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의원회관 928호에 위치한 소병철 의원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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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 얼굴을 마주한 소병철 의원과 안세진 선임비서관이 자리한 가운데 인터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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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병철 의원은 첫 인상은 근엄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편견을 사라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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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서로 웃음을 주고 받으며 인터뷰가 진행됐다.
「성균관·향교·서원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의 지난 6월30일 국회 본회의 통과와 관련해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 겸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으로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소병철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요청들을 반영해 8월22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회 의원회관 928호 소병철 의원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1. 지난 경력들을 살펴보니 광주일고, 서울대 법학과 등의 명문학교와 1983년 사법시험 합격, 1986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임관 후 법무부 검찰과장·정책기획단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대검 형사부장, 대전지검장, 대구고검장, 법무연수원장 등 화려한 내용이 눈에 띄는데, 퇴직 후 법조계의 관행인 전관예우를 따르지 않고 농협대, 순천대 석좌교수 등을 하다가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영입되어 정치권에 입문하셨습니다. 최소 수십억원 이상의 수입과 사회적 명성 등을 포기하신 셈인데, 이렇게 특이한 과정을 지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퇴직을 앞두고 유명한 법무법인들과 명문대 로스쿨에서 대표직, 교수직을 제안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교수부터 하고 싶으면 1~2년 하고 오시라’며 기다려 준 법무법인도 있었습니다만 검찰 재직시절에 보니 법원은 조무제 전 대법관 등 퇴직 후 전관예우를 거부하고 의미있는 삶을 사는 분들이 계셨으나 검찰은 그런 경우를 보지 못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서울신문 ‘공직열전’에서 검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추천되고 ‘검사를 하려면 소병철처럼 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상황에서 저라도 전관예우를 따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후에 변호사 대신 더 낮고, 더 의미있는 곳을 찾다가 농촌지도자들을 양성하고 조합장, 부녀회장, 청년회장 등 현직 농촌지도자들을 재교육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농협대를 발견해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전국 순회강연도 많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송영무 총장님의 권유로 고향에 있는 순천대 석좌교수도 겸임했는데,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법조인, 검사로 일하는 것은 주저 없이 곧바로 하겠으나 이미 지나온 길처럼 변호사를 하지 않으리라고는 솔직히 완전히 자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2013년 12월 법무연수원장 퇴직 시점에서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2.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단호하게 거절했다가 4년이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는 인재영입 케이스로 민주당에 입당해 이미 지역에서 시장, 국회의원 선거 등으로 높은 인지도를 가진 무소속 후보를 예상과 달리 압도적인 차이로 이기고 당선되셨습니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로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겪으셨을 텐데,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습니까?
고향인 전남 순천 지역에 전략공천을 받아 한 달이라는 짧은 선거운동기간이었지만 하루를 백일처럼 열심히 달렸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당시 화두였던 검찰개혁과 문재인 정권의 성공을 원하는 시민들의 염원이 반영되어 당선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 대결했던 상대 후보가 지금은 순천시장으로 있는데, 국회의원과 지역 단체장의 협업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으로서 노력하고 싶은 당연한 열의가 있지만 협업은 쌍방의 협조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여러가지 고충이 많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순천시의 현안들에 대해 변함없이 최선을 다해 달성하도록 노력할 것이므로 순천시에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그렇게 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이전에는 자긍심과 만족감, 명예를 중시하며 살아왔는데 정치에 입문하니 사람들이 이전의 삶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처음 선거유세를 다니는데 다른 정당의 후보가 저를 공격하며 ‘소병철 후보는 순천에 와서 휴지 하나 주워본 적이 없다’고 비난을 하길래 ‘봉사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봉사는 순천 사회의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순천대에 와있는 6년 동안 무보수로 일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도 처음 계약시 보수 조항에 급여 내용이 있기에 두 줄로 긋고 수정표시를 한 후 학교에 보내서 급여를 받지 않았고, 다만 저녁시간에 진행되는 CEO과정 강연도 그렇게 하려고 했더니 ‘다른 강의자들도 계시니 이러면 곤란하다’고 해서 그렇게 받는 금액은 제 사비까지 보태서 학교에 발전기금으로 기부했습니다.
그렇게 해왔는데도 정치를 하니 음해와 공격이 끊임없이 들어오는데, 예를 들어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부분들은 국회 사정이 어렵지만 참을 수 있겠으나 제가 평생을 살면서 끝까지 지키고 있는 청렴성을 공격하는 부분은 참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국회와 정부를 상대한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기본적으로 평균 주 1회 이상, 많은 경우에는 주 3회까지 지역구를 방문하고 있는데, 23개 읍·면·동으로 이루어진 도·농 지역 특성상 한 바퀴만 돌아도 여러 달이 걸리곤 하니 ‘왜 요즘 얼굴을 볼 수 없냐?’는 말씀들을 하실 때는 저도 좀 난감합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지역구 활동을 하는 정치인들 대부분이 어딘가에서는 뭔가를 하고 있을 테니 좋게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3. 검찰 재직시절 보셨던 정치권의 모습은 어떤 느낌이었으며, 실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속에서의 정치권은 어떠합니까? 얼핏 보기에 의원님은 점잖고 원리원칙주의자인 것 같아 정치와 맞지 않은 측면이 꽤 있는 듯하여 질문합니다.
이전에 일했던 법률가는 정치에서 만들어준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일을 해왔는데 비해 정치는 헌법 등에서 보장하는 바와 같이 법률을 제정하는 권한과 역할을 하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진흙탕으로도 비유되며 부정적인 인식이 매우 높았던 정치에 대해 저 역시 호의적이거나 긍정적인 평가는 하지 않았었고, 죽마고우인 우윤근 전 민주당 의원이 정계입문을 권했을 때도 단호하게 거절했으나 지난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찾아오신 분이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생각에 일부 변화가 생겨 그 이후부터 심각하게 고민했고, ‘된장찌개 한 그릇 먹으며 오늘도 야근’하는 평범한 검찰 후배들이 공직자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해야겠다 싶었으며, 고향을 오가며 목격한 낙후된 모습을 고쳐나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정치를 하게 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제가 지금은 국회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맡고 있고, 특히 법률안이 본회의에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법사위의 야당 간사로 있다 보니 지금처럼 다양한 부문에서 갈등과 대립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중재자로서 국가 발전을 모색하고, 합리적인 조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며, 보다 나은 세상을 우리 후세들에게 물려 주는데 일조하려고 합니다.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 처음에는 제 성향이 판사가 맞는 줄 알았는데, 막상 법원과 검찰에서 시보로 일해보니 직접 피의자를 대하며 속사정까지 파악하고 재량범위에서 조정이 가능한 점 등이 매력으로 느껴져 검찰로 방향을 틀었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저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성향인 것같습니다.
그리고 행정은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를 개혁하는 형태’인데 비해, 정치는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거기에 맞춰서 끌고 가는 형태’이니 상당한 매력이 있습니다.
4. 홈페이지(www.assembly.go.kr/members/21st/SOBYUNGCHUL)를 찾아가 살펴보니 2020년 5월30일 제21대 국회 임기 시작 이후 지금까지 85건의 법률안을 대표발의하고, 433건을 공동발의했으며, 법사위·정무위·정보위원회에서 활발하게 의정활동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약 3년 3개월여의 기간 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일과 가장 기억에 남는 일, 그리고 꼭 하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못해서 아쉬운 일을 각각 1가지씩만 들어주십시오.
지난 3년 3개월의 의정활동 중 보람 있었던 일은 4단계의 의정활동 목표를 수립하고 완성해 간 것이었습니다.
1단계는 ‘과거의 상처 치유’로 대한민국의 비극적 현대사였던 여·순사건(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 순천지역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제주도 4·3사건 진압 출동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으로 인하여 정부군이 진압하는 와중에 민간인 상당수에 대해서도 사상(死傷)이 벌어짐)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해서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하여 사건 발생 73년만에 제정에 성공하였습니다. 지난 20년간 수 차례 발의 되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것을 ①전남 동부권 의원들의 단일법안 마련, ②유족회의 전적인 신뢰 확보, ③다른 당 의원들에 대한 설득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2단계는 ‘지역구인 순천의 미래 계획과 준비’로 이를 위해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지원 및 사후활용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정하여 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기틀을 마련하였고, 또한 순천의 청년 일자리 창출과 미래의 먹거리 마련을 위해 애니메이션 클러스터산업 집적지 조성, 반도체와 에너지 소재 등 첨단 연구·실험공간인 첨단공학관 신축 등을 통해 청년 일자리와 창의력 중심의 도시로 발전할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3단계는 ‘순천의 정치문화 개편’으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꽃피우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핵심이므로 여성과 청년 정치인이 등장할 기회를 대폭 확대하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낡은 행태를 넘어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가운데 서로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4단계는 ‘웅비하는 순천’으로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지원 및 사후활용에 관한 특별법안」을 토대로 오는 10월까지 예정된 이번 박람회를 성공시킨 후 10년 후에 A1급 대규모 국제박람회로 발전시켜 여수엑스포박람회 그 이상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정원박람회 후에 생태수도로 발돋음한 순천시를 남해안권 경제수도로 뻗어 가기 위한 뒷받침을 위해 「남해안권 개발 및 발전 특별법」을 발의하여 입법을 추진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쉬웠던 점은 정치 입문의 중요 계기였던 검찰개혁이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을 정도로 역행한 상태에서 정부와 여당의 일방적 국정운영을 강력하게 견제하지 못한 부분인데,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지금도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는 대다수 검찰 구성원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여전히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그 길에 매진하겠습니다.
5. 주요 역할을 하셨던 법안들 중에 「한전공대법」과 관련하여 최근 한전의 대규모 적자 등으로 인해 전남 나주에 위치한 한전공대에 대한 지원을 대폭 줄이거나 혹은 아예 폐교 등도 거론되고 있는 것같습니다. 여기에 대한 견해는 어떻게 가지고 계십니까?
한전공대 총장에 대한 해임건의 등 최근 진행되는 상황은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경북 포항에 위치한 포항공대(포스텍)나 다른 지역에 위치한 유사 경우와 비교해볼 때 한전공대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정도에 불과하고 향후에도 일정 수준의 지원이 지속되어야 제 궤도에 오를 수 있는데, 한전의 적자로 학교의 근간을 흔드는 것은 미래 인재 양성의 측면에서도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전이 한전공대 지원 때문에 지금의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면 모르겠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거든요. 호남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최고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서 열심히 공부하는 곳이니 정치권에서 왈가왈부하지 말고, 본래의 설립목적에 맞게 지원하고 운영되어 우리나라와 세계의 우수한 인재를 배출해야할 것입니다.
6. 지난 6월30일 성균관·향교·서원 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유림의 소원이 어느 정도 성취됐다는 목소리들이 큽니다. 이번 법률안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하고, 이후 진행과정을 추진하며 느끼고 생각하신 점을 듣고 싶습니다.
지난 6월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당초 100여 개가 넘는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감사원에 대한 현안질의가 길어지면서 당초 계획했던 법안을 모두 처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여당과 야당 간사들이 우선 처리할 법안을 선별하기로 합의하고, 각 10여 건씩만을 추려 선정하였는데 저는 성균관·향교·서원 지원법을 우선 통과법안으로 선정하여 상정해 법사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특히 법안심사 과정에서 상임위원회에 출석한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성균관·향교·서원 어르신들에게 법안 내용을 소상히 설명 드리고,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어르신들을 잘 모셔드릴 것을 요청했고 전 차관도 잘 알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지역구인 순천에 향교가 있고, 그동안 지역의 여러 유교 어르신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고, 이번 법안에 대해서도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통해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으며, 앞으로도 우리 전통문화의 혼과 얼이 성균관·향교·서원을 통해 잘 계승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7.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인 ‘양극화’가 경제적 계층 분화뿐만 아니라 정치 성향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깊은 관심과 세밀한 분석을 통해 웬만한 시사평론가를 넘어설 정도의 수준을 갖춘 이들이 있는 반면에 아예 무관심한 이들도 있으며, 국민의 힘과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층도 더욱 단단해지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점들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나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말씀하신 대로 정치에 관심을 갖는 분들과 아예 무관심한 분들 사이의 양극화와 진보와 보수 유권자들이 각각 지지 정당에 따라 결집하고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아지는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당장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무엇보다 유권자들이 ‘정치적 현안들이 나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현안에 관심을 가지면서 의견을 개진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정치도 국민의 삶과 직결된 요구를 풀어내는 데 관심을 쏟아서 부의 양극화, 고용 불안정,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사회경제적 약자의 고통을 해결하는 민생문제 해결에 ‘정치적 효능감’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자극하고 경멸과 혐오를 통해 반사적 이익을 노리는 후진적이고 구태적인 정치문화를 버리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국민의 선택을 받는 정치문화 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 거의 매일 흉기 소지자가 불특정 개인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르거나 위협을 하는 등의 모습이 반복되고 있어서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단기적인 대책과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단기적인 대책은 치안, 수사, 처벌과정에 초점을 맞춰서 공권력을 중심으로 범죄를 막는데 일단 중심을 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젊은이들의 절망감 등이 바탕이 되고 있으니 단기 대책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니 사회적 양극화 해소방안 등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9. 요즘의 가장 관심사와 신경 써서 하는 일은 무엇인지요? 개인적인 부분과 공적인 부분, 양측으로 여쭤보고 싶습니다.
윤석열 정부에 들어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이같은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와 정치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인으로서의 일정은 때로는 살인적일 정도 빠듯한데, 국민들이 맡겨 주신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꾸면서 어떻게 하면 주어진 책임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10.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조부모님, 부모님, 장인·장모님 등 어른들은 어떤 분들이셨고,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게 되어 인연이 되었으며, 자녀분들은 어떻게 성장해서 지금은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요?
조부모님, 부모님, 장인·장모님 등 어른들은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들이셨습니다.
아버님은 세상에 다시 없을 온화하고 자상하신 분으로 순천대 전신인 순천농림학교 교수를 지내셨고, 해방 후 경찰공무원을 하신 후 주유소 사업을 하시며 민간인 자격으로 출소자 갱생보호회 대행역할을 하셨습니다. 갱생보호회는 효율적인 범죄예방을 위해 출소자의 건전한 사회복귀를 돕는 일을 했는데, 매일 아침마다 아버님은 순천교도소 출소자들에게 여비와 식비를 쥐어 주시는 등 당시 사회가 해야 할 일을 개인 자격으로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젊은 시절 은행에서 근무하셨던 이른바 신여성이셨습니다.
아내는 여수 출신인데 소개로 만나 6개월간 연애하면서 서로의 가치관 일치하는 등 여러 면에서 잘 맞아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 태어난 두 딸아이들 모두 잘 자라주어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한 아이는 미국에서 취업했고, 다른 한 아이는 법조인이 되기 위해 미국 로스쿨에 진학해 공부 중입니다.
11. 남은 인생 동안 꼭 하고 싶은 것(버킷리스트), 꼭 가보고 싶은 곳,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하는 내용들을 여쭤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할아버지(또는 어르신)의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그동안 공직 등으로 너무 틀에 박힌 생활을 많이 해서 앞으로는 여건이 허락된다면 자유롭게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살고 싶습니다.
검찰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고 퇴임할 무렵에 검찰 내부에서 ‘검사를 하려면 소병철처럼 하라’는 말을 들어서 더 없는 영예로 생각했는데, 앞으로의 정치인으로서의 삶도 시간이 흐른 후에 후배 정치인들에게 ‘정치를 하려면 소병철처럼 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12. 의원님과 의원실 직원분들이 어떻게 지금의 인연이 되었는지, 평소 의원님과 의원실 직원들의 사이나 관계는 어떤지에 대한 상투적인(?) 이야기 말고 솔직담백한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저희 의원회관 보좌진들은 공개 채용 절차를 통해 함께 일하게 되었고, 성실하고 전문적이며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보좌진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국회 보좌관이라는 자리가 겉은 화려해 보여도 야근이 일상이고 휴일이나 주말에도 나와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높이와 기대가 갈수록 상승하다보니 그걸 맞추기 위해서는 평일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무리가 많이 따릅니다.
게다가 제가 뭐든 열심히 하는 편이라 보조를 맞추는게 쉽지 않을 텐데, 옆에서 묵묵히 따라주고 열과 성을 다해 도와주는 것에 대해 언제나 감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13. 오늘도 국회 일정들이 계속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 내어 성실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의정활동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성균관·향교·서원 지원법 국회 통과 과정에서 최종수 성균관장님,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님을 비롯한 중앙과 지역의 유교 어른들을 자주 뵙고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창간 54년의 역사를 가진 유교신문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오흥녕 주간님과 인터뷰도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만나고 소통하며 유교를 기반으로 한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9월16일에 유교계의 가장 큰 행사인 추기석전이 열린다고 들었는데, 그날 제가 이미 정해진 일정이 있어서 참석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잘 진행되고 좋은 성과를 거두시길 기원드립니다.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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