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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특집 – 잘못 알고 있는 유교의례③‘알자(謁者) 좌인도(左引導)’

예법(禮法)

알자(謁者)는 헌관(獻官)의 좌측에서 인도한다.

 

논쟁(論爭)

헌관을 인도할 때, 알자의 위치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 오늘날 종묘제례의 경우 알자가 헌관의 좌측에서 인도하고, 성균관과 향교 제례의 경우 헌관의 우측에서 인도하고 있다.

원래는 종묘대제에서도 우인도를 하였으나 순종을 좌인도하는 사진에 의거하여 최근에 좌인도로 바꾸었다.

 

해설(解說)

1. 폐백을 도울 때는 왼쪽에서 하고, 임금의 명을 전할 때는 오른쪽에서 한다.(贊幣自左 詔辭自右예기』 「소의

2. 인도하는 사람이 왼쪽에 처하고, 윗사람이 오른쪽에 처한다. 예기』 「단궁에 유약의 상()에 도공이 조문할 때 자유가 왼쪽에서 인도한 사례가 언급되어 있다. 상변통고에는 정현이 서있는 자는 오른쪽을 높인다고 언급한 대목도 인용되어 있다.

3. 가례원류에 임금의 오른쪽에 말미암는 것은 축사를 중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명을 중하게 여길 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가례집람에도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는 자는 임금의 오른쪽에서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지도(地道)는 오른쪽을 존숭하는 뜻이라 설명하고 있다.

 

예법(禮法)의 근거

1. 예기』 「단궁

유약(有若)의 상에 노나라의 도공(悼公)이 조문을 가니, 자유가 빈()이 되었는데 (도공의) 왼쪽으로 말미암았다.

: ()은 상례를 돕는 자이다. : 소의(少儀), “조사(詔辭)는 오른쪽에서 한다고 했고, 정현이 이르기를, “서 있는 자는 오른쪽을 높인다고 했다. 자기가 군주의 조사를 전할 때는 조사(詔辭)가 높으니 오른쪽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 상사(喪事)에는 빈()을 받들어 오른쪽에 처하게 하고, 자신은 왼쪽에 처한다. 당시에 예가 피폐해져서 상례(相禮)도 군주의 조사를 전하듯이 하여 자기가 오른쪽에 처했다. 자유는 예를 알았으므로 빈()을 받들어 오른쪽에 처하게 하고 자신은 왼쪽에 처했다.

檀弓」:有若之喪悼公弔焉子游儐由左. 相侑喪禮者. :「少儀」,詔辭自右.” 鄭云立者尊右.” 若己傳君之詔辭詔辭爲尊則宜處右. 若喪事則推賓居右而己自居左. 當時禮廢相禮亦如傳君詔辭己自居右. 子游知禮故推賓居右己居左也.

2. 가례집람(家禮輯覽)

의례사혼례에서, “ 笄宵衣 在其右의 주석에 이르기를, “()는 부인으로서 나이가 오십 정도로 자식이 없는 자로 출가하여 다시 시집가지 않은 자이다. 부도(婦道)가 있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칠 만한 자를 말한다. 오늘날의 유모(乳母)와 같다. <중략> 무가 신부의 오른쪽에 있는 것은 신부의 예를 가르치기에 마땅해서이다.” 하였으며, 이에 대한 소에 이르기를, “예기』「소의(少儀)에 이르기를,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는 자는 임금의 오른쪽에서 한다[詔辭自右]’ 하였는데, 이는 지도(地道)는 오른쪽을 존숭하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士昏禮 笄宵衣(宵衣초의라 읽는다) 在其右 註姆婦人年五十無子 出而不復嫁 能以婦道敎人者 若今時乳母. 姆在女右 當詔以婦禮 疏 少義 詔辭自右 地道尊右之義

3. 가례원류(家禮源流), 예기』 「제통세주를 『가례원류』에서 재인용

임금의 오른쪽에서 말미암은 것은 축사를 중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명[: 또는 아뢰다]을 중하게 여길 뿐이다.

由君右焉 非重史也 重命而已

 

4. 근대 사진

 

 

                            종묘를 찾은 순종(동아일보)                               영친왕 종묘전알(서울대박물관)

 

TIP

獨特牲云. 宰自主人之左贊命에서만 이론(異論)이 존재한다. 정현 등은 이를 길흉(吉凶)과 신인(神人)으로 구별하였고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설에 동조했으나, 이는 억설(臆說)이라는 것이 연경재 성해응의 학설이며, 이 학설은 탁견(卓見)으로 보인다. , 석전의 유사근구청행사와 시제의 복일부분에서만 정현의 설에 근거하여 시작할 때 왼쪽에서 고하는 전통이 남아 있으며, 주자 또한 이것을 수용한 것이라고 보인다.

참고로 ()는 오른쪽에서 말미암되 조금 물러나서 명을 전한다(宰自右少退贊命)’는 문장에 근거하여 오른쪽에서 명을 전달할 때는 헌관 또는 주인보다 앞서지 말고 물러나서 명을 전해야 한다.

상변통고(常變通攷)卷之二十三 祭禮 / 時祭 上

()[:()는 아전들의 장()이다.] 주인의 왼쪽에서 명을 전달[贊命]한다. [:()은 도움이며, 전달[]함이다.] 명을 전달할 때 왼쪽에서 하는 것은 신에게 요구하기 위해 바꾼 것이다.

:폐백을 전달[贊幣]할 때는 왼쪽에서 하고, 말을 전할 때[詔辭]는 오른쪽에서 한다.(贊幣自左 詔辭自右) 여기서는 신에게 길일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가 왼쪽에서 명을 전달하니 (이것은) 평상시와 달리 변경된 것이다.

宰羣吏之長. 自主人之左贊命. 佐也達也. 贊命由左爲神求變也. 贊幣自左詔辭自右. 此爲神求吉. 故宰自左贊命變於常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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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대제보존회 의례연구원(방동민·김학경·홍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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