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신문의 전신인 유림월보(儒林月報) 1977년 3월25일자 7면에 게재된 호영희(扈英姬, ?-1991) 여성유림회 부회장의 글 ‘성균관은 온 국민의 정신지주가 되어야 한다’를 소개한다.
조애영 회장이 내방가사와 풍속에 관한 글을 유림월보에 종종 게재하며 여성들에 관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호영희 부회장은 범위를 확장하여 ‘성균관 어른들께 드리는 글월’(유림월보 1976년 9월25일자 6면)을 비롯해 다양한 관점으로 의견을 제시하며 여성유림의 능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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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9월 유림월보에 '성균관 어른들께 드리는 글월'이라는 호영희 부회장 글이 게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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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에서는 젊은 시절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실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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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영희 여성유림회 부회장은 드높았던 유림으로서의 자부심을 본인의 글 곳곳에 표현했다.
성균관은 온 국민의 정신지주(精神支柱)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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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년의 모습을 반영한) 호영희 여성유림회 부회장
진리에 동서고금이 없으련만 때로는 분주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의외의 피해를 입는 일이 많은 사실로 남아있듯 1968년 12월5일, 우리나라 최초로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에서조차 밀려났던 효(孝)가 신년을 맞으면서 각종 매스미디어를 통해 부각되고 있다.
‘인간은 효를 백행(百行)의 시작으로 하여 천명(天命)을 깨닫고, 인(仁)을 행하는 것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최고의 도’라고 하면 고대 인간이 현출(現出)한 것같이 이단으로까지 보아오던 시선마저 있었던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조잡한 외세 속에 교육윤리가 정립되지 못했던 일시적인 과오이고, 2천년이래 민족의 가르침으로서 우리 민족의 생리화(生理化)된 전통윤리도덕이 말살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유교의 최고의 정신인 민심과 천심을 동일시한 민본사상의 발로(發露)의 일면이라고도 생각된다.
효 사상이 아니고는 어지러운 현실을 치료할 수 없는 극한상태까지 와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많은 형태로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외람되이 또 붓을 든다.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 교직에 있는 미지(未知)의 많은 젊은이들로부터 ‘효 교육에 어떻게 임해야할지?’ ‘습관에서 심어온 막연한 개념만으로 현실에 어떻게 적응해서 교육하면 좋을까?’ 하는 질문을 받은 논설위원의 시론을 읽었다.
유문(儒門)에서 자랐고 경전을 배워온 분으로서도 ‘이것이 효이다’ 하고 선명하게 표현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효경(孝經)』에서 가르친 것이 오늘에 있어서도 모순 없이 실행될 수 있느냐?’는 문제와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마땅히 가져야 할 지친(至親)의 윤리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하고, 우리의 정신적 지도층에 있는 분의 얘기가 이러할 진데 오늘의 교육을 맡고 있는 40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의 당혹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같다.
제조공장에서 컴퓨터의 설계를 받고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물체가 아닌 무형의 인간교육이란 가정에서는 조상을 받드는 할아버지의 말씀없는 교육과 그 할아버지를 모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익혀지고 다져지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물질만을 찾아 헤맨 해방 후 30여년 간의 모든 가정에서 얼마만큼 자식들이 감화체득(感化體得)할 수 있을 만큼 천명과 조상과 부모에게 정성을 다했는지, 또 이 사회에서는 얼마만큼 윤리가 지켜져 왔으며, 학교교육은 어떻게 했는가를 생각할 때 젊은 교육자가 효를 찾아 사전을 찾고, 옥편을 뒤지는 괴로움을 과연 그들에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같이 괴로워하고 반성해서 해진 신발같이 버렸던 윤리와 도덕을 찾아서 젊은 교육자들에게 조언자가 되어주고, 가정에서는 천명을 두려워하고 조상을 흠모할 줄 알며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효의 행동을 어린 자식들에게 실천으로 보여주어야할 것같다.
진리에 동서고금이 없으니 경전에 어느 구절 하나도 퇴색(退色)할 수는 없는 일이나 실행과정에서는 2천년 전과 오늘이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 실천의 기준을 연구하고 제시해주는 곳이 이 나라 어디어야 하는 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고, 아무래도 아시아 10억 인구 속에 맥맥이 흐르고 있는 유교사상의 총본산인 성균관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중국, 우리나라 중에서 가장 근대화에 뒤떨어져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임은 수치스러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터인데, 종교면으로 볼 때는 우리나라와 같이 외래종교가 판을 치고 있는 나라는 드문 것같다. 일본이나 중국에도 외래의 종교가 없는 것은 아니나 재래(在來)의 민족종교는 어디까지나 본래의 의젓함을 고수해왔고, 그 근본을 지켜왔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나라에 외래의 문물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결과는 나무의 뿌리까지 흔드는 격이 되었으나 늦게나마 자각하는 전기(轉機)가 마련된 것은 다행한 일인 것같다.
외래종교의 신도가 가슴 속 깊이 흐르는 유교의 바탕은 지울 수 없고, 이 모든 것을 수습해야할 의무도 성균관이 부담해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더 훌륭한 유교계 지도자를 모셔서 그 분들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받드는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신이 아니고 성인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지도자가 어떻게 완전무결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그 결함을 정성으로 보완해서 지도자로 믿고 존경하는 것이 첫째로 각성해야할 과정인 것같다. 날로 교세가 확장되어 가는 교단이나 일반사회라도 보면 그 단체에는 인화단결(人和團結)이 잘 되어 있는 것을 놓칠 수 없다.
과연 그 곳에 지도자가 완전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나 크나큰 하나의 목적을 위해 지도자를 받드는 현명함을 잃지 않았다는 얘기다.
둘째로 생각해야할 것은 어떠한 다수의 결의에 의해서 결정된 일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재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민주국민으로서도 기본에 속하는 일인 것같고, 남을 비평하는 옹졸함보다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곳에서 칭찬하고 존경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한 것같다. ‘유교인은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라는 모욕적이고 또 부인도 할 수 없는 원성을 잊어서는 안될 것같다.
‘군자유어의(君子喩於義) 소인유어리(小人喩於利)’라는 공자님의 가르침을 실행할 수 있는 일은 어려운 듯 삼삼오오 모임이 되면 과연 유교발전을 위해서 이로운 대화가 오고 가는가 하는 의심이 영원히 사라졌으면 한다. 민족정신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고 개발해야 하는 의무와 권리를 가진 성균관 스스로의 의식구조부터 개조해서 그 옛날부터 패망의 원인이 된 인맥과 지맥(地脈)을 둘러쌓고, 동·서인을 갈라놓으며, 남·북인 제각각 짝을 지어 부리던 부조리가 오늘날 어느 형태로도 재연된다면 500만 유림 중 어느 한 사람도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인화단결은 최대로 중한 일이고, 오늘의 유림들은 그만큼 유교진흥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진심으로 유교진흥을 원하고, 심신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의 곁에는 항상 올바른 붕우(朋友, 벗)가 떠나지 않을 것이고, 시류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올바른 곳을 찾아 흐르는 것이 엄숙한 현실이다.
현명한 대중은 시(是, 옳음)과 비(非, 그름)을 가장 예리하게 감지할 수 있으니 대동맥은 그 운동을 영원히 계속하는 것이고, 차곡차곡 역사가 수록되는 것같다.
성균관 내실이 탄탄해지는 날, 무수하게 닥쳐올 국가적 요청도 응할 수가 있는 것같다.
이제 겨우 싹트기 시작한 충효(忠孝)를 중심으로 국민정신 문제도 많은 연구와 계몽을 통해서 하루 속히 뿌리 박히도록 하는 책임을 져야 하며, 사회윤리문제도 경전에 바탕을 두되 현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규범을 제시해야할 것이며, 너무 급히 서두른 나머지 모순투성이로 얽혀진 가정의례준칙 문제도 정신적인 바탕은 유교정신에 두고 사회여건에 맞는 기준을 마련해서 국가정책에 반영되도록 역량을 보여야할 것같다.
그리하여 만년지대계(萬年之大計)를 가늠하는 국민정신교육을 총괄하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아울러 갖출 수 있는 자세가 아쉽다.
우주의 순리가 변할 수 없듯이 이 민족이, 이 땅에 영원히 사는 한 성균관은 온 국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지 않을 수 없고, 또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확신(確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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