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균관대 유가예술문화콘텐츠연구소 팔일무단(지도 임학선 문행석좌교수)이 팔일무를 추고 있다.
공부자의 학덕을 비롯한 역대 성현의 뜻을 본받기 위해 봉행하는 성균관의 석전은 유교의 최대 축제이다. 특히 격식에 맞춰 경건하게 봉행하는 팔일무(八佾舞)는 유교의례의 꽃으로 불린다. 석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광이기 때문에 춘·추기 석전 때만 되면 봉행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사진작가나 기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그런데 이 팔일무를 두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성균관이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의 잘못을 바로잡고 원형을 복원하자 문화재청이 오히려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의 안무로 봉행해 달라고 요구하고 때문이다.
문화재청 문화재과는 올해 추기석전 봉행 일주일 전 성균관과 (사)석전대제보존회에 공문을 보내 지정 이후 일무와 문묘제례악의 변경을 승인한 바 없다며 당시의 실연 내용을 중심으로 연행해 달라고 요청하고, 추기석전의 봉행 결과에 따라 공개행사 지원금 지급이 중단될 수도 있다고 통보해 왔다.
이 같은 문화재청의 요청을 두고 성균관과 (사)석전대제보존회, 유림들은 문화재청이 특정인의 입장에 좌우돼 석전 일무 원형 복원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는 종교탄압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오류투성이 ‘무형문화재 지정조사보고서 제144호’
그 동안 성균관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85호인 성균관 석전의 일무가 문화재 지정 당시 역사적 원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음을 계속 지적했다.
지난 2007년 한국석전학회(당시 회장은 故 최병철 성균관 교육원장)는 임학선 성균관대 무용학과 교수가 청구한 ‘석전 일무 개선안’에 대한 타당성 심사를 벌인 결과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춤사위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확인하고 “종래 일무 속에는 삼방배(三方拜) 형식과 같은 어느 문헌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일제가 만든 ‘이왕직(李王職) 아악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창작무도 일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즉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의 일무에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잔재가 들어 있어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왕직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만들어 대한제국 황족의 의전과 관련 사무를 담당하던 기구다.
다음해인 2008년에는 방동민 (사)석전보존회 사무국장이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정부에 제출된 ‘무형문화재 지정조사보고서 제144호’의 잘못을 지적하며 원형을 복원하려는 노력에 대해 원형 훼손 운운하며 관리 감독하려는 것은 종교탄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방동민 사무국장이 지적한 ‘무형문화재 지정조사보고서 제144호’의 잘못은 무려 50여 곳에 달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적된 잘못들은 시정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렀고 10여 년이 지난 올해 추기석전 봉행을 앞두고 다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석전 일무 어떻게 복원했나
우리나라의 일무 춤사위는 일제 강점 시기에 대부분 망실됐다. 일무를 담당하던 예악인들이 모두 흩어지게 됨에 따라 일무의 올바른 전승이 어려워지게 됐다. 1980년에 고(故) 성경린 선생이 일무의 춤사위를 재현해 2006년 춘기석전까지 성균관 석전에서 추었지만, 이 역시 원형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에 성균관에서는 한·중 문헌을 비교 연구하는 고증을 거쳐 2006년 일무의 춤사위를 원형으로 복원해 석전에서 실행하고 있다.
석전 일무의 원형 복원은 성균관대 동아시아 특성화 사업단, 유교문화연구소의 지원과 (사)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석전보존회, 석전교육원, 한국석전학회의 후원으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5차에 걸친 ‘문묘일무 원형복원을 위한 학술시연’을 거쳐 2006년 9월에 『춘관통고』와 『악률전서』에 근거해 문무와 무무의 춤사위를 복원했다. 그리고 석전학 관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공식심의를 거쳐 2006년 다시 복원한 일무가 채택됐다.
석전 일무 원형 논란의 쟁점은 ‘삼방배(三方拜)’
석전 일무 원형 복원과 관련된 논란의 핵심은 일무 춤사위에서 ‘3진3퇴’의 재현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 원형을 복원한 임학선 성균관대 교수는 “조선·중국의 각종 문헌을 보면 일무를 출 때 앞으로 세 번 나아가서 공경의 예를 표하고, 뒤로 세 번 물러가 사양·겸양의 미덕을 표현한다”고 했다.
반면 문화재 지정 당시의 일무를 주장하는 일무 관련 단체의 김모 회장은 “3진3퇴를 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우러러보고 굽어보며 구부렸다 폈다 한 내용이 세종실록 등 문헌에 나오는데, 이게 바로 우리의 독자성·고유성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된 <세종실록>의 세종 12년 경술(1430) 2월19일(경인) 기사에서 박연은 “일무의 자리는 옛날 현인의 도설을 상고해 보니 묘정의 가운데 있고, 악현의 북쪽에는 있지 않았사온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악현의 북쪽 섬돌의 남쪽에 설치하니, 이미 옛날 제도를 잃었고, 또 땅이 협잡하고 자리가 좁아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면서 변화를 지을 도리가 없사오니 진실로 불편합니다”라고 했고, “일무를 추는 위치가 악현의 북쪽 언덕 사이에 있게 되면 나아가고 물러가는 절차를 할 수 없으니, 옛 제도에 의거하여 일무를 추는 것은 뜰 가운데 위치를 정하여 여섯 번 변하고, 아홉 번 변하는 절차를 다하게 하시기 바라옵니다”라고 했다.
세종 14년 임자(1432) 3월4일 예조에서는 박연의 말을 빌어 세종에게 아뢰었고 세종은 이를 허락했다.
1986년 문화재 지정 당시 석전 일무는 김 회장의 주장과 같이 3진3퇴가 없이 추는 일무 즉 삼방배의 형태였고, 김 회장은 이의 근거로 『세종실록』의 기사를 들었다. 그러나 『세종실록』의 기사는 오히려 3진3퇴가 있다는 내용으로서 김 회장의 주장 근거가 될 수 없음은 물론, 오히려 김 회장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보고서 작성자도 ‘삼방배’를 부정했다
김 회장의 또 다른 근거는 자신이 ‘무형문화재 지정조사보고서 제144호’를 작성했던 성경린 선생으로부터 일무를 전수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본지가 발굴한 자료를 보면 성경린 선생은 오히려 삼방배를 부정했다. 국립국악원장이었던 성경린 선생은 1972년 5월25일자 「유림월보」에 기고한 ‘일무금석(佾舞今昔)’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佾舞版에 처음 들어선 五十年前에도 文舞는 左方 中央 右方 中央 規則的인 三方拜로 始終이오 武舞는 亞獻은 선 자리에서 그리고 終獻은 廻身으로 도끼로 방패(干)을 소리내어 치는 춤사위로 固定되어 있었다. 확실히 原形 古形은 아닌 매우 單調롭고 雅拙한 佾舞로 轉落하였다는 印象이다. 종묘의 佾舞는 종묘제예악의 창제와 더불어 너무 어울리는 文舞 武舞가 새로 안무되고 그 舞譜가 「時用舞譜」(單一本國立國樂院所藏)로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아악 佾舞의 정확한 舞容에 대해서는 전혀 막막하다. <中略> 佾舞의 舞容을 바로잡는 일 이것을 더는 미루지 말고 바삐 서둘러야 하겠다. 전날의 文廟의 석전이든 宗廟의 祭享에는 雅樂部의 定職 雅樂手만으론 不足되어 雅樂生과 外部에서 임시로 무원을 고용하여 세우고 있었다. 그러니 自然 제대로의 춤을 익히고 춘달 수가 없다. 그래서 窮餘之策으로 그런 三方拜와 干戚을 뚝딱거리는 簡易한 舞作이 案出된 게 아닌가. 이것은 정말 하루 速히 止揚되어야 할 것이다.”
삼방배가 원형이 아니며 무원이 춤을 출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게 아니냐는 성경린 선생의 이 글로 보면 성경린 선생으로부터 전수받은 삼방배가 석전 일무의 원형이라는 김 회장의 주장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석전 일무는 민가가 아니라 국가에서 관리하던 춤으로서 모든 절차가 나라의 법으로 정해졌고 춤사위는 예법에 따라 만든 것이기 때문에 문헌기록으로 남겨져 있음은 물론 개인이 임의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특정인의 주장 때문에 기록이 무시되고 원형이 훼손되는 사태는 이제 종식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방동민 (사)석전보존회 사무국장은 “석전과 관련된 모든 사항은 성균관장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즉 성균관의 제사인 석전의 유일무이한 제사장은 성균관장이며 제사에 대한 모든 권한은 성균관장이 갖는다. 문화재청은 유교문화의 정수인 석전을 잘 전승 보존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하는 곳이다. 무형문화재라는 이유로 유교의 종교의식을 관리 감독하려는 것은 종교탄압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잘못된 주장으로 원형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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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장이었던 성경린 선생이 유림월보에 기고한 '일무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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