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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독자기고 : 조선의 기로정책과 경로사상을 이어받아

온 나라에 효친사상이 활성화되고 기로연을 국가행사로

유교권인 우리나라에서는 경로효친사상이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요즈음  많은 분들이 부모님 세대를 공경하며 '효(孝)'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있지만, 도시화와 핵가족화 등으로 효친사상이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선왕조는 태조(太祖) 원년 7월부터 성리학적 가치관에서 사회교화와 지배질서의 강화 수단으로 기로회(耆老會)라는 정표정책(旌表政策)을 시행하였다.

 

기로회는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였고, 도평의사사와 같은 의결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태조는 정표정책을 실시하면서 풍속과 관련을 갖는 사회교화로 효(孝)를 강조하였고, 국가에서 직접 효행자를 방문하여 요직에 쓰는 발탁인사제를 통하여 기로에 대한 공경심을 높였다.

 

이러한 정표정책은 순종(純宗) 때까지 계속 실시되었다.

 

조선왕조에 들어와 기로정책(耆老政策)을 실시하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로서 여긴 것이 양로연(養老宴)이었다. 이 양로연은 세종, 성조 때에 가장 성행하였고, 고종 때까지 설행(設行)되었다.

 

'대덕필득기수(大德必得其壽)'라 하여 수(壽)와 덕(德)의 가치관을 중시하고, 장수한 노인을 '달존(達尊)'이라 하여 사람들이 모두 섬기고 받들었다.

 

조선왕조에서 양로연은 단순한 연회가 아니라 엄격한 의식을 갖추고 뚜렷한 의미가 부여된 잔치였다.

 

태종 때에 기로회를 기로소(耆老所)로 개편하면서 정치적 역할은 위축되었다.

 

이후 세종 10년에는 예조(禮曹)의 산하에 기로소를 두고 기로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였으며, 양로연(養老宴)의 실행 시기는 중추(仲秋)에 길일을 택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세종은 주(州), 군(郡)의 기로들을 수령이 봉향(奉餉)하도록 양로연을 강화하였고, 중앙의 고관이 지방에 머물면서 양로연을 개최하도록 했다.

 

또한 도덕과 예법이 무색한 혼란사회에서 경로사상을 진작시키고, 유교적 윤리관에 기초를 두고 국민을 교화시키고자 「삼강행실도」,「효행록」,「국조오례의」등을 편찬했다.

 

세조는 양로연의 참가자격을 80세에서 70세로 낮추어 확대 규정했으며, 양로연을 주로 중추(仲秋)에 실시하여 풍성하게 거둔 곡과(穀果)로서 따뜻한 음식을 대접했다.

 

참가인원은 대전(大殿 : 근정전, 대명전, 인정전, 보제루 등)에서 개최된 궁중양로연에는 120~150명 정도 참석했고, 일반적으로는 지방의 수령 주관으로 소재 관사에서 개최하는 향중양로연은 인원이 적었으며, 흉년이 계속 될 때는 정연(停宴)되는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고려, 조선시대에 시정(侍丁)을 지급하면서 실시했던 제도와 요즈음 노인 복지정책, 경로당 기능 활성화 등은 기본적으로 그 정신과 의미가 다르다.

 

최근 각 향교에서 기로연을 개최하고 있다. 부디 온 나라에 효친사상이 활성화되길 바라며, 경로효친사상이 고취되어 기로연이 국가행사로 발전하길 기원한다.

 


 

최기순 (강릉향교 재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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