면서 없고, 없는 듯하면서 있어 온 1년이었으나 회원 한 사람 한 사람 자질향상을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유림이라고 마구 말하기조차 송구스러운 이 산하에 감히 모여들었다는 일 자체와 기존 남성유림들의 관용과 협조가 우리나라 유교계의 큰 혁명이었다고 생각된다. 시대변화에 가장 고루하고 보수적이라고 지탄받던 오류를 깨끗이 벗었다고 생각된다.

 

집에서는 시부모 모시고, 지아비 섬기며, 자녀들의 뒤바라지 틈을 내어 여성유림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자 너무나 엄숙한 역사의 전당인 명륜당에 모여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하시던 공자님의 가르침을 되새겨보는 감회란 벅차고도 황송한 것같다.

 

춘면불각효(春眠不覺曉) 처처문제조(處處聞啼鳥) 야래풍우성(夜來風雨聲) 화락지다소(花落知多少)’. 옛 시성(詩聖, 뛰어난 시인)의 시구를 넘겨다 보는 멋은 견줄데가 없는 것이고, 장한가(長恨歌)를 읊조리며, 당명황(唐明皇, ()나라 6대 황제 현종(玄宗, 685-762))과 양귀비(楊貴妃)의 애틋한 사랑을 눈물겨워 할 수 있는 이러한 오붓함은 우리 여성유림회원들의 홍복(洪福)이라고 할 것같다.

 

비약과 고속질주를 거듭하며, 마음의 길이 막히고, 오직 물질만이 추구되는 이 현실을 조금이나마 정화하자는 우리의 갈망을 우선 우리 회원들의 마음에서부터 찾자는 뜻에서 시작된 서도(書道)는 날로 멋스러운 글씨형태가 이루어지고, 붓놀림이 익숙해가는데 지도해주시는 스승님의 입가에 웃음을 지어드린다.

 

적막하리만큼 고요한 실내에 묵향을 듬뿍 마시며, 한 획 한 획에 정성을 다해 그어가는 이 운치 또한 누구에게 있어 가질까 두려운 행복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은 그렇게 원원(垣垣)한 세월만은 아니었다

 

많은 회원들이 명심보감강의 도중 가사(家事)로 해서 탈락된 일도 아쉽거니와 많은 수의 서도회원(書道會員)이 병으로해서 기권이 되고, 가정사정으로 유종의 미를 같이 못 가질까하는 근심은 오늘까지도 버릴 수 없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은 우리 회가 창립된 지 5, 6개월 후인 겨울을 넘긴 기막힌 얘기다.

 

연료의 준비도 못해놓고, 오붓한 방 하나 마련 못했는데 입동(立冬)은 닥치고 서슬한 찬바람이 소매 속으로 스며드는데, 다 허물어져가는 고가(古家) 마루바닥에 비닐 한 장을 깔고 금새라도 눈이 쏟아질 것같은 하늘을 쳐다보던 쓰라린 회상은 영원히 못 잊을 것같다.

 

벼루와 먹붓을 한 아름 쓸어안고 조(애영) 회장 주택 온돌방을 찾던 일이나 난로가 잘못되어 허둥지둥 법석을 치던 일 등등 헤아리기조차 괴로운 일이 너무나 많아 '방학이라도 해서 이 고비를 면해보라'는 많은 권고를 들을까도 몇 번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싹이 터서 세상구경을 할 찰나에 쉰다면 이것은 재기가 도저히 어려울 것만 같은 두려움에서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하던 어느 시인의 시 구절만을 되뇌이면서 강행군을 결심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뭉클하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은 신림동 먼길에 한 번도 안 빠지고 나오시는 손 여사, 동생까지 데리고 나오신 정릉의 이 여사, 언제나 짝을 지어 웃음으로 방안을 덥혀주던 윤 여사와 소현부인들 틈에서 언제나 말이 없이 의젓한 구() , 그 바쁜 중에도 열의를 쏟으시던 성대의 변() 선생. 이러한 분들의 집념이 아니었던들 1주년을 맞는 오늘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을 것같다.

 

그렇게 무섭고 긴 겨울을 지내고난 오늘에는 그만큼 저항력도 키워졌고, 세상사는 요령이라도 얻은 듯 느긋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회가 성장했다는 얘기도 된다.

 

사무실도 말끔히 단장되고, 더욱이 서도하는 방에 장판이 새로 깔렸다는 전갈을 받은 이 순간의 기쁨은 마냥 설레이기만 하다.

 

우리 여성유림회는 가정우선주의이기 때문에 단체의 발전은 더디다는 것은 숨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정을 등한히 하고, 여성유림회를 키워가는 만용은 하고 싶지 않다. 회원 각자가 충실한 가정의 주부일 때 그것이 더 보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여가에 수신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올바른 가정윤리를 찾는 것,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우리 회의 궁극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더욱 날로 쇠퇴해가는 윤리를 바로 잡아야하는 현실이 오늘날 같이 주부에게 요구되는 때는 없는 것같다. 가속되는 생존경쟁에서 남성들은 기진(氣盡)을 해 자녀들의 교육까지 염려할 수 없는 시점에 와 있으니 주부들의 책임 또한 여간 무거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주부 자신들의 자질을 닦아야할 필요가 여기있는 것이다.

 

크고 작은 도시에 수십 개씩의 교회가 없는 곳이 없고, 방방곡곡 사찰이 없는 곳이 없으며, 예수탄일이 교인이 아닌 일반 사람에게까지 명절이 된 것은 옛 일이려니와 작년(1975)부터는 부처님 오신 날이 공휴일이 되었고, 금년에는 수천 명의 복역수(服役囚)가 석가(釋迦)님의 은전을 입어 햇빛을 보는 등 너무나 눈부신 확세를 해가고 있는데, 유교에 대한 관심이나 공자님에 대한 존경같은 것이 젊은층에 갈수록 희미해가는 사실을 막연히 바라보고 있는 유교계를 볼 때 너무 답답한 생각만 든다.

 

이 나라에는 그래도 몇 분의 유학자가 있을 터인데 이렇게 속수무책일 수가 있으며, 유교의 총본산인 성균관에서는 명륜당 뜰에 나무나 가꾸고 있어야할 것인지?

 

내 나라 정신을 찾고, 내 나라 언어를 찾고, 우리의 도의를 되찾자고 국가에서 부르짖고 있는 이때 어째 적극 호응해서 올바른 유교정신을 기본으로한 윤리를 되찾아보려는 노력이 왜 이렇게 미약한지? 1년간 성균관에 드나들면서 느낀 감상은 가슴에 커다랗게 받은 실망을 어서 희망으로 돌렸으면하는 조바심뿐이다.

 

전인구의 8할을 차지하는 것이 젊은이고, 사회의 주인공이 젊은이인데 그 젊은이들에게서 소외되는 유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사물이 현실에 발을 딛고 뿌리를 내리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권위의식과 배타적인 완고한 생각을 버리고, 오도(誤導)되고 있는 관념은 바로잡아야 하며, 현실적으로 비합리한 것은 좀 더 연구해서 타당한 윤리를 정립시키는 것은 유교에 뜻을 둔 사람의 책임인 것같다.

 

일찍이 공자님도 사람을 물에 비유하셨거니와 물은 흘러야지, 고여 있으면 썩는 것이고 물의 흐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진리를 현실성을 토대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이치와 합일된다고 생각한다.

 

뜻있는 사람의 가슴 속에 향수같이 짙게 남아있는 유교정신이 메마르기 전에 좀 더 원활한 움직임을 보여 사회와 가정의 윤리를 되찾는데 앞장을 설 사람은 모든 유림회원이어야할 것같다.

 

이렇게 도의가 되찾아지고, 우리 여성유림회 숙원사업인 불우아동교육, 노인학교와 무의탁노인문제 등등 꿈꾸고 있는 일이 금년도에 얼마간이라도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노력하고 있다.

 

5월의 태양이 이렇게 찬란하고, 이 강토에 만물의 싱그러움이 년년세세(年年歲歲) 이어지는 한 우리 인류가 생존하며, 거기에는 도덕과 윤리가 있을 것이며, 따라서 우리 여성유림회원들의 책임은 중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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