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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구는 자꾸 욕심내지 마라. 혹 해치는 사람이 올 것이니, 초심이 변해서 탐욕이 되었으니 흉하다. 상전에 말하기를 ‘자꾸 욕심낸다’는 것은 자기 욕심에 너무 치우쳤다는 말이고, ‘해치는 사람이 온다’는 것은 칠 사람이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익괘 상구).
오래간만에 황석공소서를 보다가 “길막길어지족(吉莫吉於知足:길한 것은 만족함을 아는 것보다 길한 것이 없고), 고막고어다원(苦莫苦於多願:괴로운 것은 소원이 많은 것 보다 괴로운 것이 없다)”라는 대목을 보고,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만족할 줄 알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한데, 원하는 게 많으면 고통의 길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인데, 평소 욕심에 가려진 마음이라서 그런지, 어디까지가 욕심이고 어디까지가 뜻을 세운 희망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 밑에 있는 장상영의 주석을 보니, 좀 더 확연하게 다가온다.
“성인의 도는 맑고 욕심이 없어서, 일이 발생하면 대응하고 일이 떠나면 대응하지 않으니, 특별하게 원하는 것이 없다. 하지만 진 시황(秦始皇)과 한 무제(漢武帝) 같은 사람은 원하는 게 많은 사람이다. 나라는 부유하게 되기를 원하고, 군사는 강하기를 원하며, 공(功)은 높기를 원하고, 이름은 귀하게 되기를 원하며, 궁궐은 화려하기를 원하고, 궁녀들은 아름답고 요염하기를 원하며, 사방의 오랑캐가 자신에게 굴복하기를 원하고, 그러면서도 신선이 되어서 영원히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나라는 더욱 가난해지고 군사는 더욱 약해졌으며, 공은 더욱 낮아지고 이름은 더욱 완고하다는 소리를 들어서, 마침내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낭패를 보게 되었다. 원하는 것이 많아서 괴롭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원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는 안 될 것이고, 어진 사람이 몸을 기르는 방법도 또한 지키는 바가 간략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 두 손 모두 좋은 것을 잡고 있으면, 더 좋은 게 나타나도 잡을 수가 없다. 손을 비워야 새로운 욕심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원숭이를 생포할 때, 항아리 안에 바나나를 넣고, 원숭이 손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구멍만 남기고 항아리 입구를 메꾼다. 그리고 항아리를 들판에 고정시켜 놓으면, 항아리 속의 바나나가 탐이 난 원숭이가 다가와 바나나를 움켜쥔다. 빈손일 때는 항아리 속으로 손을 들이밀 수 있지만, 일단 바나나를 움켜쥐면 손이 커져서 항아리 밖으로 손을 뺄 수가 없다.
바나나만 놓으면 바로 빠져 나갈 수 있지만, 원숭이는 한번 손에 움켜쥔 바나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사람이 다가가 원숭이를 생포할 때까지 바나나를 움켜쥐고 있다가, 잡히고 나서야 바나나를 포기한다. 포기해야 자유로울 수 있는데, 원숭이에게 한번 움켜쥔 바나나는 몸을 망치고 나서야 포기가 되는 욕심이다.
시황제나 무제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욕심에 자신을 망쳤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누리고자 하면서, 동시에 신선이 되어야 가능한 영생을 원한 것이다. 불로초를 구하려고 진심으로 열심이었던 시황제! 또 자신이 직접 신선이 되어 영생하려고 한 무제가 “신선이 되려면 맛있는 것도 먹지 말고, 요염한 궁녀도 가까이 취하지 말며, 부귀와 명예에 대한 욕심도 버려야 됩니다”라는 방술사의 말에, “그러고 신선이 되어 오래 살면 뭐하나?”라고 한탄하였다. 죽기 전에야 부귀영화와 영생은 양립할 수 없는 허황한 욕심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욕심을 끝없이 부리면, 해칠 사람은 어디에서나 끝없이 찾아오니,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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