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충단공원의 파리장서비는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하사금으로 건립됐다.
파리장서비 한쪽 면에 원문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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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월보>는 제120호(1979.03.25) 3면 하단에 파리장서 원문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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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원문은 <유림월보> 원문과 첫 시작부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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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장서 원본이라고 많이 소개되고 있는 위의 글도 <유림월보> 원문과 다른 부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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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성균관에서 배포한 파리장서 원문도 <유림월보> 원문과 차이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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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성균관에서 배포한 파리장서 현대어 해석본은 원문에 없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유림월보> 제120호(1979년 3월25일 발행) 2면에 게재된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에 대한 사설 내용을 보도한 지난 특집기사([창간 55주년 기념 5대 특별기획 ❹지난날 유교신문 다시 보기] ③파리장서의 한국유림단 독립운동정신을 되새기자-사설)에 이어 같은 날짜 신문 3면 하단에 실린 파리장서 원문과 본 기자가 작성한 (직역 위주의) 한글 번역문을 게재한다.
당시의 원문은 인쇄술이 지금보다 떨어지고, 45년의 시간이 흐르는 과정에서 흐려진 부분들이 많은 데다 1919년 처음 작성시의 글자 그대로를 옮긴 것인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는 한계가 있음을 먼저 밝힌다.
지난 2019년 파리장서 100주년을 맞이하여 성균관(관장 김영근)은 유림독립항쟁 파리장서 100주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종 행사를 진행하면서 파리장서 원문을 인쇄해 배포했으나 <유림월보> 제120호에 실린 원문과는 일정 부분 차이가 있고,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김인걸)가 운영하는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https://db.history.go.kr/samil)와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의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등에서 보이는 파리장서 원문도 서로 다른 한자가 곳곳에 사용되어 있으며, 각종 사이트와 블로그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원문을 게시하는 등 원문 자체에 대한 혼란이 일정 정도 있음을 감안한 상태에서 <유림월보> 제120호 3면 하단에 실린 원문을 최대한 반영했다.
한글 번역문의 혼란은 좀 더 심한데, <유림월보> 제120호가 발행되던 1979년 당시까지도 한문 원문을 보고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유림들이 많은 데다 파리장서 자체가 한글본이 없이 작성되어서인지 한글 번역문은 아예 게재되지 않았고, 앞서 언급했던 2019년 성균관의 파리장서 100주년 기념사업 때 원문과 함께 현대어 번역본도 같이 배부되었으나 원문에 없는 의미를 상당한 정도로 포함해 지금 사람들이 읽기는 좀 편했겠으나 정작 한 글자마다 심혈을 기울여 문장을 완성했을 당시 선배 유림들의 생각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익혀 일상생활에서 각종 글을 자유자재로 짓고, 주변과 교류하며 계속 실력을 쌓아갔던 선배 유림들의 수준에 미칠 수 있는 이가 지금은 아예 존재하지 않기에 그 분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데다 시중에 나와 있는 한글 번역문들은 원문의 뜻에 최대한 가까운 형태인 직역본(直譯本)인지,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일정 부분의 의미를 만들어 넣은 의역본(意譯本)인지에 대한 표시가 아예 없고 지나치게 의역이 많아 본래의 뜻을 훼손할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유림월보> 제120호에 실린 한자 원문 그대로를 최대한 글자 뜻에 맞춰서 한글로 옮겼다.
같은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은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문이 그해 발족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설립의 근거가 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내용이 현행 헌법 전문에 실릴 정도로 국민적인 인식 속에 자리 잡으며, 예전에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원문 모두를 정확하게 외워야 입시 및 학교 시험 성적을 높일 수 있을 정도로 우대 받았다.
반면 파리장서는 당시 한반도에서 조선총독부 다음으로 평가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과 경제력을 가졌던 유림들의 지도자 137인이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강조한 결과 여기에 놀란 일제에 의해 소위 ‘제1차 유림단 사건’으로 대다수가 체포·구속되며 고초를 치렀고, 그 중에는 생명을 잃은 이들도 있었으며, 김창숙 등 민족의 장래를 위해 의도적으로 명단에서 제외시킨 젊은이들이 이후 지역에서 3·1운동의 확산을 이끌거나 국·내외를 넘나드는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맹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의 사회적 인식은 ‘몇몇 유림 할아버지들이 영향력 없는 성명서 한 장을 발표했다’ 정도로 취급되고 있어 실상에 비해 대단히 낮은 대우를 받고 있다.
1973년 개천절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하사금을 기반으로 서울 장충단공원에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가 건립되어 지금도 존재하고, 137인이 속한 집안과 일부 지자체 등의 노력으로 국가보훈부(장관 강정애)를 통해 대부분의 참가자가 건국훈장 및 포장을 추서(追敍)받기도 했으며, 전국 10여 곳이 넘는 지역에 파리장서비가 세워지기도 했으나 그 정도 외에는 기념식 등 관련 행사가 전국적으로 거의 이뤄지지 않아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아래에 게재하는 파리장서 한문 원문과 (직역 위주의) 한글 번역문이 파리장서운동 기념사업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원문은 <유림월보> 제120호(1979년 3월25일 발행) 3면 하단에 게재된 내용 그대로이나 일부 단락은 문맥을 감안해 앞, 뒤 연결을 조정했고 원래는 없었던 음(音)을 표시해 읽기 쉽도록 했다. 번역문은 원문 글자의 의미에 맞게 현대 한국어로 옮기려 했으나 기자의 미숙한 한문, 한글 실력이 반영되어 있음을 양해 부탁드린다.
후속 기사는 파리장서에 서명한 137인에 대한 구체적 서술을 통해 파리장서운동의 의의와 현재적 의미, 향후 방향성 등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
<원문>
한국유림대표(韓國儒林代表), 곽종석·김복한 등(郭鍾錫·金福漢等), 일백삼십칠인(一百三十七人), 근봉서우파리평화회제위각하(謹奉書于巴里平和會諸位閤下)。
천부지재(天覆地載), 만물병육어기간(萬物並育於其間), 대명지조(大明之照), 대화지행(大化之行), 기도가지이(其道可知已)。자부쟁탈지흔기(自夫爭奪之釁起), 이강약지세분(而强弱之勢分), 겸병지권용(兼并之權用), 이대소지형현(而大小之形懸), 이지독인명이자기위(以至毒人命而恣其威), 절인국이사기유(竊人國而私其有), 오호(嗚呼), 천하일하다야(天下一何多也)。
차천지강대인무어금일(此天之降大仁武於今日), 봉약천지지심(奉若天地之心), 조대명이행대화(照大明而行大化), 일천하이귀지대동(一天下而歸之大同), 비만물(俾萬物) 각수기성자야(各遂其性者也)。어시(於是), 만국동도(萬國同覩), 사해일철(四海一轍), 이여혹유문풍이불획실덕(而如或有聞風而不獲實德), 우원이불철공청자(紆寃而不徹公聽者), 기제대위지용심(豈諸大位之用心), 독어차이수재(獨於此爾殊哉)。억별유이야(抑別有以也), 즉기소이역혈진강(則其所以瀝血陳腔), 앙수명호자(仰首鳴號者), 역출어지통박절(亦出於至痛迫切), 불용자기지의(不容自己之意), 유제대위시찰지(惟諸大位試察之)。
오호(嗚呼), 아한국(我韓國), 천하만방지일야(天下萬邦之一也), 역삼천리(域三千里), 인이천만(人二千萬), 유지보존(維持保存), 사천유연여(四千有年餘), 불실위반도문명지구(不失爲半島文明之區), 역만방지소불능폐야(亦萬國之所不能廢也)。
불행이래(不幸爾來), 강린외제(强隣外制), 륵성맹약(勒成盟約), 종이양국토폐천위(從而攘國土廢天位), 이무오한어세계의(而無吾韓於世界矣), 일본지소위(日本之所爲), 개가거의(槪可擧矣)。
병자지여비방대신(丙子之與鄙邦大臣), 맹우강화야(盟于江華也), 을미지여청국대신(乙未之與淸國大臣), 약우마관야(約于馬關也), 개이아한지자주독립(皆以我韓之自主獨立), 위영준지안(爲永遵之案), 기계묘지선전노국야(曁癸卯之宣戰露國也), 통첩우열국(通牒于列國), 단단이공고아한지독립위성명(斷斷以鞏固我韓之獨立爲聲明), 차만국지소공실야(此萬國之所共悉也)。
증미기하(曾未幾何), 기사백출(欺詐百出), 내협외기(內脅外欺), 독립변이위보호(獨立變而爲保護), 보호변이위합병(保護變而爲合倂), 왜지이한민지정원(諉之以韓民之情願), 도면만국지공의(圖免萬國之公議), 시불유무한어기수분(是不惟無韓於其手分), 실역무만국어기심계야(實亦無萬國於其心計也), 미지만국군공(未知萬國群公), 기진이일본소위어아한자(其眞以日本所爲於我韓者), 위무상어공의야(爲無傷於公義耶), 위불실신어만방야(爲不失信於萬國耶)。
비방신민(鄙邦臣民), 극지적수공권(極知赤手空拳), 불능자분이유위(不能自奮以有爲), 연구음영탄(然謳吟詠歎), 유조야어오국오민왈(猶蚤夜於吾國吾民曰), 상상천지감아(尙上天之監我), 대운지호환(大運之好還), 포수인치(包羞忍恥), 간신전도(艱辛顚倒), 우자십년소의(于玆十年所矣)。
자문제대위지설평화회(自聞諸大位之設平和會), 과방인민(寡邦人民), 함용약분격(咸踴躍憤激), 이위구만국이평화야(以爲苟萬國而平和也), 오한역만국지일야(吾韓亦萬國之一也), 기응사지불평불화호(豈使之不平不和乎)。
기부문파란제국(旣復聞波蘭諸國), 개능독립(皆能獨立), 즉우부군취호만세왈(則又復群聚呼萬歲曰), 평화지의이정(平和之議已定), 피하국야(彼何國也), 오하국야(吾何國也), 일시지인(一視之仁), 역약시이의(亦若是已矣), 천기유시이호환의(天其有時而好還矣), 제대위기종차필기능사의(諸大位其從此畢其能事矣), 오제기종차유오국의(吾儕其從此有吾國矣), 오기즉사이전호구학(吾其卽死而轉乎溝壑), 백골차불후의(白骨且不朽矣), 막불저저우우(莫不雎雎盱盱), 이사호음(以俟好音), 이천연지경(而遷延之頃), 천우부조(天又不吊), 일야창졸(一夜倉卒), 과군즉세(寡君卽世), 거국흉흉(擧國洶洶), 통철궁양(痛徹穹壤), 무지유원(無地籲寃)。
내어국장지일(迺於國葬之日), 각교각사(各敎各社), 개인남녀(箇人男女), 유창독립지성(猶唱獨立之聲), 봉위오군지령(奉慰吾君之靈), 수포박편륙(雖捕縛鞭戮), 교가우전(交加于前), 도수쟁선(徒手爭先), 취사이불회(就死而不悔), 차가견질울지충(此可見窒欎之衷), 적구필설(積久必洩), 이억역제대위지계기기이고기용야(而抑亦諸大位之啓其機而鼓其勇也)。
연이인순일구(然而因循日久), 상미견획연지구처(尙未見劃然之區處), 즉우차의차해(則又且疑且駭), 탄과방지무유이자달(歎寡邦之無由以自達), 이중간용사자지반복기사(而中間用事者之反覆機詐), 유이혹제대위지시청야(有以惑諸大位之視聽也), 청갱유이변명지(請更有以辨明之)。
천지생만물야(天之生萬物也), 필유시물지능력(必有是物之能力), 소이인개곤훼(小而鱗介昆虫), 개유이자유활동(皆有以自由活動)。인지자위인(人之自爲人), 국지자위국(國之自爲國), 고역유자인자국지치리능력(固亦有自人自國之治理能力)。오한수소(吾韓雖小), 환삼천리(環三千里), 수이천만(數二千萬), 역사천년래(歷四千年來), 기능족당오한사자(其能足當吾韓事者), 자불핍절(自不乏絶), 초하대인국지대치재(初何待隣國之代治哉)。
천리부동풍(千里不同風), 백리부동속(百里不同俗), 피위오한지불능독립(彼謂吾韓之不能獨立), 이욕이피국지치리(而欲以彼國之治理), 가저오한지풍속(加諸吾韓之風俗), 즉풍속지졸불가변(則風俗之卒不可變)。이소위치리자(而所謂治理者), 적족위성난지계(適足爲成亂之階), 차기불가행명의(此其不可行明矣)。
연차설어공회즉왈(然且說於公會則曰), 한민지원부어일본의(韓民之願附於日本久矣), 부한민지자위한민(夫韓民之自爲韓民), 불유기강역풍토지이정(不惟其壃域風土之已定), 억역소득어천성자연야(抑亦所得於天性者然也)。시이녕굴어일시면수위협지권(是以寧屈於一時面受威脅之權), 이기심즉고장력천만년(而其心則固將歷千萬年), 이불실위한국지민야(而不失爲韓國之民也), 본심지존(本心之存), 언가무야(焉可誣也)。심지졸불가무(心之卒不可誣), 이욕용만국소공폐지위권(而欲用萬國所共廢之威權), 이압만국일사지공의(以壓萬國一辭之公議), 차어일본(此於日本), 역미위득계야(亦未爲得計也)。
(곽)종석등(鍾錫等), 산야폐후(山野廢朽), 불급상문우외방사실(不及詳聞于外邦事實), 이유자이구국신자(而猶自以舊國臣子), 의선군지유풍(依先君之遺風), 종사어유교지문(從事於儒敎之門), 금당대계유신지일(今當大界維新之日), 국지유무(國之有無), 재차일거(在此一擧), 여기무국이생(與其無國而生), 불약유국이사(不若有國而死), 여기자고어편판(與其自枯於偏阪), 숙약헌신어공청병관지지(孰若獻身於公聽竝觀之地)。일이자포기울읍(一以自暴其鬱悒), 이사기진퇴지야(而俟其進退之也)。
고이해륙초절(顧以海陸迢絶), 관금엄급(關禁嚴急), 공과족미달이질호불문(恐裹足未達而疾呼不聞), 조석지명(朝夕之命), 무구어도도지부(無捄於道途之仆), 즉차세차회(則此世此懷), 영무망어자포의(永無望於自暴矣), 수이제대위지신성총명(雖以諸大位之神聖聰明), 역안망기필산급어불견불문유묘억울지아한정사재(亦安望其必算及於不見不聞幽渺抑鬱之我韓情事哉)。
자감수지척지서(玆敢修咫尺之書), 합일부동정지사(合一部同情之辭), 구십년생수지실(具十年生受之實), 봉편풍어천애만리지외(奉便風於天涯萬里之外), 성비극박절(誠悲劇迫切), 부지소운(不知所云)。유제대위(惟諸大位), 련이찰지(憐而察之), 익회공판지의(益恢公判之議), 사대명지조무불편(使大明之照無不遍) 이대화지행무불순(而大化之行無不順), 즉불유종석등지무국이유국(則不惟鍾錫等之無國而有國), 억역도덕지행심어일세(抑亦道德之幸甚於一世), 이제대위지능사(而諸大位之能事), 진가필의(眞可畢矣)。여유미야(如猶未也), 종석등녕병수취사(鍾錫等寧騈首就死), 이서불위일본지복예(而誓不爲日本之僕隷)。이천만생명(二千萬生命), 독불관어천지지소육(獨不關於天地之所育), 이감조창지화기호(而憾條暢之和氣乎)。유제대위도지(惟諸大位圖之)。
개국오백이십팔년(開國五百二十八年) 삼월(三月) 일(日)
연서인(聯署人)
곽종석(郭鍾錫), 김복한(金福漢), 고석진(高石鎭), 류필영(柳必永), 이만규(李晩奎), 장석영(張錫英), 노상직(盧相稷), 류호근(柳浩根), 안병찬(安炳瓚), 김동진(金東鎭), 권상문(權相文), 김건영(金建永), 김창우(金昌禹)。
신직선(申稷善), 김상무(金尙武), 김순영(金順永), 이종경(李鍾璟), 권상익(權相翊), 고제만(高濟萬), 서건수(徐健洙), 곽수빈(郭守斌), 류연박(柳淵博), 하겸진(河謙鎭), 최학길(崔鶴吉), 이경균(李璟均), 이석균(李鉐均), 조현계(趙顯桂)。
하봉수(河鳳壽), 이수안(李壽安), 하재화(河載華), 하용제(河龍濟), 박규호(朴圭浩), 우하교(禹河敎), 김재명(金在明), 변양석(卞穰錫), 고예진(高禮鎭), 이승래(李承來), 윤인하(尹寅河), 김봉제(金鳳濟), 박종권(朴鍾權), 윤철수(尹哲洙)。
김택진(金譯鎭), 권상두(權相斗), 정태진(丁泰鎭), 정재기(鄭在夔), 임한주(林翰周), 배종순(裵鍾淳), 유진옥(柳震玉), 허평(許坪), 박상윤(朴尙允), 김지정(金智貞), 이인광(李寅光), 이학규(李學奎), 안종달(安鍾達), 손상현(孫上鉉)。
이이익(李以翊), 유준근(柳濬根), 송홍래(宋鴻來), 송준필(宋浚弼), 성대식(成大湜), 이기형(李基馨), 이덕후(李德厚), 안효진(安孝珍), 강신혁(姜信赫), 전양진(田穰鎭), 이정후(李定厚), 노도용(盧燾容), 김태린(金泰麟), 김정기(金定基)。
송철수(宋喆洙), 문용(文鏞), 송호완(宋鎬完), 송호곤(宋鎬坤), 권명섭(權命燮), 이돈호(李墩浩), 박정선(朴正善), 황택성(黃宅性), 이상의(李相義), 최중식(崔仲軾), 김양모(金瀁模), 권병섭(權昺燮), 권상원(權相元), 고순진(高舜鎭)。
김택주(金澤往), 정규영(鄭奎榮), 송호기(宋鎬基), 이길성(李吉性), 송철수(宋哲秀), 박익희(朴翼熙), 송재락(宋在洛), 권상도(權相道), 김병식(金秉植), 이능학(李能學), 이현창(李鉉昌), 이수인(李洙仁), 박준(朴埈), 이봉희(李鳳熙)。
박은용(朴殷容), 정근(鄭根), 백관형(白觀亨), 전석구(全錫九), 송주헌(宋柱憲), 전석윤(全錫允), 김영식(金榮植), 김양수(金陽洙), 김상진(金相震), 장영구(張永九), 이내수(李來修), 조재학(曺在學), 김영찬(金永贊), 정재호(鄭在浩)。
김덕진(金德鎭), 손진창(孫晋昌), 손병규(孫秉奎), 김병식(金炳軾), 이태식(李泰植), 이만성(李萬成), 이계원(李啓源), 이계준(李季埈), 우성동(禹成東), 김학진(金學鎭), 우찬기(禹纘基), 이병회(李柄回), 윤양식(尹亮植), 김용호(金容鎬)。
이복래(李福來), 곽걸(郭杰), 우하삼(禹夏三), 우경동(禹涇東), 박순호(朴純鎬), 우승기(禹升基), 조석하(曺錫河), 김동수(金東壽), 박재근(朴再根), 이진춘(李鎭春), 이규린(李奎麟), 이기정(李基定)。
본 장서는 한·일합방(1910) 후 10년, 즉 1919년 1월부터 세계평화회가 파리(巴里)에서 열림을 듣고 한국 유림대표 137인이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으로 하여금 한국의 실정과 왜적(倭賊)의 침략성을 국제 정의에 호소한 글월이다. 이로써 우리 민족운동사에 있어서, 또 수천 년 유교 국민의 사명에 있어서 일대(一大) 경종(警鐘)을 일으킨 것이니 곧 세칭(世稱) 「한국유림단 파리장서운동(韓國儒林團巴里長書運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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