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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월보> 제114호(1978년 9월25일자) 1면 하단에 추기석전 사진 및 헌성금 내역이 게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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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성균관장은 1976년 7월25일 성균관대 강당에서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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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성균관장의 재임시 사진으로 추정된다.(출처-한의신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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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가 많이 섞여 있지만 요즘 유림에서는 보기 힘든 결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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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형태로 <유림월보>의 보급을 독려하는 모습을 보인 성균관장은 박성수 관장이 최초이다.
<유교신문>의 전신(前身)으로 지난 1969년 4월30일 창간된 <유림월보(儒林月報)>는 당시 500만 유림은 물론 정부, 정치권, 사회 각계각층의 주목을 받는 대표적 종교언론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주요 관계자들의 성균관 및 지방 향교 방문 소식은 물론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사회 저명인사들의 투고 글이 수시로 게재되었고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서울대 교수 등에 재임 중이거나 역임한 이들이 각 유림단체의 수장을 맡은 경우가 많아 이들의 움직임이 주요 소식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매년 봄, 가을에 봉행된 석전(釋奠)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위상이 완전히 달라 <유림월보> 제114호(1978년 9월25일자) 1면 상단의 ‘성균관 대성전에서 석전 봉행’ 기사에서는 그날 오전 10시에 봉행된 추기석전에 주푸쑹(朱撫松, 재임 1975.01.29.-1979.08.18) 제7대 주한중화민국 대사, 스노베 료조(須之部量三, 재임 1977.07.14.-1981.05.08) 제5대 주한일본대사를 비롯한 2천여 명이 참관했다고 적고 있고, 기사 하단의 ‘추기석전 헌성자 명단’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 금일봉(金一封)’ ‘박성수 관장 20만 원’ ‘성균관대학교 50만 원’ ‘민주공화당 5만 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 경제적 상황상 여전히 운영이 쉽지 않은 탓이었는지 박성수(朴性洙, 1897-1989, 호 일송(一松)) 제13-14대 성균관장(재임 1976.07.25-1980.08.30)은 <유림월보> 제117호(1978년 12월25일자) 5면 하단에 전국의 유림들에게 <유림월보>의 보급을 독려하는 글을 실었다.
1897년 충북 청주의 유교 가문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식민교육을 시행하는 학교 교육을 받는 것에 반대했던 선친의 뜻을 따라 13세부터 한학에 입문하고, 이후 한의학을 배워 경성 한의약전수학원을 졸업하였으며, 1919년 3.1 만세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1년 1개월간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출소한 후 ‘우리나라의 건강은 우리가 지킨다’라는 신념으로 한의학의 현대화를 목표로 하는 조선무약합자회사(약칭 조선무약)을 설립하니 여기서 나온 히트제품이 ‘솔표 우황청심원’ ‘위청수’ 등이었다.
박성수 성균관장에 대한 내용들은 나중에 게재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니 그 분과의 추억이나 자료를 가진 분들의 연락과 도움을 요청하며, 여기서는 유교 발전을 위해 애썼던 마음을 담은 원문을 전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유림월보(儒林月報) 배가(倍加) 보급운동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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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제13·14대 성균관장
전국 5백만 유림을 상대로 유림월보를 발간한 지 어언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에 전국 유림은 물론 직접, 간접으로 사도(斯道)에 관심이 많은 전국민이 매월 배부되는 이 월보(月報)를 애호해 주셔서 이제는 당장 OOO부를 넘는 발행부수를 올리게 되었음은 다같이 기뻐하며 마지않는 바입니다.
이러한 확장추세는 날로 퍼져가는 도의사상(道義思想)의 앙양(昂揚), 특히 충효를 주축 덕목으로한 유도정신(儒道精神)이 아연(俄然, 급작스럽게) 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일단 추측이 되는 바입니다.
근간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각급 학교에서 충효사상 고취, 또는 회복을 위하여 이 월보 기사를 인용하여 훈화(訓話)를 해주어서 상당한 교육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소문이며, 심지어 부녀들에게까지 다수 애독되고 있다는 바 이때까지 전통사상이 침침연 들어오는 서양풍속, 특히 서구생활양식에 억눌려 우리들의 정신자세가 왜곡되고 행동질서가 문란해져 이대로 방치하면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라는 식자(識者)들 간의 우려가 점점 고조되었고, 나라에서도 이런 정신 교도(敎導)가 시급함을 깨달아 다방면으로 유도진흥에 힘쓰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때 전국 5백만 유림은 어떤 일을 더해야 되겠는가를 한번 생각하시고, 옳다고 생각되면 한번 크게 분발해 기치를 높이 들고 나서야 되겠다고 생각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 특히 성균관, 향교의 임직원은 능동적으로 배가(倍加) 보급을 위한 성과있는 운동을 모색해야 되겠습니다.
유림월보의 보급을 위하여 금년 연초에 중앙 임직원에게는 1인당 OO부 이상, 지방은 향교 단위 OO부 이상 책임지고 보급할 것을 지시했으나 개중에는 열성적으로 책임부수를 보급시키고 있으나 대다수는 별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 하나의 조그마한 출력(出力)이 전체 유림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계시다면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책임부수를 달성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지방인사는 일부러 구독하기 위해 상경(上京)하여 문의하기도 하고, 서면(書面)으로도 요구하면서 구독하고자 합니다. 현대와 같이 매스컴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비단 우리들 유림월보뿐만 아니라 어떠한 물건이라도, 또 어떤 선전이라도 신문, 잡지, TV, 라디오 등의 쾌속한 전달방식을 알리지 않으면 무슨 일이든지 성과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하시고 꼭 성과를 올려주시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올리기 위하여 다음 몇 가지 방법을 시달하니 꼭 지켜주기를 부탁합니다.
첫째, 성균관 임원에게 부탁할 것은 각 임원마다 30부 이상을 보급하지 못한 분은 담당 부수를 달성하여 내년 2월부터 보급되도록 그 수를 내년 1월30일 안으로 본 사무국(事務局, 현재의 성균관 총무처)에 알려주시기 바라며
둘째, 각 향교에서는 전교 자신이 보급소를 설치해도 좋고 그렇지 못할 형편이면 기존 타 신문보급소와 병행취급시키든 간에 지방 군·면·리와 각급 학교, 각 단체·조합, 관공서에 구독을 종용하고 장의, 유도회원은 의무적으로 구독하도록 성과를 올려 유도의 진흥 발전에 공헌할 것.
이상 간단하나마 보급 취지를 알리니 적극 노력하여 많은 성과를 올려 주시기를 거듭 강조합니다.
서기 1978년 12월25일
성균관장 박성수(朴性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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