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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안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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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에 전시내용이 소개돼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본 전시의 주제인 '한국인의 일생'을 알리고 있다.
첫 번째 주제인 '출생(出生)'부터 설명이 시작된다.
단기 4293년(서기 1960)년 이대부속병원에서 발급한 출생증이 전시돼 있다.
시아버지가 딸을 출산한 며느리에게 보낸 편지가 전시돼 있다.
제주도에서 사용된 요람이다.
1천 명에게 한 글자씩 받아서 만든 천인천자문이 전시돼 있다.
예전에 사용했던 돌잡이 물건들이다.
1970년대생까지 국민학교에서 사용했던 책상, 걸상이 전시돼 있다.
문자도 8폭 병풍이 아름다운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젊은 여성의 성년식인 계례에 관한 그림과 홀기가 전시돼 있다.
진세례를 하는 모습이다.
높은 관직에 오르는지를 겨루는 승경도가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온 고을 사람들이 어진 관리에게 감사의 의미로 만들어 전달한 만인산이 전시돼 있다.
1856년 경남 산청군에 거주하다 세상을 떠난 전주최씨 최필주 선생의 장례시 사용된 상여이다.
화려하고 다양한 모습의 구성이 망자(亡者)를 향한 가족, 이웃, 지인들의 애틋함을 전하는 듯하다.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사의 홀기이다.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 모습과 상차림이 함께 설치되어 있다.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친다는 호랑이 부적이다.
나가는 길에 위치한 아트월의 우는 아이와 웃는 할머니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손주를 등에 업고 있는 할머니의 무표정한 모습에서 고단했던 우리 어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전국 어디서나 뵐 수 있었던 어른들의 모습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어른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교육의 과정을 통해 지식은 물론 예의, 도덕 등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소양을 쌓으며, 사춘기 시기부터 이성(異性)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눈을 뜨고, 결혼과 출산을 하며 비로소 어른이자 부모로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하며, 직업생활과 취미 및 자녀 양육 등으로 점차 노년을 맞이해 이제 좀 편안하게 쉬려나 싶을 때 갑자기 다가온 병마(病魔)와 싸우다가 어떤 이는 삶을 끝내고, 어떤 이는 여생(餘生)을 좀 더 보내다가 일정한 시기가 되면 사랑하는 자녀와 이웃, 친지, 친구들을 남겨둔 채 눈을 감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보통 사람들의 삶일 것이다.
지금뿐만 아니라 과거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인데,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그 과정들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 3상설전시장에서 열리고 있어 소개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한국인의 일생(Korean life Passages, 韓國人的一生)’이라는 제목이 관람객을 인도하는데, 움직이기 시작하면 역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출생(Birth, 出生)’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조선 시대는 유교 이념에 따라 아들 중심으로 가계(家系) 계승을 중요시했으므로 임신 때부터 아들의 출산과 자손의 번창을 염원했는데, 이런 의미를 담은 그림, 기념 화폐, (여성의 몸에 다는) 노래개 등의 물건부터 치성(致誠, 신 등에게 정성을 다해 기도함)하는 모습, 특정 음식에 대한 선호, 태몽(胎夢, 아이를 밸 징조의 꿈), 태교(胎敎, 임신한 여성이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행동과 마음을 삼가는 일)을 거쳐 출산 후와 관계된 삼신상(三神床, 아이를 점지해주고 출산 후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돌보는 삼신에게 감사의 의미로 올리는 상), 출생증 등도 보인다.
‘네가 간 후에 오래이니 네 몸은 무사하냐? 순산하고 아들을 낳았으니 그런 경사가 없다만 너희 아버님이 계셨으면 오죽이냐 좋아하셨으랴...’라는 내용으로 친정어머니가 한글로 쓴 순산축하편지는 새롭게 어머니의 삶을 시작하는 딸을 축하하고 위로하는 의미가 가득해 마음이 짠하다.
‘순산 후에 국밥은 잘 먹고 있으며, 아이도 장수하게 생겼느냐? 섭섭해 하지 마라. 어찌 번번이 아들만 낳겠느냐?’라는 시아버님의 편지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통용되었던 당시에도 며느리를 사랑하는 시어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 또다른 면에서 감동을 준다.
작명서(作名書)는 새로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어른들의 뜻과 마음이 담겨 있어 손쉽게 아이의 이름을 짓는 지금과는 비교된다.
아이를 눕혀 재울 때 사용했던 요람(搖籃)은 밖에 나갈 때에 아이를 눕힌 채 어깨에 짚어질 수도 있는 점이 이색적이고, 오래된 백일(百日) 사진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는데 예쁜 사진을 찍으려고 주변 어른들이 요리조리 시끄럽게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한 아이의 표정이 웃음을 부른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 선생이 어린 손자 돌잔치에 보낸 축하의 글과 아이의 학문 성취, 건강을 염원하는 뜻으로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1,000명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한 글자씩 받아 채워 돌상에 놓았다는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은 비록 어려운 환경 속이었지만 자손을 사랑했던 무뚝뚝한 옛 어른들의 진심을 확인하는 증거라 더욱 강력하다.
선비의 방처럼 책, 문방구(文房具, 붓·종이·먹·벼루·펜·잉크·연필 등의 학용품과 사무용품) 등 선비들이 곁에 두고 즐기던 물건들을 10장의 종이에 그려 돌상이나 아이 공부당에 놓았다는 ‘책가도(冊架圖) 10폭 병풍’과 지금도 돌잔치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실패, 동전, 책, 붓 등의 돌잡이(抓周) 물건들이 놓인 공간은 어린 생명이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아가길 기원하는 어른들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어느 정도 자랐으면 이제 ‘교육’이 시작되는데, 기자가 지난 1980-1985년에 초등학교(당시 명칭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책상, 걸상이 전시돼 있어 반가웠고, 누런 종이의 교과서와 각종 수험표도 지나간 추억을 떠올렸다.
돌상에 사용된 문방구보다 훨씬 규격화되고 제대로 된 붓 등의 문방구와 유교의 덕목인 효(孝), 제(弟),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의 여덟 글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문자도(文字圖) 8폭 병풍’에 이르러서는 여건이 허락된다면 집에도 하나씩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른다.
시대와 계층 및 성별에 따라 달랐던 성년식(成年式)을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관례(冠禮)’와 ‘계례(笄禮)’로 진행했는데, 남자는 20세 전후에 집안 어른들 앞에서 상투를 틀고 갓을 쓰며 성인 이름인 자(字)를 받는 관례를 했고 여자는 15세 전후에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계례를 했으며 이런 과정 없이 혼례로 성년식을 대신하기도 했다는 설명이 눈에 띈다.
양반과 달리 일반 평민들의 성년의례인 진세례(入世禮)는 음력 6-7월에 20세 전후의 남성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겁고 큰 돌을 들어 올려 보여 이제부터 농사일 등을 해도 온전한 품삯을 받을 수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자리라고 소개하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전라도와 경상도 등 주로 남부지방에서 전승되어온 풍습이라고 한다.
양반의 집안에서 태어나 학문을 익혔으면 관직에 나아가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라 그랬는지 옛 벼슬 이름을 도표로 만들어 누가 먼저 높은 관직에 오르는 지를 겨루는 놀이판인 승경도(陞卿圖)는 조선시대판 부루마블 게임이나 우리들이 어릴 때 주사위를 굴리며 많이 했던 종이판 놀이 모습이다.
과거 급제 증명문서인 홍패(紅牌), 과거 급제자가 3일 동안 시험관·선배 급제자·친척 등을 찾아 인사하던 모습을 그린 삼일유가(三日遊街) 그림, 멋진 관복을 입은 모습의 인물도(人物圖)를 거쳐 종2품 이상 관리가 타던 수레인 초헌(軺軒)에 이르면 그 위에 올라 의기양양했던 인물과 주변에서 부럽게 바라봤던 이들의 모습이 교차돼 보이는 듯하다.
온 고을 사람들이 지방 관리의 공덕(功德)을 기리며 감사의 뜻으로 바친 일산(日傘, 지금의 양산)인 만인산(萬人傘)은 처음 보는 듯한데, 이 역시 가문의 영광이자 주변의 주목대상이 되었을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 외에도 결혼식인 혼례(婚禮), 장수(長壽)를 축하하는 자리인 수연례(壽宴禮, 회갑·환갑잔치), 나이 들어 병이 들었을 때의 치료와 관계된 모습인 치유(治癒), 세상을 떠난 이를 땅에 묻고 탈상(脫喪)하는 의례인 상례(喪禮),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고 때마다 추모하는 의례인 제례(祭禮) 등 각 주제마다 어떤 경우는 이미 어디서 많이 봤던 듯한 모습들이고, 어떤 곳은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면들이 번갈아 등장하는 이번 전시는 이미 상당한 나이가 든 이들은 옛날을 추억하는 시간으로, 아이들과 주말마다 어디를 가야할 지 고민하거나 멀리서 찾아온 지인들에게 뭘 보여줘야 할까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쨘~하고 보여주는 시간으로, 아파트와 쇼핑몰 및 휴대폰에만 익숙해져 있는 어린이·청소년·청년층에게는 조선시대 이후의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전통문화가 현대에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생생한 현장이다.
모든 과정을 세밀하게 보려면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조명이 관찰하기에는 좀 어두워며, 전시품에 대한 설명글이 너무 작아서 매번 고개를 숙여야 하는 점 등이 애로사항이긴 하지만 한두 번쯤은 볼만한 데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부분들도 많으니 서울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이들은 경복궁과 광화문을 방문할 때, 지역에 사는 이들은 성균관에 알묘(謁廟) 오고 경복궁 등을 여행할 때 같이 들르기에 괜찮을 듯하다.
그래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신경 써서 준비한 주제와 내용들이니 아무려면 다른 곳보다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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