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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290​설배운 것으로 인한 재앙

 

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오는 깎는데도 믿으면 위태함이 있으리라(박괘 구오효).

 


 

양나라를 세운 소연(464-549)은 학문에 뛰어났고 계책에 밝았으며, 판단을 빨리하고 군사를 잘 다루는 훌륭한 인재였다. 제나라의 방계 왕족이었는데, 황제가 포악을 부리는 것을 기화로 혁명을 일으켜서 양나라를 건국했다.

 

처음에는 능력과 인품을 갖춘 신하를 등용해 법률과 제도를 개선하고 대학을 설립하며, 재정을 절약하고 세금을 경감시키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대외적인 외교를 부드럽게 하여서 전쟁을 없애고, 문화적인 측면에도 힘을 썼으며 특히 불교를 장려해서 남조와 북조를 통틀어 가장 불교문화를 꽃피우며 태평한 세상을 만들었다는 추앙을 받았다.

 

당시의 중국은 남북조시대였는데, 북쪽을 다스렸던 위나라나 남쪽을 다스렸던 양나라가 모두 전적으로 불교를 신봉하였다. 위나라는 사찰을 모두 13천여 개를 새로 지었으며, 양나라도 이에 질세라 크고 작은 불사를 계속 이어갔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는 단연 양나라 무제였다. 계율을 잘 지키는 스님처럼 새벽에 예불하고, 베옷을 입으며, 하루에 한 끼의 식사를 하되 12시에 현미밥과 나물로 된 식사를 하고, 관 하나를 3년을 쓰고, 이불 하나로 2년을 썼다.

 

이러한 신앙적 절제를 개인적인 실천에서 끝내지 않고 국가 전체를 불교문화로 덮으려고 하였다.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종묘에 동물을 희생으로 쓰는 것은 나의 저승길에 누가 되니 모두 국수나 채식으로 대체하라고 한 것이다. 또 외교문서에도 황제라는 칭호보다 보살이라고 불리는 것을 더 선호해 주변 국가들이 황제 대신 보살로 칭하는 외교문서를 보내왔다. 위나라에서 황제가 바로 여래이다라고 말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가 태자 소명과 함께 수많은 불교경전을 해석하는 주석서를 만들고, 금강경 등 불교경전을 해석하며 소제목을 붙이고 주석한 내용은 지금까지도 아주 훌륭한 업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런 그가 말년에는 정치를 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며 황제의 자리를 선양하고, 그가 지은 동태사에 빗자루질하는 노비로 입적하였다. 모두 네 번에 걸쳐 사찰노비로 들어갔는데, 신하들이 그를 동태사에서 빼내 오기 위해 들어간 천문학적 경비 때문에 나라의 재정이 무너졌다.

 

또 신하들의 잘못을 자비의 이름으로 너그럽게 용서하자 임금을 얕본 관리들의 행패가 도를 넘기 시작했다. 백성들의 것을 빼앗고 뇌물을 받으며, 대낮에도 도심 한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고, 잘못을 저지르고 왕족의 집에 숨어 있어도 감히 수색하고 체포하지 못하였다. 심지어는 위나라를 배신하고 망명한 후경을 받아들여 대장군으로 삼고, 위나라와 싸워 패하였는데도 질책을 하지 않다가 후경이 반란을 일으키자 성안에 갇혀 굶어 죽었다.

 

그가 진실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믿고 불사를 일으켜 불교를 흥성하게 하였는데, 왜 나라를 빼앗기고 굶어 죽게 되었는가? 임금은 기강을 세우며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게 자비를 베푸는 것임을 망각함으로써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마대사에게 내가 이렇게 불교를 위해 애쓰는데 어떻소?” 하고 물으니 달마대사가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에서는 임금의 자리는 논공행상을 잘하는 것이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잘못했는데도 그냥 넘어가면 백성도 나라도 모두 위태하다라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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