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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오는 좋은 혜택을 베풀기 어려우니 조금 바르게 하면 길하고, 크게 바르게 하려 하면 흉하리라(둔괘 구오).
공자와 공부자 중에서 공자님을 더 높이는 호칭은 무엇일까? 말하자면 ‘부자’와 ‘자’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높이고 존경하는 표현이냐는 것이다.
‘자(子)’는 ‘열매, 아들, 종자, 제후의 작위, 남자를 존경해서 아름답게 부르는 호칭’ 등의 뜻으로 쓰인다. 한 해를 잘 지내고 마무리해서 얻은 결과로 이듬해에 훌륭한 종자 노릇을 하는 것이 ‘자’이다. 씨앗 중에서도 최고 상등품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자’로 호칭하는 것은 학문을 잘 습득하고 연구해서 얻은 결과를 다음 세대에 대대로 전달해서 싹 트게 하는 종자와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학자 중에 ‘자’를 호칭으로 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상나라에서 당나라까지 약 2천 년 동안에 기자(箕子), 공자 등 ‘*자’라고 호칭된 학자가 100명도 안 되니 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로운 호칭이 아닐 수 없다.
‘부자’의 뜻은 무엇인가?
공자님은 『논어』에서 거백옥과 공숙문자에게 ‘부자’라고 호칭하셨는데, 두 사람 모두 위나라의 대부였고 인격적, 학문적으로 훌륭하다고 알려진 사람이었다. 또 자공이 극자성을 보고 ‘부자’라고 호칭하였는데, 극자성 역시 위나라 대부이자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었다.
공자님의 제자들도 공자님에게 ‘부자’라는 호칭을 하였는데, 공자님 역시 노나라의 대부 벼슬을 했었고 인격적으로, 학문적으로 뛰어나신 분이었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논어』에는 공자님을 비롯한 네 분에게만 ‘부자’라고 호칭을 한 것으로 보아서 공자님 당시에는 ‘부자’라는 호칭이 ‘대부라는 높은 관직에 나갔으면서도 학문적, 인격적으로 훌륭하신 선생님’의 뜻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전직 장관일지라도 ‘장관님’하고 부르는 예와 비슷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송나라 때에 와서는 ‘부자’의 뜻이 조금 변색되었다. 주자(주희)가 그의 『대학장구』 서문에 공자님을 ‘오부자(吾夫子, 내가 학문적으로 존경하는 부자님)’ 또는 ‘부자’라고 호칭하고, 정호·정이 형제분에게도 ‘부자’라고 호칭하였다. 또 『통서』 서문에는 주렴계(주돈이)와 이정자에게 ‘부자’라고 하였는데, 공자님을 제외한 나머지 세 분은 대부 벼슬을 하지 않았다. 공자・주자(周子)・이정자(二程子) 등 네 분에 한정해 ‘부자’라고 한 것으로 보아 ‘대부’라는 벼슬과는 상관없이 ‘*자’와 같이 존경하는 스승에 대한 호칭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춘추시대 말기에는 ‘대부라는 높은 관직에 오르셨던 큰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부자’라고 존칭하여 불렀었는데, 뒷날에 존경하는 스승을 호칭하는 용어로 변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처음의 질문을 다시 해보자. 공자와 공부자 중에서 공자님을 더 높이는 호칭은 무엇일까?
‘대부벼슬을 하신 우리 공씨 큰 선생님’하고 ‘공씨 큰 선생님’하고의 존칭 다툼이다. 그런데 공자님은 대부가 마지막 벼슬이 아니다. 당나라 현종이 ‘문선왕’으로 추존하고, 안회를 연국공으로, 그 외 10철을 모두 제후로 추증했다. 그렇다면 ‘부자’는 공자님의 제자인 10철보다도 못한 호칭이 된다. 설사 문선왕이라고 높여도 황제보다 낮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님을 지위로 평가하는 호칭보다는 덕과 학문을 높이는 호칭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역에서도 ‘확실하게 밝힐 능력이 없을 때는 적당히 넘어가면서 다른 가치적 기준을 찾는 것이 좋다’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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