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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오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건괘 구오).
얼마 전 글자를 분석해서 숨어 있는 의미를 보는 파자(破字) 책을 보았다. 성명학을 오랫동안 연구한 정준이라는 분이, 사람의 이름에 쓰는 글자를 분석해서 1958년에 출판한 책이니 나름 고서라 할만하다. ‘한 일(一)’자에 대해서만도 여덟 번의 다른 해석을 했다.
그분이 하신 ‘一’자에 대한 파자 풀이를 보면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 번째 유형은 ‘一’자는 어떤 글자로든 변화할 가능성이 많다고 희망적으로 보는 것이다. “상하미복(上下未卜:위와 아래가 결정되지 않았으나) 가득기중(可得其中: 그 중용을 얻을 수 있다네)”가 그 예문이다. ‘일(一)’자는 위와 아래에 다른 획이 없이 한 획으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위나 아래에 획을 더하면 어떠한 글자도 만들 수 있다. 가능성이 무한하므로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이미 이루어진 것(十, 二 등)에서 하나를 잃어버렸다고 실망하는 것이다. “십득기반(十得其半:10 중에 반을 얻으니) 명대실소(名大實少:이름만 크고 실속은 적다네)”가 그러한 예이다. 10진법에서 10은 만족수이기 때문에, 10을 얻었다는 것은 100%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一’자는 ‘十’자에서 한 획(ㅣ)이 없다. 획이 하나 모자랄 뿐인데 10 중에서 반만 얻었다고 하며 ‘실속이 적다’고 하였다. 이번 유형에서는 ‘一’이라는 글자에 대해, 다 얻을 수 있었는데 반밖에 못 얻었다고 폄하한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은 시종여일하다는 일관성이며 만족감이다. “시종상동(始終相同:처음과 끝이 한결같으니) 성공무의(成功無疑:성공을 의심할 것 없네)”가 그 예이다. ‘一’자는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모습이 똑같다. 처음과 끝이 한결같다면 그것이 성공하는 지름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하나의 이름글자를 놓고 왜 이렇게 해석이 다른가? 이름글자를 가진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아침을 맞았어도, 누구는 활기차게 일어나 활동을 하고, 누구는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어서 게으름을 피우며, 누구는 몸이 아파서 끙끙 앓기만 한다. ‘나’라는 주체가 상황을 어떻게 맞이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가능성이냐, 만족이냐, 상실감이냐’의 세 가지로 나뉘는 것이다.
이것을 누가 결정하는가? 7~80%의 경우는 자신이 타고난 운명에 따른다. 자신에게 부여된 성품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특별한 분의 가르침을 받아 자극되고, 특별한 환경에 노출되어 자극을 받은 뒤에, 아주 특별한 결심을 해서 실천해 나가면 운명이 바뀌게 된다. 운명을 바꿀 정도의 아주 강한 의지, 그리고 목표를 제시하는 이름 글자의 뜻이 합쳐져서 인생의 결과를 바꾸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획수가 적은 글자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띠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경우의 수가 많아져서 방황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앞서 ‘一’자 풀이의 세 가지 경우를 잘 고려해서 다른 이름글자와의 조화를 생각하며 상황에 따라 선택해 써야 제대로 된 이름이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글자라도 다른 이름글자와 어울리지 않거나, 또는 감당하기 어려운 글자는 나를 망치는 것이다. 이름에 ‘용(龍), 왕(王), 원(元), 천(天), 제(帝)’ 등등의 귀하고 높은 뜻의 글자를 잘 안 쓰는 이유이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때를 얻고 최고의 지위를 얻은 사람은, 자신을 도와줄 최고의 참모를 얻어야 성공할 수 있다’라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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