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향교 장의 출신 인사 7명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됐다. 해남향교는 이번 선거에 출마한 장의 출신 후보 11명 가운데 7명이 당선돼 역대 지방선거 중 가장 많은 유림 출신 당선자를 배출했다고 밝혔다. 당선자는 박성재 전남광주통합시의원을 비롯해 해남군의원 민찬혁·민경매·이성옥·박상정·한종천·김동수 당선자 등이다. 이번 결과는 해남향교 유림들이 지역사회에서 쌓아온 신뢰와 공공 참여가 선거를 통해 확인된 사례로 평가된다. 해남향교 장의들은 그동안 향교 운영과 전통문화 계승, 지역 봉사 활동에 참여하며 주민들과 꾸준히 소통해 왔다. 해남향교는 지역 유교문화의 중심 공간으로서 석전대제 등 전통 의례를 이어가고 있다. 또 인성 함양과 예절교육, 지역사회 봉사 활동을 통해 유교 정신의 현대적 실천에도 힘써왔다. 김문재 해남향교 전교는 4일 축하문을 통해 당선자들에게 축하의 뜻을 전했다. 낙선한 후보들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 김 전교는 “당선의 꿈을 이룬 당선인들께 해남향교 전 유림을 대표해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비록 당선의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4명의 후보에게도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당선인들은 앞으로 통합시
소설가 황석영 작가의 대하소설 ‘장길산’ 해남 집필지를 둘러싼 지역 증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해남읍 수성리 일대가 주요 집필지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금강골 해촌서원 인근 옛 부춘동 ‘부춘재’ 왕래 증언이 더해지면서 황 작가의 해남 체류 공간을 체계적으로 고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남군은 앞서 황석영 작가의 ‘장길산’ 집필지로 해남읍 수성5길 26 일대를 안내한 바 있다. 반면 지역 문인 천기철 작가는 실제 거처가 수성6길 13-2였다고 주장해 왔다. 천 작가는 “황석영 작가의 ‘장길산’ 집필지는 해남의 역사”라며 “고등학교 시절 자주 놀러 다녔던 곳으로, 당시 이 집은 ‘대위네 집’으로 불렸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 “황석영 선생이 1978년까지 약 2년간 이곳에 머물며 ‘장길산’을 집필한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수성리 집필지설에 더해 부춘재 왕래 증언도 제기됐다. 부춘재는 해남읍 해리 일대 옛 부춘동에 있는 공간으로, 금강골 해촌서원 인근에 있다. 해촌서원은 최부, 임억령, 유희춘, 윤구, 윤선도, 박백응 등 해남 6현을 배향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문재 해남향교 전교는 지난 5월 24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1970년대 초 황석
해남향교에서는 제54회 성년의 날을 맞아 전통 성년례를 거행하며 지역 청소년들에게 성인의 의미와 책임을 일깨우는 뜻깊은 시간을 마련했다. 지난 달 18일 열린 이번 행사는 우리 고유의 가정의례인 관혼상제 가운데 첫 관문인 ‘성년례(관례·계례)’를 재현한 행사로, 해남군과 해남교육지원청, 해남군선거관리위원회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성년례는 남자의 경우 상투를 틀고 관을 씌우는 ‘관례’, 여자는 머리를 올려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계례’를 통해 성인이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전통 의식이다. 단순한 의례를 넘어 성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우는 ‘책성인지례(責成人之禮)’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해남공업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10명과 여학생 10명 등 총 20명의 학생이 참가해 전통 예법에 따라 엄숙하게 성년례를 치렀다. 참가 학생들은 조상에게 성인이 되었음을 고하고, 참정권 행사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사회인이 될 것을 다짐했다. 특히 성년 대표로 나선 김종민 군과 강민곤 양은 성년선서문 낭독을 통해 “조상님과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손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맹세했다. 이어 “완전한 사회인으로서 정당한 권리에 참여하고 신성한 의무에
이제 사흘 후면 치열하게 경쟁하고 다투었던 선거의 막이 내린다. 국민의 선택에 따라 새로운 정치 질서가 시작되고, 새로운 시대가 펼쳐질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의 갈등과 대립은 끝나고, 이제는 통합과 책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떠올리게 되는 말이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으면서도 여러 별들이 그 주위를 공손히 따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덕(德)은 단순한 선행이나 도덕적 품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옛 학자들은 “덕이란 도(道)를 실천하여 마음속에 얻어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즉 올바른 길을 따르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 덕이다. 정치는 강압과 탄압, 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정치는 패도(霸道)에 불과하다. 진정한 정치는 인(仁)을 바탕으로 한 덕치(德治)여야 한다. 백성들이 두려워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스스로 따르게 만드는 정치가 바로 공자가 말한 이상적인 정치다. 공자가 북극성과 별들을 비유한 것도 이러한 의미일 것이다. 중심이 바르면 주변이 자연스럽게 질서를 이루고, 지도자가 덕을 갖추면 백성들은
해남 서림공원 단군전에서는 매년 개천절이면 단군성조를 기리는 제향이 엄숙히 이어진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뜻을 되새기고, 민족의 시원을 기리는 이 의식은 지역을 넘어 우리 모두의 정신적 뿌리를 확인하는 자리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그 단군은 과연 ‘진짜’인가? 지금 단군전에 모셔진 존영은 모사본이다. 해남향교에 보관된 것 역시 모사본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모든 것의 출발점에는 1914년 이종철 선생이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가져온 단군 존영이 있었다. 폐허 속에 방치돼 있던 그 존영은 마을 제향의 중심이 됐다. 광복 이후에는 공적 공간으로 옮겨졌고, 오늘의 단군전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처음의 그림’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확인된 기록은 없다. 언제 훼손됐는지, 언제 사라졌는지, 누가 관리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다만 1950년대 어느 시점, 훼손된 원본을 대신해 모사본이 제작됐다는 증언만 전해질 뿐이다. 이쯤 되면 단순한 아쉬움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분명한 공백이다. 단군 존영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민족의 기원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더구나 북한 지역에서 유래해
해남향교는 지난 6일 금성사에서 창녕성씨 선현 6인의 위패를 모신 제향을 봉행했다. 제향 대상은 성삼문, 성의, 성개, 성석용, 성여완, 성담수 등이다. 금성사는 창녕성씨 집성촌인 명금마을에 자리하고 있으며, 창녕성씨는 고려시대 호장을 지낸 성인보를 시조로 한다. 문헌에 따르면 성인보는 고려 명종 때 사람으로, 고종 때 창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명금마을은 뒷산인 금성산의 형상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닮아 ‘명금(鳴琴)’이라 불렸으며, 현재는 ‘명금(明今)’으로 표기한다. 배향 인물 가운데 성삼문은 조선 전기 대표적 충신으로,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처형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그는 계유정난 이후 수양대군에 맞서 단종 복위를 추진하다 발각되어 부친과 아들들까지 함께 극형을 당했다. 이번 제향에는 김문재 전교와 김장균 원장이 참석했으며, 윤광천 전 전교가 초헌관을 맡았다. 아헌관은 김상운, 종헌관은 김인봉이 맡았고, 집례·축관 등은 해남향교 유림이 봉무했다. 의식은 전폐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망예례 순으로 진행됐다. 제향 후 김장균 원장은 “헌관과 제관, 그리고 본손들의 정성 덕분에 제향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내년 제향 때
해남향교가 지난 20일 해촌서원에서 해남의 6현을 기리는 제향을 봉행했다. 이날 제향은 최동섭 원장의 주재로 진행됐다. 초헌관은 박용진, 아헌관은 류효식, 종헌관은 최갑규 원로가 각각 맡았다. 제집사는 해남향교 유림들이 분임해 전통 예법에 따라 의식을 진행했다. 제향은 초헌관의 분향과 폐백으로 시작하는 전폐례를 시작으로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망료례 순으로 이어졌다. 최동섭 원장은 공포식에서 “해남의 자랑인 6현을 모신 해촌서원에서 향사제를 봉행하게 돼 뜻깊다”며 “참제에 수고한 제관들과 문중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민성배 유도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전통 유교문화 계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민 회장은 “지역 정신을 지키는 데 해촌서원의 역할은 크다”며 “앞으로도 유림이 중심이 돼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해 나가자”고 밝혔다. 해촌서원에는 최부, 임억령, 류희춘, 윤구, 윤선도, 박백웅 등 해남 출신 6현이 배향돼 있다. 서원은 1652년 임억령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뒤 여러 차례 추가 배향을 거쳤다.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으나 1901년 재건됐다. 이후 1922년 박백웅이 추가 배향되면서 현재의 6현 배향 체계를 갖
전통 유교 의례인 문묘배향이 단순한 학문적 평가를 넘어 정치적 산물이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민성배 해남향교 유도회장은 지난 17일 해남향교 충효관에서 ‘문묘배향의 변천사’를 주제로 강연을 열고, 문묘가 종묘와 함께 왕조의 정통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상징하는 핵심 공간이라고 밝혔다. 그는 문묘의례를 “유교 정치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국가 의례”라고 규정했다. 민 회장에 따르면 문묘배향은 고려시대에도 이루어졌으며, 설총·최치원·안향 등이 공자와 함께 배향됐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배향 기준은 더욱 복잡해졌고, 학문적 업적뿐 아니라 정치적 입장과 왕실과의 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 아래 문묘를 국가 사전체계에 편입시키고, 왕실과 사림 세력 간의 협의 속에서 배향 인물을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색·이숭인·권근 등 초기 유학자들은 배향 대상에 오르지 못하기도 했다. 사림 세력이 성장한 중종대 이후에는 정몽주가 처음으로 문묘에 배향됐고, 이어 선조대에는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 등 이른바 ‘오현’의 종사가 추진됐다. 다만 당시 사림 내부의 분열로 결정이 지연되다가, 광해군 2년에
해남독서인문학교 입학식에서 속수례가 진행되고 있다. 전통 의식과 인문 교육이 어우러진 ‘해남독서인문학교 입학식’이 지역사회 속 의미 있는 배움의 장으로 펼쳐졌다. 해남향교 김문재 전교는 전남 해남군에서 전통과 인문 교육을 주제로 해남교육지원청이 운영하는 ‘해남독서인문학교 입학식’에 참석했다. 지난 15일 해남읍 연동마을 땅끝순례문학관 일대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배움의 출발을 알리는 뜻깊은 자리로 마련됐다. 특히 이번 입학식에서는 전통 의식인 ‘속수례’가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스승과 제자가 한자리에 모여 예(禮)와 존중의 가치를 되새기며 단순한 입학식을 넘어 인성 교육의 의미를 더했다. 이날 행사에서 김문재 전교는 축사를 통해 “오늘 뜻깊은 ‘해남독서인문학교’ 입학식에 함께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입학생 여러분의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해남독서인문학교의 비전은 ‘사유와 실천으로 인간다움에 미래다움을 더하는 독서인문학교’”라며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의 방향을 잘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독서는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인문교육은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
국회의사당을 방문한 해남향교 유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지원 의원이 해남향교 유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박지원 의원, “전통을 지켜온 유림의 정신은 우리 사회의 뿌리이자 중심” 임채윤 회장, “고향 떠나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늘 해남과 함께하고 있다” 전통 유림의 가르침을 계승해 온 해남향교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을 찾아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난 10일 해남향교 김문재 전교를 비롯한 유림 40여 명은 서울 성균관 봉심을 마친 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견학을 진행했다. 이날 일정은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상징적 행보로, 유림들이 국가 운영의 중심 현장을 직접 체험하며 시대적 역할을 되새기는 자리로 마련됐다. 국회의사당 본관에 도착한 일행은 지역구 박지원 국회의원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본회의장과 주요 시설을 둘러보며 국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정치가 지역과 국가를 연결하는 가교로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문재 전교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에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며 “이번 방문을 통해 유림들이 국가 운영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며, 전통의 가치가 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