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령교 문제로 시끄러웠던 2014년 성균관에서는 경북 경산시 소재 대구한의대 명예총장인 변정환 씨가 자문위원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변정환 씨는 타이완의 신흥종교 천은미륵불원의 전인이라는 게 드러나면서 거센 비판을 받고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변정환 씨가 전인으로 있는 천은미륵불원은 중국계 종교단체로서 타이완 아미시에 총본부가 있다. 지구상의 많은 이변으로 머지않아 천지개벽이 되고 진정한 낙원 세상이 이 땅에 세워지는데 구세주가 미륵불이라고 한다.
이들은 구세주인 미륵불의 미륵기를 받은 사람은 미륵불의 보호 아래 아무 탈 없이 살 수 있는 보장을 받았다고 한다. 어떠한 재난이나 위급한 난관에 빠져도 ‘무태불미륵’이라는 주문을 외우면 즉시 재난의 어려움을 벗어나 생명의 안전을 보장받으며 성경의 기록도 자신들의 교리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신앙대상은 명명상제와 미륵불이다. 명명상제는 우주의 최고주재자로서 하느님, 조물주, 창조주, 천주, 노모님으로 만령을 낳는 모체이고 미륵불은 석가의 뒤를 이어 앞으로 올 부처로서 미래불이라고 한다. 노모님이란 육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영성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이들에 따르면 노자와 공자, 석가 등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여러 성현들을 모두 천은미륵불원의 조사다.
한국의 교주 급에 해당하는 천은미륵불원의 전인인 변정환 씨는 왜 느닷없이 성균관의 자문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섰을까. 자문위원장을 맡아 오령교도들과 무엇을 하려 했을까.

변정환 씨가 타이완의 천은미륵불원 총본부 행사에 참여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 자은문화원)
비자금 조성 요구 거부하고 양심 지킨 G 씨
변정환 씨가 성균관에 나타난 것은 대구한의대에서 벌어진 사건과 관련이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대구한의대는 우리나라에서 첫손에 꼽히는 족벌 사학이다. 설립자 변정환 씨는 이사장과 총장을 번갈아 하다 지금은 명예총장으로 있고, 그의 부인은 이사장과 이사를 하다 지금은 둘째 아들에게 이사 자리를 내주고 물러났다. 2남2녀의 자식들은 모두 이 대학의 교수이고, 지금은 둘째 아들 변창훈 씨가 총장을 맡고 있다.
2011년 6월 23일 이 대구한의대에서 기획예산팀장으로 근무했던 G 씨가 갑작스레 사망했다. 사망 당시에는 누명을 쓰고 직장에서 내쫓겨 대구한의대 재단인 학교법인 제한학원과 소송 중이었다.
G 씨의 유가족들은 “(G 씨는) 행여나 이러한 일들을 칠순의 노모가 알고 충격 받을까봐 늘 노심초사했고 들킬까봐 밤이 되면 숨 죽여 흐느끼고 견디다 못해 대성통곡하는 일들도 잦았다.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으며 얼마나 억울했으면 새벽 마다 소리 내어 울었을까 생각하면 저희들은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고 전했다.
G 씨는 대구한의대에서 기획예산팀장으로 근무할 당시 변정환·변창훈 부자로부터 지속적으로 발전기금과 비자금 조성을 강요받았다.
이들의 집요한 요구는 2007년 대학에서 민간투자사업으로 기숙사와 연구강의동 건립을 추진하고 이 사업 추진을 위해 대학 최초로 150억 원의 적립금을 마련하면서부터 시작됐다.

G 씨가 남긴 2007년 업무노트에는 한 해 동안의 업무 내용이 일자별로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 2007년 9월 3일자 기록의 붉은 선 안 부분에는 "양해각서 체결 후 변단장 연구실에서 만남. 변교수의 요구사항(발전기금을 법인발전기금으로 하고 플러스 알파 20억) 공사비 10%가 관례. 요구 거절하였음"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여기서 변단장과 변 교수는 변창훈 씨를 말한다.
하지만 G 씨가 변정환·변창훈 부자의 공사리베이트 요구를 거부하자 학교법인 제한학원은 G 씨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파면했다. 물론 징계사유도 거짓이고 조작됐다. 징계위원들은 시키는 대로만 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그들은 징계사유의 내용조차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심지어 G 씨를 배임혐의로 고소하고 평소 가까운 지인들과 친구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하고 모함, 거짓 진술까지 시켰다.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서슴지 않았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G 씨에 대한 파면은 부당해고이므로 복직을 시키라고 판정했다. 하지만 제한학원은 G 씨를 복직시키지 않았다.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G 씨는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G 씨가 사망하자 유가족들은 관계기관에 G 씨 죽음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어떤 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간의 사정을 알지 못했던 G 씨의 노모는 아들의 사망에 충격을 받고 변창훈 씨를 찾아갔지만 변창훈 씨는 경찰을 불러 연로한 G 씨의 노모를 대학에서 내쫓았다.
G 씨는 사건의 진상을 전하는 업무노트와 각종 자료들을 남겼다. 그 외에 소송 과정에서 오간 방대한 자료들이 있다. 이 자료들은 대구한의대에서 벌어진 부끄러운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 주는 증거들이다.
G 씨가 사망한 날은 공교롭게도 복직의 희망을 접고 그 동안 비상근으로 일을 돕고 있던 새로운 직장에 정식 직원으로 출근한 날이었고 그 새 직장은 성균관에서 운영하던 수련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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