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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특집 – 잘못 알고 있는 유교 의례 ②“전거가 없으면 유교 의례가 아니다”

앞서 신로(神路)에 관한 특집 기사가 나가자 유림들과 일반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많은 이들이 석전 때 신로와 관련해 기분 좋지 않은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그럴 일 없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분향례나 고유례 때 신로에 대고 절을 하는 버릇을 고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행례하는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면 습관이란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교 의례는 유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다른 종교가 모두 의례를 중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하면 유교 의례가 훼손되면 유교의 정체성은 무너지고 만다.

 


 

유교 의례는 모두 전거가 있다

 


 

요즘 향교나 서원에서 전통문화와 유교 의례 체험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향교나 서원마다 한두 가지씩 다른 게 있다 보니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혼란을 겪는 경우가 다반사다. 참여자들이 그런 차이의 이유를 물으면 답변은 대개가 궁색하기 마련이다. 가가례(家家禮)니 예부터 어른들이 그렇게 해 오셨다느니 하면서 넘어가고 만다.

 

지만 유교 의례는 전거(典據)가 분명하다. 따라서 전거가 없으면 유교 의례가 아니다. 혹자는 가가례 운운하지만 유교 의례에서 가가례란 있을 수 없다. 전거도 없이 어른들이 그렇게 했으니 그렇게 할 뿐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대답도 용납될 수 없다.

 

유교 의례는 삼례(三禮: 周禮, 儀禮, 禮記)에 의거해 성인(聖人)과 천자(天子)만이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시속(時俗)에 따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아주 특별한 경우다. 이 경우에도 전거가 분명하다. 따라서 유교 의례는 어느 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임의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재(李縡)가 관혼상제의 사례(四禮)에 대해 정리하여 편찬한 『사례편람(四禮便覽)

 


 

그럼에도 분향의(焚香儀석전의(釋奠儀고유의(告由儀작헌례(酌獻禮) 등 문묘(文廟) 의례, 정위(正位배위(配位종향위(從享位) 등 문묘 봉안(奉安) 위차(位次), 복식(服飾) 등을 달리 해 유교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향교나 서원에서 의례 봉행 시 양복에 유건을 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성현을 존숭(尊崇)하는 마음에 유건이라도 써야겠다며 쓴 것이겠지만 이것은 의례에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 18현을 존숭하는 마음에 문묘 봉안 위차를 임의로 바꾸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문묘에서의 좌배(座拜)와 입배(立拜) 문제도 그렇다. 태학지(太學志)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는 물론 공식 의궤(儀軌)나 나라에서 발간한 예서(禮書)에는 일어나서 절하라는 입배 대목은 하나도 없다. 국궁, , 진홀이라고 한 후에 배 흥, 배 흥, 배 흥, 배 흥, 집홀, 부복, , 평신이라고 한다. 모두 좌배다. 그럼에도 아무 근거도 없이 지역의 어르신들이 그렇게 해 왔다는 이유만으로 입배를 고집하는 곳이 있다.

 

공자께서는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過則勿憚改)"라고 하셨다. 전거도 없이 잘못된 의례를 행하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성균관과 향교, 서원의 의례 정립 시급하다

 


 

얼마 전 대통령이 유교 중심지라고 자처하는 모 지역을 방문했다. 갓 쓰고 도포 입은 유림들이 대통령을 맞으면서 방석을 발로 툭툭 차면서 밟고 앉았다. 이를 본 청와대 관계자가 얼마 후 다른 자리에서 성균관 관계자에게 어르신들이 왜 방석을 발로 차면서 앉았느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관계자가 나이가 드셔서 그런 것이다. 젊었을 때는 배웠지만 나이가 드셔서 잊은 것 같다는 답변으로 곤란한 상황을 모면했지만 참으로 딱한 일이기도 하고 실제 이게 지금 유림들의 실상이다.

 

지금 추세로 본다면 그런 모습을 본 후배들은 훗날 세대가 바뀌어 방석을 발로 차는 게 의례라고 할지도 모른다. 과거 어르신들이 그랬다고 하면서.

 


 

 

영녕전 참배의식 중인 영친왕을 좌인도하고 있다.(1918년) (사진 서울대박물관)

 


 

의례를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면서 성균관에서는 2014115일 전국 유림들의 요청과 유림총회의 감사 지적에 따라 분향례 공청회를 연 적이 있었다.

 

성균관과 전국 향교, 서원 행례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엄숙한 행례(行禮)를 통한 모성지심(慕聖之心)을 제고하고자 개최된 당시 공청회에서 방동민(석전보존회 사무국장), 서정택(성균관 전례위원회 위원장), 김옥란(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 사무국장) 등은 전거에 의거해 분향례의 통일안을 마련했다.

 

당시 분향례 공청회에서는 성균관과 향교, 서원에서 시행하는 분향례의 오류를 지적하고 삭망(朔望) 분향의(焚香儀)’, ‘좌인도(左引導)’, ‘배례(拜禮) 시 전개양수(展開兩手)’, ‘조계승강(阼階陞降)’, ‘섭급취족(涉級聚足) 및 좌우선족(左右先足)’, ‘신로(神路)’, ‘서향배(西向拜)’ 등의 문제를 짚었다.

 

하지만 오령교도들이 성균관을 장악하고 대성전에서 영가무도를 하는 등 패악을 저지르면서 통일안 실행은 무산되고 말았다. 오령교도들은 성균관을 사이비종교의 근거지로 만들려고 했고 유교 의례를 파괴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아마도 그런 상태로 시간이 좀 더 흘렀다면 유교와 성균관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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