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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대상전에 말하기를 “물이 거듭 이르는 것이 감괘이니, 군자가 본받아서 덕행을 항상 일정하게 하고, 가르치는 일을 중단 없이 한다”(감괘 대상전).
한 지인이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진정한 뜻이 무어냐고 물어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는 뜻으로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설이 있고, “내가 스승에게서 배우는 것도 배우는 것이고 내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으로, 둘 다 나를 성장시켜 준다”는 자기완성의 방법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맞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후자가 옳은 해석이다.
은나라의 무정 임금은 쇠퇴해 가는 나라를 부흥시킨 덕이 높은 임금이라 해서 고종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무정이 임금이 되자 가장 급선무로 필요한 것이 자신을 보필할 재상이었다. 그런데 그 재상감은 부암에서 축대를 쌓는 형벌을 살고 있었다. 죄수를 불러서 하루아침에 재상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무정이 선왕의 3년상을 치르고도 말을 하지 않고 가만있으니 신하들이 조급해 하며 정사에 임할 것을 간청했다. 그제서야 꿈에서 보았다고 하며 재상감의 얼굴을 그려서 신하들에게 찾게 하여 부열을 불러다 재상을 삼았다.
부열이 무정 임금에게 자신의 정치철학을 설명한 것이 서경의 열명편이다. ‘열’은 부열의 이름 ‘열’이고, ‘명’은 서경 문체 중의 하나로, 임금이 질문하는 명을 받들어서 대답하는 형식의 글이다.
무정 임금이 부열이 가르치는 대로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니 부열이 배우기만 해서는 부족하다는 뜻으로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의 반에 해당합니다(斆學半).”라고 하였다.
『예기』의 학기편에는 “배워봐야 자신의 지식이 부족함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을 가르쳐봐야 자신의 부족하고 몰랐던 점을 알게 된다. 자신의 지식이 부족한 것을 알아야 반성하게 되고, 부족하고 몰랐던 점을 알게 되어야 스스로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이 서로 시너지효과를 내며 나를 길러주는 ‘교학상장’이다. 그것이 『서경』에서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의 반’이라고 한 뜻이다”라고 하였다.
『대학』의 8조목 사상이나, 『중용』의 “성실함은 자기를 완성시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완성시키는 것이다. … 안과 밖을 합하는 방법이다.”라는 것도 배움과 가르침을 통해서 나도 완성하고 세상과도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유교에서는 배워서 깨달은 도리를 혼자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자님께서 “배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學不厭 敎不倦)”고 하신 이유이다.
불교에서도 혼자 열심히 수련해서 득도하면 반드시 사회에 나가서 가르치고 실천하는 보살행을 해야 완전할 수 있다고 한다. 보살행은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인 것 같지만 실은 자신의 깨우침을 공고하게 하는 수단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학문을 완성하기 위해서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인 것이다.
본뜻은 이러하지만 “선생은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로 해석한다고 크게 잘못될 것은 없다고 본다. 나의 완성을 위한 배움과 가르침의 관계를 넓히면 나와 학생의 완성, 나와 세상의 완성으로 관계를 넓혀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에서도 ‘물이 끊임없이 흐르듯이, 배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라고 가르쳐서 끊임없이 교학상장을 해야 군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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