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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구는 어긋났기 때문에 외롭다. 그래서 돼지가 진흙을 짊어진 것과 귀신을 한 수레 실은 것처럼 보인다. 급하게 화살을 먹였다가 슬며시 화살을 뺀다. 도적질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혼인을 하자는 것이니 나아가서 비를 만나면(의심이 풀려 화합하면) 길할 것이다[규괘 상구]
정나라 무공의 부인은 신후(주나라 평왕의 외조부)의 딸 강씨였다. 강씨는 오생(寤生)과 단(段) 등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오생을 낳을 때 아주 고통스럽게 낳았다고 해서 큰아들을 미워하고, 둘째 아들을 편애했다. 둘째를 임금으로 삼고 싶었지만 무공이 “장유유서를 어기면 나라가 문란해지오.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아들을 폐하고 둘째를 세울 수는 없오”라고 하며 반대를 했다.
결국 오생이 임금이 되고(장공), 단은 변두리의 작은 고을을 다스리게 되었다. 무강(강씨, 무공의 강씨부인이라는 뜻으로 무공 사후 부르는 호칭)은 큰아들을 다그쳐서 단을 서울 근교의 큰 성을 다스리게 하고, 군사를 기르며 틈을 보아 혁명을 일으키라고 하였다. 이 눈치를 챈 장공이 “주나라 왕실에 입조하여 천자를 배알하고 왕실의 일을 돕고 오겠다”하며 도성을 비웠다. 무강이 둘째에게 “도성 안에서 내응할 테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고, 둘째도 지체하지 않고 도성으로 치고 들어왔다가 매복된 형(장공)의 군사에게 패배해서 자살하고 말았다.
장공은 도성으로 돌아오기 전에 어머니(무강)를 영 땅에 위리안치케 하면서 맹세하기를 “황천에 가기 전에는 어머니를 보지 않겠다”고 하고, 무강 역시 장공을 볼 낯이 없어 아무 소리도 못하고 즉시 도성을 떠나 영 땅으로 갔다. 도성으로 돌아온 장공은 어머니가 안 보이자 마음이 부끄러워지며 “내가 부득이 아우를 죽게 하였지만 어머니마저 쫓아냈으니 참으로 천륜을 어긴 죄인이로다”하고 탄식을 했다.
당시 영 땅에는 효도와 형제우애가 지극한 영고숙(潁考叔)이 봉인(封人)으로 있었는데, “어머니는 어머니답지 못하더라도 자식이 자식답지 못해서야 되겠는가?”하며 장공을 설득했다. 장공이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천지신명께 맹세를 한 것이 꺼려진다고 했다.
“샘물이 나오도록 땅을 파고, 샘물 옆에 지하실을 짓고 어머니를 기거하게 하십시오. 그런 뒤에 임금님께서 땅 밑으로 내려가 어머니를 만나시면 ‘황천의 맹세’를 어겼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영고숙이 곧바로 우비산(牛脾山) 밑을 파서 그 샘 옆에 지하실을 짓고, 사다리로 연결해서 내려갈 수 있게 했다. 그리곤 무강에게 가서 “임금님께서 어머니에게 저지른 불효를 마음속 깊이 후회하고 있으며, 이제부터라도 어머니께 효도하며 편안히 살게 해드리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무강은 한편으론 죽은 아들 생각이 나서 울고, 한편으론 잃었던 아들을 되찾은 것 같아 또 울었다.
장공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무강에게 절을 한 뒤에 엎드려 사죄했다. “소자가 오랫동안 문안 인사를 드리지 못한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어머님께 용서를 청합니다” 무강도 “늙은 몸이 생각이 혼미하여 죄를 지었구나. 용서를 구할 사람은 이 어미이다”
두 모자가 서로 얼싸안고 한참을 크게 운 뒤에 사다리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장공이 직접 무강을 부축해서 가마에 오르게 하고, 몸소 가마를 끄는 말의 고삐를 잡고 걸어갔다. 정나라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모두 기뻐하며 장공의 효행을 칭송했다.
그래서 역에서는 ‘어긋났을 때는 곧바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풀어야 한다’라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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