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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근친혼에 대한 정의가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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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50년대의 근현대 국어사전들에서는 시대상을 반영해 근친혼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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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월1일 시행된 첫번째 민법에서는 동성동본과 8촌 이내 혈족 모두에 대해 금혼 조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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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16일 헌법재판소 판결에 의해 동성동본 금혼이 폐지되고 2005년 민법 조항이 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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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2022년 10월27일 선고를 통해 '8촌 이내 금혼'에 대한 변화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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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7일 헌법재판소 선고는 '합헌'과 '헌법불합치'가 함께 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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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전 법무부장관 재임시절 내려진 헌재 판결에 따라 가족법 개정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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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과정으로 현소혜 성대 교수에게 수의계약을 통해 연구과제가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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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13일 법무부 가족법 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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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수 위원장은 교수시절부터 기고문을 통해 '금혼 범위를 4촌 이내로 축소할 것'을 계속 주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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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무 연구용역을 진행한 현소혜 위원은 헌법재판소 재판시 청구인측 참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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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소혜 위원도 교수로 재임하며 발표한 논문들에서 '4촌을 넘는 혼인 금지의 위헌성'을 지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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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를 맡았던 현소혜 교수는 가족법 특위위원이 된 후 보고서를 완성해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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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소혜 위원의 연구과제 보고서에 기재된 '개정안 제시안'은 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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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 성균관 및 유림의 반발, 추가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법무부는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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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설명자료는 겉으로는 일반적인 내용인 것같지만 이미 방향성이 담겨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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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의 온라인이용자 대상 투표에서 83.34%의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의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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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촌 이내 친·인척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관계이다. (출처: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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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촌 친척도 매우 가까움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CBS라디오 오뜨밀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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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의 졸속행정을 규탄하는 플래카드가 서울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게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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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에 위치한 기장향교의 담벼락에 규탄내용을 담은 플래카드가 게시되어 있다.
지난 2월25일 일부 언론의 보도를 통해 ‘법무부가 현행 민법에 규정된 8촌 이내 혈족(血族), 6촌 이내 인척(姻戚)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는 조항을 수정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 적어도 2천 년 이상의 오랜 기간동안 우리 전통문화의 본류를 형성해 온 유교권을 대표하는 성균관(관장 최종수)과 성균관유도회총본부(회장 최영갑) 공동명의의 비판성명서가 발표되었고, 이를 인용한 국내 다수 언론의 추가보도가 이어지며 파장은 일파만파(一波萬波) 확산되고 있다.
유림을 대표하는 지도자들 대부분이 포함된 2월28일의 ‘가족을 파괴하고, 한민족을 멸종시키려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결의문 발표와 3월4일부터 법무부(장관 박성재)가 위치한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의 1인 시위 전개, 3월5일부터 성균관 유림회관을 비롯한 전국 주요 유림시설 앞에 ‘법무부는 근친혼 가족 파괴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플래카드 게시, 대한노인회 등 전통문화 보존에 관심이 많은 단체와의 연계 모색 등 대응방안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근친혼 금지 범위 축소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주무부서인 법무부는 어떤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를 집중 검토해보려 한다.
1. 고려 중기부터 금지되기 시작한 한국의 근친혼
국립국어원(원장 장소원)에서 운영하는 「표준국어대사전」(https://stdict.korean.go.kr)에서는 근친혼(近親婚, consanguineous marriage)을 ‘가까운 일가끼리 하는 결혼’으로 정의하고 있고, 역시 국립국어원에서 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수정 증보 조선어사전」(1940, 문세영 편)과 광복 직후 간행된 「큰사전」(1947-1957, 한글학회 편)을 디지털 자료로 누구나 살펴볼 수 있게 만들어 지난 2월1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근현대 국어사전」(https://opendict.korean.go.kr)에서는 근친혼이라는 단어로는 검색되지 않으나 근친(近親), 근족(近族)으로 찾으면 ‘혈통이 가까운 일가’(「수정 증보 조선어사전」) ‘같은 성(姓)의 가까운 겨레’(「큰사전」)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국어사전들에서는 통상적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수준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수정 증보 조선어사전」이 편찬되던 1940년과 「큰사전」이 만들어지던 1947-1957년 당시는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유교적 인식이 강한 시대라 동성동본(同姓同本, 성과 본관이 모두 같음) 결혼은 물론 근친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이에 따라 사전에 그런 단어와 풀이가 들어가지 않았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으나 세계와의 교류가 늘어나고 역사적 지식이 확대된 지금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주 간략하게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근친혼의 역사적 연원(淵源)은 언제부터였을까?
100% 확실한 연구 결과는 없지만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 man, 1856년 독일의 네안데르탈에서 발굴된 구석기 시대의 유럽 원인(原人)) 등 고대 인류의 초창기에는 숫자가 적어 가까운 동족 사이의 결혼, 임신, 출산이 흔했으나 지속적인 근친혼이 자손에게 장애 및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실, 귀족 등 상류층은 자신들의 혈통을 보존하고 높은 지위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일반인에 비해 상당히 높은 비율로 지속했다.
예를 들어 삼국통일의 주역인 신라의 김유신(金庾信, 595-673) 장군은 여동생과 뒷날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金春秋, 603-661) 사이에서 태어난 조카, 고려 제4대 광종(光宗, 재위 949-975)은 이복 여동생과 혼인했으며, 서양에서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와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등 영국의 왕가는 물론 프랑스 카페 왕가, 독일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왕가 등 무수히 많은 사례가 확인된다. 지난 1992년 처음 공연을 시작해서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뮤지컬 <엘리자벳>의 주인공이자 지금까지도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왕비 엘리자벳(Elisabeth, 1837-1898)도 이종사촌오빠인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 I, 재위 1848-1867) 황제와 결혼했다.
그러나 왕가를 비롯한 상류층에서도 근친혼에 대한 규제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게 되는데 1058년(문종 12), 1147년(의종 1), 1308년(충렬왕 34), 1309년(충선왕 1), 1367년(공민왕 16) 등의 시기에 고려 왕들이 계속해서 금혼을 공표했으며, 조선 후기 유학자 유중교(柳重敎, 1832-1893) 선생의 『성재집』 제31권 「강설잡고(講說雜稿)」에 ‘(고려) 숙종(肅宗, 제15대 왕, 재위 1095-1105)과 의종(毅宗, 제18대 왕, 재위 1146-1170)이 모두 근친으로서 소공(小功) 이상과는 혼인을 금지하여 부끄러움은 조금 알았으나 모두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肅宗毅宗皆禁近親小功以上嫁娶者 稍知可恥而未能盡變)’고 기록하고 있다.
소공(小功)은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이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에 의하면 ‘상례(喪禮)의 오복제도(五服制度)에 따라 5개월간 입는 상복(喪服)으로, 할아버지 형제의 내외(증조부·종조부·종조모), 아버지의 사촌형제 내외(종숙부·종숙모), 6촌형제(재종형제), 4촌형제의 아들(종질), 형제의 손자(종손) 등과 외가로 외할아버지·외할머니·외아저씨(외삼촌)·이모 등, 시집간 여자의 경우는 남편의 형제, 남편형제의 손자, 남편 사촌형제의 아들, 남편형제의 부인(동서) 등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얼핏 보더라도 상당히 광범위함을 알 수 있으며 좀 더 쉽게 말하면 ‘보통 가까운 친·인척으로 여겨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국왕이 금지시켰으나 오래된 관습이라 당장 완전하게 없어지지는 못했는지 제23대 고종(高宗, 1192-1259, 재위 1213-1259)은 제21대 희종(熙宗, 재위 1204-1211)의 따님이자 6촌 동생인 안혜왕후(安惠王后, ?-1232)의 성(姓)을 왕씨(王氏)에서 유씨(柳氏)로 바꾸면서 혼인해 제24대 원종(元宗, 재위 1259-1274)을 비롯한 2남 1녀를 낳고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유교를 국가의 통치사상으로 채택하고 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원리로 운용한 조선은 중국 명나라의 법제서인 『대명률(大明律)』의 영향을 받아 ‘동성(同姓)은 백대(百代)가 지나더라도 혼인하지 않는다(雖百世而昏姻不通)’는 원칙을 따라 근친혼을 금지했으나 초기에는 조금 느슨했던 듯하다.
제4대 세종(世宗, 재위 1418-1450)의 4남 임영대군(臨瀛大君, 1420-1469)의 자손인 거창군부인(居昌郡夫人, 1476-1537) 신씨(愼氏)는 7촌 조카뻘인 제10대 연산군(燕山君, 1476-1506, 재위 1495-1506)과 혼인했고, 단경왕후(端敬王后, 1487-1558) 신씨(愼氏)는 8촌 남매뻘인 진성대군(晉城大君)과 혼인했다가 1506년 9월2일에 이뤄진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남편이 제11대 중종(中宗, 1488-1544, 재위 1506-1544)에 즉위한 후 반정공신들의 요구에 따라 7일만에 폐출(廢黜)되고 친정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성종실록』에 의하면, 연산군과 중종의 아버지였던 제8대 성종(成宗, 1457-1495, 재위 1469-1494)도 1471년 6월18일 예법을 관장하던 예조(禮曹)에 ‘이성(異姓)의 복(服)이 없는 자는 서로 혼인할 만하나 우리나라의 풍속이 외친(外親)도 동성과 다름이 없이 중히 여기는 까닭으로 분경(奔競, 관원이 전조(銓曹, 인사권을 담당하던 이조와 병조)의 대신이나 권문세가에 분주하게 찾아다니며 승진 운동을 하던 일)을 금하는 것도 6촌(寸)까지 한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외친(外親) 6촌이면 서로 혼인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근친혼을 금지하는 분위기가 점점 강해졌고, 1592-1598년의 임진왜란과 1636년의 병자호란 등의 외침을 겪으며 국가와 사회의 질서가 어지러워지자 사회 규범와 예법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점점 강화되어 동성동본은 물론 근친혼도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유림들은 이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해 성이 다르더라도 본관이 같으면 서로 통혼하지 않거나 시조를 같이하는 경우에도 혼인을 피해서 지금까지도 이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은데 김해 김씨·김해 허씨·양천 허씨·인주 이씨, 안동 권씨·안동 김씨·예천 권씨 등이 대표적이다.
2. 정부 수립 이후에도 이어진 동성동본·근친 혼인 금지와 1997년의 동성동본 헌법불합치 판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민법 제정을 앞두고 1956년 9월5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법안심의소위원회는 ‘동성불혼의 관습법은 폐하고, 친족 또는 친족이었던 자간의 혼인만을 금지할 것이되 배우자였던 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안을 만들고, 다음 해인 1957년 9월11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국회 본회의에 회부되었으나 유림의 격렬한 반대와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 유시(諭示)가 있은 이후인 그해 12월5일 국회 본회의에서 ‘1960년 1월1일 처음 시행되는 민법(법률 제471호) 제809조 제1항은 동성동본의 혼인을 금하고, 제809조 제2항과 제815조 제2·3항에서 8촌이내 혼인을 금지하거나 무효로 규정한다’는 내용의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여성계를 대표하여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의가 동성혼 등의 금혼범위를 축소하자는 등의 내용을 담은 민법개정안을 1975년 4월9일 국회에 제출했으나 ‘우리나라 전래의 윤리관과 가족 관념에 비춰 볼 때 현시점에서는 채택할 수 없다’는 이유로 폐기되고, 대신 동성동본 혼인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1977년 2월부터 혼인에 관한 특례법이 법률 제3052호 등으로 3차에 걸쳐 제정되었으며, 이후에도 가족법 개정운동이 계속되며 1980년대 후반에는 민주화의 바람 속에서 유림과 여성단체가 크게 대립하기도 했으나 큰 틀의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다가 지난 1995년 5월17일 서울가정법원이 위헌제청하고, 1997년 7월16일 헌법재판소가 민법 제809조 1항 위헌제청사건(사건번호 95헌가6내지13(병합))에서 동(同)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며 ‘1998년 12월31일까지 개정하되 법원, 기타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법률조항의 적용을 중지하여야 한다’고 판결하자 다시 한번 유림과 여성계 사이의 대립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취지를 반영해 민법의 해당 조항을 개정했으며(법률 제7427호, 2005.3.31. 시행), 이에 따라 제809호의 명칭이 ‘동성혼 등의 금지’에서 ‘근친혼 등의 금지’로 바뀌고, 내용도 ‘①동성동본인 혈족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②남계혈족의 배우자, 부의 혈족 및 기타 8촌 이내의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에서 ‘①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한다)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②6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6촌 이내의 혈족, 배우자의 4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③6촌 이내의 양부모계(養父母系)의 혈족이었던 자와 4촌 이내의 양부모계의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로 변경됐다.
이때 제815조(혼인의 무효)도 ‘혼인은 다음 각호의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1.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2. 당사자 간에 직계혈족, 8촌이내의 방계혈족 및 그 배우자인 친족관계가 있거나 또는 있었던 때 3. 당사자 간에 직계인척, 부의 8촌이내의 혈족인 인척관계가 있거나 또는 있었던 때’에서 ‘혼인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1.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2. 혼인이 제809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한 때 3. 당사자 간에 직계인척관계(直系姻戚關係)가 있거나 있었던 때 4. 당사자 간에 양부모계의 직계혈족관계가 있었던 때’로 개정하여 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 사이 혼인을 금지시키는 근거로 삼았고, 2022년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3. 합헌과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며 8촌 이내 금혼 조항의 변화를 요구한 헌법재판소
지난 1997년 7월16일의 선고를 통해 동성동본 금혼의 사실상 폐지를 결정했던 헌법재판소는 2022년 10월27일의 선고(재판장 유남석, 재판관 이선애·이석태·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기영·문형배·이미선)를 통해 8촌 이내 혈족의 혼인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민법에 또 한 번의 커다란 변화를 주문했다.
헌법재판소(소장 이종석) 홈페이지(https://www.ccourt.go.kr)의 선고·변론사건-선고사건-선고목록 및 결정문에서 선고연도를 ‘2022년’으로, 선고 월을 ‘10월’로 설정한 후 아랫 부분의 ‘사건 목록’을 살펴보면 그날 진행된 총 46건 중 3번 항목에 ‘사건번호-2018헌바 115, 사건명-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 금지 및 무효 사건, 종국결과-헌법불합치, 합헌’이라는 내용과 함께 오른쪽의 아이콘을 클릭하면 결정요지를 한눈에 확인하고 결정문을 내려받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결정문과 최근 언론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각자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남매 사이여서 6촌 관계였던 함 모(某)씨와 오 모씨는 2011년부터 미국 플로리다에서 동거하며 결혼생활을 유지하다가 한국에 귀국해 2016년 5월4일 모 지역 지자체장에게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변심한 남편 함 모씨가 원래부터 6촌 결혼은 원천 무효라며 그해 8월1일 아내 오 모씨를 상대로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하자 이를 접수한 대구가정지법 상주지원은 8촌 이내 사이의 혼인신고였으므로 민법 제809조 제1항과 제815조 제2항에 따라 무효임을 확인했다. 이에 아내 오 모씨는 대구가정법원에 항소하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했으나 2018년 1월25일 모두 기각 당하자 2018년 2월19일 8촌 이내 금혼 및 혼인무효 조항이 부당하다는 내용으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청구인은 가족 질서 및 사회질서의 유지, 유전질환의 예방을 입법목적으로 하는 8촌 이내 금혼조항이 우리나라의 유교적 가족문화가 약해지거나 해체되었으므로 보편타당성을 상실했고, 유전학적인 이유도 구체적 증명이나 소명이 없는 막연한 우려에 근거했으므로 정당한 입법목적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동성동본 금혼조항의 폐지로 인한 입법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근친혼 금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민법 제777조(친족의 범위: 친족관계로 인한 법률상 효력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자에 미친다. 1. 8촌 이내의 혈족 2. 4촌 이내의 인척 3. 배우자) 제1호가 정한 친족 범위의 모든 혈족 사이의 혼인을 일률적으로 금지했으므로 외국에 비해 이례적으로 넓게 설정된 모습이 오늘날 가족 및 혼인질서에 혼란을 가중시키며 합리적 이유 없이 혼인을 금지시키고 있으므로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당사자가 진정한 의사로 혼인신고를 한 경우에도 일방당사자나 제3자의 주장에 의해 축출이혼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으며, 8촌 이내 혈족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공시제도가 부재하므로 혼인당사자는 물론 (태어날) 자녀의 복리까지 현저하게 저해하므로 역시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를 친족으로 보는 현재의 민법체계에서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에 위반한 혼인을 무효로 하고 있는데 근친혼은 오랜 시간의 교류로 인한 영향력 등으로 인해 자유롭고 진실한 혼인 의사를 형성하기 어렵고 성(性)적 긴장, 갈등, 착취 관계를 야기할 수 있으며, 이미 형성된 혈족 사이 신분관계를 변경시켜 혼란을 일으킨다.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으로 금기시되는 근친상간(近親相姦, incest)은 가까운 혈족의 해체를 초래할 수도 있고, 보호와 부양을 필요로 하는 미성년 근친혼 당사자 및 자녀에 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혼란을 방지하고 가족제도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입법목적이 정당하며, 8촌 이내 혈족 사이 혼인 금지가 근친혼 발생을 억제하는데 기여한다. 동성동본 혈족간의 혼인 금지 조항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의 뜻을 존중해 민법 개정으로 이어졌고, 1990년 1월13일 법률 제4199호를 통해 바뀌었던 제777조 제1항에서 정한 혈족의 범위가 지켜진 것도 합리적이다. 사회·문화적 변동이 계속되고 있는 오늘날에서도 친족 관념이나 가족의 기능에 대한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 사건 금혼조항이 불필요하거나 과다하다고 볼 수 없다. 상이한 가족 관념을 가지고 있는 국가 사이의 단순 비교가 의미를 가지기 어렵고, 공익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며, 법익균형성의 원칙에 위배되거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도 않는다는 내용을 밝혔다.
그러나 5인의 헌법재판관들은 ‘이미 근친혼이 이뤄졌고, 자녀가 출생했으며, 가족 내 신뢰와 협력에 대한 기대가 발생했다고 볼 사정이 있는 경우까지 일률적으로 혼인을 무효화하면 혼외자녀의 법적 지위가 불안해지고, 배우자의 생활조건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으며, 질서붕괴에 제도적 기능이 와해될 소지가 있다. 우리나라는 8촌 이내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공시제도가 없으므로 사후적으로 알게 되었을 때 혼인무효소송이 제기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 민법 제820조에서 자녀를 포태(胞胎, 임신)한 때는 근친혼이라도 아예 혼인을 취소할 수 없게 하는 등으로 볼 때 과도한 측면들이 있다.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므로 원칙적으로는 위헌 판결을 내려야 하지만 예기치 않은 여러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사회적 인식 등 제반사항을 고려하여 합헌적 개선방안을 강구해 입법조치해야 한다’고 의견을 표시했다.
나머지 4인의 헌법재판관들은 ‘근친혼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 헌법에 불합치한다.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사이의 혼인과 같이 가족제도의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근친혼에 한해 무효로 하고, 이미 형성된 근친혼은 기왕에 형성된 당사자나 자녀의 법적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는 부분들이 있으므로 합헌적 개선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뜻을 밝혔다.
결론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재판관 5대4의 의견으로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에서는 혼인할 수 없도록 하는 민법(2005. 3. 31. 법률 제7427호로 개정된 것) 제809조 제1항은 혼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아니하여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합헌 결정과 재판관 9인 전원의 의견으로 ‘민법 제809조 제1항을 위반한 혼인을 무효로 하는 민법(2005. 3. 31. 법률 제7427호로 개정된 것) 제815조 제2호는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며 2024년 12월31일까지만 유효하다는 조건이 걸린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4. ‘5촌 이상 방계혈족의 혼인 허용에 대해 긍정적’인 법무부와 가족법 특별위원회
지난 2022년 5월17일 취임해 2023년 12월20일 퇴임한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은 2023년 10월13일 오후 3시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가족법 개정 추진을 위한 「법무부 가족법 특별위원회」’ 위촉식을 개최하고,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민법 등의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법무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와 언론보도 내용을 보면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하고 이은정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백승흠 청주대 법학과 교수,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준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성우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1부장 등 전문가 6인을 위원으로 하며 구성된 가족법 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한동훈 장관은 “사회 일반이 모두 공감할 수 있고,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하여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개정안이 마련되길 바라고, 본인도 필요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2022년 10월27일 헌법재판소 선고 당시 ‘민법 제809조 제1항을 위반한 혼인을 무효로 하는 민법(2005. 3. 31. 법률 제7427호로 개정된 것) 제815조 제2호’의 유효기간을 2024년 12월31일까지로 한정했으니 판결 이후 약 1년은 아무런 조치 없이 흘려보냈고, 법안 종료를 약 1년 2개월여 앞두고부터 관련부서인 법무부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며, 「법무부 가족법 특별위원회」가 출범 이후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법무부 홈페이지나 언론보도 등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그래서 위원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으로 방향을 바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인했다.
먼저 윤진수 위원장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던 지난 2019년 2월 한국법학원의 법학전문학술지 『저스티스』 통권 제170-2호에 기고한 「민법상 금혼규정의 헌법적 고찰」 논문을 통해 ‘민법의 동성동본 금혼 규정이 위헌임을 밝힌 헌법재판소의 1997년 7월16일의 선고는 역사적인 결정이었으나 현행 민법의 금혼조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혼인 상대방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어 위헌적 요소가 많다. 중국과 대만, 일본 등 동양은 물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양에서도 한국처럼 광범위하게 금혼하지는 않는다. 유전적 질병의 발현위험은 방계인척 사이의 혼인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배우자의 사망으로 기존의 혼인이 해소된 때에는 가정의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형부가 처제와 재혼하고, 시숙이 제수와 재혼하는 등) 방계인척 사이의 혼인을 금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이런 등은 위헌임이 명백하므로 하루 빨리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였던 2022년 11월9일 『법률신문』에 판례평석 ‘민법 제815조 제2호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 기고를 통해서는 ‘①방계혈족 사이의 금혼 범위를 4촌 이내로 축소, ②4촌 이내 방계혈족 사이의 기존 혼인은 2촌까지는 무효, 그 외는 혼인취소 사유화, ③혈족·인척 금혼규정, 입양에 의한 혈족·인척 금혼규정 조정 필요를 강조하고, 우리나라와 북한 정도만 8촌 이내 혼인을 금지하고 있는데 4촌을 벗어나면 (5촌부터는)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금혼 범위를 4촌 이내로 축소하고, 이미 이뤄진 4촌 이내 혼인에 대해서도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의 혼인을 무효로 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의견에 동의하며, 혈족·인척 사이의 금혼규정도 형부(兄夫, 언니의 남편)와 제수(弟嫂, 동생의 아내) 같은 방계인척, 입양관계 해소 후 방계혈족 사이 혼인 금지는 위헌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선고 및 결정문은 물론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윤 위원장의 견해는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고, 2023년 10월13일 가족법 개정 추진을 위한 법무부 가족법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다음으로 현소혜 위원은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지난 2020년 11월 『가족법연구』 제34권 3호에 기고한 「현행 민법상 근친혼 제도의 위법성-8촌 이내 혈족 간의 혼인 금지 규정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2020년 11월12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민법 제809조 제1항 등 헌법소원사건(사건번호 2018헌바115)의 공개변론 참고인 자격으로 제출한 의견서를 논문 형태로 수정 및 보완했다’고 밝히면서 ‘근친혼은 혼인과 가족이라는 사회의 기초적 생활단위를 보장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한도에서는 금지되어야 하지만 제도적 보장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 개인의 혼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 5촌 이상 방계혈족 간의 출산은 유전적 질환 발병에 대한 위험성이 낮고, 설령 우생학적 위험을 수반하더라도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현재 민법상 가족의 범위가 축소되었고,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것도 4촌 이내가 태반이며, 과거 8촌 이내 혈족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주던 기능이 모두 소멸했으므로 4촌 이내의 혼인을 금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가족법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전인 지난 2023년 9월14일부터 11월30일까지의 기간으로 ‘친족간 혼인의 금지 범위 및 그 효력에 관한 연구’ 과제를 성균관대 산학협력단 소속의 현소혜 교수에게 수의계약으로 맡겼고, 현 위원 외의 다른 이에게 연구과제를 맡겼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은 근친혼 혼인금지 범위 변경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과 파장의 크기를 고려할 때 적어도 상반된 견해를 가진 2인 이상의 법조계·전통문화 연구자 및 유전학적 영향을 분석할 1인 이상의 생물학 분야 전문가에게 연구과제가 배정되고 진행되어 나오는 결과가 언론을 통해 국민 모두에게 완전하게 공개되어야 토론과 합의의 과정이 가능할 텐데 법무부가 진행해온 모습을 보면 마치 처음부터 어느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 후에 그것에 짜맞추기 위해 형식적으로 특정 견해를 가진 1인의 연구자에게만 연구를 맡기고, 게다가 과제가 수행되는 와중인 2023년 10월13일에 출범한 가족법 특별위원회의 위원으로 해당 연구자를 선임함으로써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처음에는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입장이었다가 중간에 가족법 특별위원회 위원으로도 선임된 현소혜 위원은 2023년 11월에 제출한 ‘친족간 혼인의 금지 범위 및 그 효력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근친혼의 역사적 과정을 서술하고, 1960년 민법이 처음 제정될 때부터 해당 조항의 변천 과정을 정리하며, 근친혼 금지 규정은 혼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견해를 계속 언급했다. 아울러 혼인 금지 범위를 기존의 8촌에서 4촌 이내로 축소해야 하지만 국민정서를 감안해 이번 개정에서는 일단 6촌 이내로 줄이고, 차기 개정에서 4촌 이내로 축소하는 점진적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는 4촌 이내의 결혼만 금지하고, 직계혈족 또는 형제자매 등 직계 친·인척 관계에서의 결혼만 무효로 한다는 등의 내용을 적었다.
앞서 언급했던 2020년 11월 『가족법연구』 제34권 3호에 게재된 「현행 민법상 근친혼 제도의 위법성-8촌 이내 혈족 간의 혼인 금지 규정을 중심으로-」 논문과 상당 부분 내용은 물론 결론도 유사한데, 법무부와의 수의계약으로 진행된 바로 이 연구보고서의 내용이 언론을 통해 ‘법무부가 근친혼 금지 범위를 4촌 이내까지만으로 축소하려 한다’고 보도된 근거가 됐다.
5. 법률은 사회 통념(通念)의 가치와 구성원 다수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
현소혜 위원이 작성한 연구보고서 내용이 언론 보도로 기사화되자 성균관과 성균관유도회총본부는 즉각 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유례를 보기 힘들 정도로 강경한 분위기를 인식한 언론들이 유림의 분위기를 전하며 보도의 양이 대폭 늘어났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 2월28일 홈페이지(https://www.moj.go.kr)의 설명자료를 통해 ‘근친혼 금지를 기존 8촌에서 4촌으로 축소 검토한다는 취지의 기사와 관련해서 친족간 혼인 금지에 관한 기초조사를 위하여 다양한 국가의 법제 등에 대해 전문가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등 신중하게 검토 중이며, 아직 개정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신중한 검토 및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시대변화와 국민정서를 반영할 수 있는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는데, 얼핏 보면 통상적인 방식의 해설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국가의 법제 등에 대해 전문가 연구용역을 진행한다’고 하며 이미 제출된 현소혜 위원의 연구보고서 내용의 방향을 그대로 적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론의 보도가 나간 이후 유림뿐만 아니라 보통의 국민들이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저출산 대책으로 온갖 방법을 해보다가 안 되니 이런 것도 하려고 하느냐?’ ‘우리를 짐승들처럼 만들려 하느냐?’ ‘4촌, 5촌, 6촌 등은 의외로 가깝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걱턱 및 유전병 확산을 모르느냐? 근친혼이 자손에게 해롭다는 것은 동양과 서양 모두 인식하고 있는 상식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줄 알았으면 박정희 대통령이 강하게 국가 개조를 할 때부터 도입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등의 댓글로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물론 노컷뉴스가 온라인접속자들을 상대로 ‘근친혼 범위 4촌으로 축소, 어떻게 생각하세요?’ 투표에서는 전체응답자의 무려 83.34%가 반대한다고 했고, 겨우 13.93%만 찬성의사를 나타냈다.
‘4촌 이내 축소의 견해를 가진 특정 성향 교수 1인에게만 법무부 연구과제 수의계약(2023년 9월)→연구과제를 맡은 교수를 위원으로 선임하고, 역시 4촌 이내로의 축소 견해를 가진 위원장을 포함한 가족법 특별위원회 출범(2023년 10월)→연구과제 보고서 제출(2023년 11월)→연구과제 보고서 내용에 대한 언론보도(2024년 2월25일)→성균관·성균관유도회총본부·유림 반발(2024년 2월27일)→비판 움직임에 대한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2024년 2월27일)→법무부의 해명성 설명자료 배포(2024년 2월28일)’ 등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과정들은 누가 보더라도 법무부가 현 정부를 대표하는 국정기조인 ‘공정과 상식’에 입각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고 판단하도록 스스로 만들고 있다.
지난 2022년 10월27일 선고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정한 시한은 올해 12월31일까지이므로 3월초인 지금 기준으로 보면 겨우 9개월 남짓 남았다.
역사적 연원을 따져도 최소한 50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이 땅에 거주한 이들에게 상식으로 통했던 근친혼 금지 또는 회피라는 중대한 문제를 이렇게 허술하고 가벼우며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모습이 올바르고 타당한가?
4촌 이내만의 금혼을 주장하는 이들은 외국의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와 북한만 너무 광범위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 조상들이 아무런 근거나 경험 없이 몇 백년을 그렇게 살았고 후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것인가?
외국 사례가 그렇게 절대적으로 합리적이면 나이프와 포크가 일상적인 모습을 따라가서 우리의 숟가락·젓가락 문화를 폐기하고, 어린아이·외국인들이 배우기 힘들어하는 어른들에 대한 존칭도 없애 버리며,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효(孝) 관념도 가르치지 말고, 어려운 한글 대신 영어·중국어·스페인어 등 다수가 사용하는 외국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며, 국토 발전에 장애가 되는 조상묘도 파헤쳐 공동묘지에 모으는 등의 작업을 해야 글로벌 스탠더드가 좀 더 완성되지 않겠는가?
많은 국민들의 머리 속에는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를 서울에서 세종시로 옮기려고 할 때 반대측에서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수도가 서울이라는 명문은 존재하지 않으나 서울이 수도인 것은 명칭상으로 자명하고, 대한민국 성립 이전부터 국민들이 이미 역사적, 전통적 사실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인식하며, 대한민국 건국시 국가 구성에 관한 당연한 전제사실 내지 자명한 사실로 아무런 의문도 제기될 수 없었다’고 판결하여 소위 ‘관습헌법’ 논란이 있었던 사실이 아직도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가까운 친족 사이에 혼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보다도 이전부터 너무도 당연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는데 왜 이번 경우에는 헌법재판소, 법무부, 법무부 가족법 특별위원회 등이 다른 잣대를 들이대며 이야기하고 있는가?
법률은 사회 통념(通念)의 가치와 구성원 다수의 의사를 반영해 수립, 유지, 개정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과정들이 과연 그런 모습으로 되고 있는가?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1년여의 기간 동안이나 활동이 없던 법무부가 이렇게 쉬쉬하면서 조용히 방향을 몰아가는 것을 유림은 물론 일반 국민들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변화는 빠르거나 화끈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정당하고, 납득되어야 시간이 흐른 뒤에도 존재가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대해 자신 있게 ‘그렇게 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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