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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창간 55주년 특집] 중국인 유학생에게 '직접' 듣는다-위자요(魏子堯) 성균관대 대학원생“한국 성균관에서 유학(儒學)을 만난 것이 제 인생 최대의 행운이었습니다”

 

 

서울 성균관 유림회관 3층 유교신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성균관 명륜당을 들를 때마다 그곳을 거쳐한 수많은 인물들의 삶과 생각들을 그려본다.

 


 

 

올해 2월 삭분향례에 참석한 모습이 기자의 카메라에 촬영되어 있다.

 


 

 

위자요 대학원생이 생활했던 하북성은 북경(베이징)과 천진(텐진)을 둘러싼 '중국의 수도권 지역'이다.

 


 

 

방학 때마다 귀국시 북경(베이징)의 국자감을 종종 찾곤 한다.

 


 

 

천진(텐진) 문묘 대성전에 모셔진 공부자(孔夫子, 공자) 모습이다.

 


 

 

중국 곡부 공묘의 대성전도 방문할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곳이다.

 


 

 

옛 계성사(啓聖祠) 자리에서, 분향 때마다 자주 만나는 이태형 수복가문 대표와 함께 했다.

 

 

 


 

서울 문묘 성균관은 음력으로 매달 1일에는 삭분향(朔焚香), 15일에는 망분향(望焚香)을 하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젊은이가 있다. ‘뭘 하는데 이렇게 보이는가?’ 궁금증이 생겼는데, 주변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국인 학생이라고 한다. 그동안 유교의 종주국을 자처해온 중국에서 왔다는 점도 의아스럽고, 중국에서 왔다면 자국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동묘(東廟, 중국 촉나라 장수 관우(關羽, 160?-219)를 모신 사당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해 있음) 등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곳을 찾아야 할텐데 보통의 유림들보다도 더 열심히 성균관을 찾아오는 그가 궁금하여 인터뷰를 요청해 진행했고, 최근 유교에 대한 중국 사회와 젊은이들의 생각을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1. 예전부터 성균관에서 진행하는 분향(焚香)과 석전(釋奠) 등에서 계속 얼굴을 봤던 것같습니다. ‘젊은 분이 어떻게 알고, 이렇게 매번 찾아오나?’라고 궁금했는데, 본인 소개 및 현재 하고 있는 일 등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중국인 유학생으로 전해 들었는데 중국식 이름과 한자는 무엇인지, 지금 사용하는 한국식 이름의 한자는 무엇인지, 몇 년생인지, 고향은 어디인지, 부모님·형제 자매 및 가정환경은 어떠했는지, ··고교 및 대학교 학부는 각각 어느 지역의 어떤 학교를 다녔고,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등 여러 가지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중국인 유학생 위자요(魏子堯, 중국식 발음 위쯔야오’)입니다. 1997년 중국 하북성(河北省, 허베이성-베이징과 텐진을 둘러싸고 있는 중국의 수도권)에 태어나고, 한단시(邯鄲市)에서 초··고 학업을 이수하였으며, 2016년에 한국에 유학을 와서 중앙대학교 어학당을 1년간 다닌 후 2017년에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해 유학·동양학과 학부를 다녔습니다. 2021년에 같은 학교 대학원 유학동양한국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2022년에 같은 학과 박사과정으로 진학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 계기는 처음에는 한국어를 배워 언어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우연히 성균관을 관광할 때 생생한 유교전통의례를 보고 한국에는 이런 학교도 있구나!”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풍(古風)스러운 것을 좋아했고, 성균관대학교의 스타일이 제 심미에도 맞아서 이 학교에 다니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입학했습니다.

 

2. 한국에서의 유학 전공은 보통의 중국인 유학생이 선택하지 않는 분야인 것같고, 게다가 유학은 오히려 중국 본토가 시발(始發)된 곳이라 더욱 그런 것같은데 한국과 성균관대를 굳이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요? 그리고 언제부터 그런 공부를 시작했고, 어떻게 진행하고 있습니까?

 

제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예학(禮學)입니다.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지원한 이유는 앞서 밝힌 것처럼 한국에서의 유교의식을 보고 받은 감동이 컸기 때문입니다. 유학과에 처음 입학할 때는 어떤 영역을 공부해야 할지 오랫동안 망설이고 있었으나 학부 공부를 통해 유가(儒家)의 핵심은 ()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대학 3학년부터 예학을 공부하기로 정했는데, 한국은 󰡔주자가례󰡕의 예의를 잘 전승하고 있고, 석전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 등의 유교의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서 책만 보는 것보다 의례를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는 점에서 큰 우위가 있습니다. 예는 인()의 표현이고, 실천입니다. 앞으로도 예학을 더욱 심화시켜 성학(聖學)의 아름다움을 전승하고 싶습니다.

 

3. 중국이 유교의 본산이었으나 지난 1960-70년대의 문화대혁명을 통해 많은 유적과 유산 등이 사라졌고, 연구도 중단되거나 연구자들이 해외로 망명하는 등 피해가 컸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의 유교 및 유학 연구의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그리고 한국의 유교 및 유학 연구는 중국과 어떤 점의 차이가 있습니까?

 

지금의 중국에는 국학열(國學熱)의 사회 풍조가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문화자신(文化自信, 문화적 자신감)’ 정책에 따라 유학 연구가 활발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젊은이들도 국풍(國風, 나라의 풍속)을 선호하고, 국풍식 유행 음악과 전통한복(漢服, 한푸)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특히 복식에서 한푸를 입는 것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풍조가 되었고, 이런 국조(國潮, 궈차오-자국 브랜드 소비를 선호하는 경향)’는 지금 중국 사회에서 하나의 새로운 열풍이라고 간주해도 됩니다. 그리고 석전(釋奠)과 같은 전통 의례는 국조의 추세에 따라 민간에도 크게 진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4. 그동안 본 성균관과 한국 유교, 유림의 모습을 보며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셨습니까?

 

중국에서는 공식적인 입장으로 유가를 종교로 보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성균관이라는 유교 종교 단체가 있어서 이것부터 중국과 크게 다릅니다.

 

한국에서 성균관이 유교와 유림 단체를 통합하고, 유교의식을 규정하며 보존하는 것은 보기 좋습니다만 지금까지 본 바로는 젊은 사람들의 참여도가 낮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젊은 사람들은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은 것보다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져서 그런 것같으며, 젊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지 못하면 이런 의식이나 종교, 단체에 관심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외국인이라 이런 말을 하기가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한국 유교의식에서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참여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5. 지금 전공과 가장 중점을 두고 연구하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저는 지금 유학동양한국철학과의 유학 전공을 하고 있는데, 전공 방향은 예학이고 특히 󰡔주자가례󰡕 영역에 관심을 가집니다.

 

 

6. 아직은 공부했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명확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유교는 무엇이다또는 유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한다고 나름대로 정의 내리는 부분이 있습니까?

 

수기치인(修己治人, 나를 닦는 과정과 힘으로 주위 세계를 감화시킨다는 의미로서 유학이 실현하고자 하는 진리 구현의 방식을 가리키는 유교용어)’은 우리 성균관대학교의 교훈입니다. 이 교훈이 유학의 근본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수양하고 남을 도와주는데 있어서 사실상 예가 바로 이런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자께서 사람으로서 인()하지 못하면 어찌 예를 행할 수 있는가?(人而不仁 如禮何)’ ‘예를 말하고 예를 말하는 것이 구슬과 비단을 말하는 것이겠는가?(禮云禮云 玉帛云乎哉)’라고 말씀하셨듯이 예는 유학의 핵심으로서 마음에 있는 인()을 발현하는 것입니다.

 

예의를 통해서 사람을 가르치고 사회를 조화합니다. 관례로 성인(成人)의 책임을 가르치고, 혼례로 부부의 도를 이루며, ·제례로 신종추원(愼終追遠, 부모의 장례를 극진하게 모시고, 나아가 먼 조상에게도 추모의 예를 다해야 함)하고, 조상의 정신과 가족의 혈맥을 연결하고 본()과 충의(忠義)를 압니다.

 

정자께서도 본을 중시하게 되면 나라의 위세가 저절로 높아진다(人旣重本 則朝廷之勢自尊)’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장재도 충의가 정립되면 나라가 어찌 튼튼하지 않겠는가?(忠義旣立 朝廷豈有不固)’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는 유학의 핵심 이념이고, 유학 수기치인의 실현 방식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7. 중국과 한국은 오랜 기간 유교, 유학이 국가의 통치이념이자 사회 전반의 운영원리로 작동하여 지배층, 상류층은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던 것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두 나라 모두 고난의 역사를 거쳐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했는데 지금 시점에서 보통의 중국인들은 유교, 유학에 대해 어느 정도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보통의 한국인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는 것같습니까?

 

유학은 수천 년 이래에 고대 왕조 통치자들이 이용해 왔습니다. 그중에 봉건통치 집단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유학의 이론을 악용하거나 왜곡하여 나름대로 해독한 상황이 많았습니다. 이 점 때문에 중·한 양국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유교가 나라를 쇠망시킨 원흉이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우리나라(=중국)는 국가 문화에 대한 중시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유학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다양해서 여전히 유학이 나쁜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의 상황을 잘 모르지만 현재 한국인들의 유학이나 유교문화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8. 앞으로의 공부 계획 및 박사학위 취득 후의 진로를 어떻게 예정하고 있습니까?

 

박사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교직원이 되는 것은 저의 이상과 목표입니다. 한국에서는 교직원이라고 하면 대체로 행정, 사무 일을 담담하는 직원을 뜻하지만 중국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역할, 즉 한국에서의 교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가 사랑하는 학문을 더 많은 학생에게 가르치고 전파하고 싶습니다.

 

9. 남은 인생 동안 꼭 하고 싶은 것(버킷리스트), 꼭 가보고 싶은 곳,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하는 내용들을 여쭤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젊은이, 사람, 지인의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가고 싶은 곳을 정하기 보다는 제가 가진 가치를 발휘하며 살고 싶습니다. 나라나 사회,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조금 공헌을 하더라도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대한 이상보다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젊은이가 되면 만족합니다.

 

10.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창간 55주년을 맞이한 <유교신문> 독자들과 한국의 유림,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해주십시오.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의 학생으로서, 진심으로 한국 유교가 크게 발전하고, 더 많은 인기를 얻기를 바랍니다. 한국에서 유학(儒學)을 만나서 기쁘고, 그중의 한 명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미래에 한국에 있든지, 중국으로 귀국하든지 간에 성균관에서 유학을 만난 세월은 저의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유학이 아니었으면, 성균관에 온 것이 아니었으면 현재의 제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학(聖學)의 도가 이 땅에서 계속 빛날 것을 바라고, 성균관과 한국 유림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유교신문>도 더욱 신뢰받고 사랑 받는 언론으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합니다. 오흥녕 주간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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