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일은 전국의 지방의회를 찾아다니며 의원들을 마주하는 것이다. 강의장에서 만나는 표정은 제각각이다. 당선의 기쁨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유독 눈에 밟히는 이들은 걱정 가득한 초선 의원들이다. 자신을 뽑아준 시민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4년 뒤 지역을 조금이라도 바꿔놓을 수 있을까 두려워하는 얼굴들이다. 쉬는 시간이 되면 내게 다가와 속내를 털어놓곤 한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당선된 날부터 매일 두렵습니다." 그 질문을 들으면 나는 도리어 마음이 놓인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만 그런 걱정을 하니까.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두려워할 줄 아는 태도, 그게 곧 정치인의 간절함이자 성장의 출발점이다. 질문을 품고 왔다가 답을 찾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의원들을 볼 때마다 실감한다. 정치에도 배움의 표정이 있구나. 사실 지방의원에게는 자격증이 없다. 의사나 변호사는 엄격한 수습 과정을 거치고, 공무원도 임용과 교육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수천억, 수조 원의 예산을 심의하고 주민의 삶을 바꾸는 조례를 만드는 지방의원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 선출된 권력이 된다. 물론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선택보다 더 큰 자격은 없다. 다만 당선은 자격의
나는 일곱 살, 다섯 살 두 아이를 키우는 육아 대디다. 육아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터라 아이들이 하원하고 나면 놀이터 벤치에 앉아 부모들과도 자연스레 모인다.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대화는 늘 비슷하게 흘러간다. “거기 보낸 애들이 다 효과 봤다던데요.” “영어에 코딩까지 보내다 보니 교육비가 한 달에 백만 원이 훌쩍 넘어요.” “안 하면 우리 아이만 뒤처질 것 같잖아요.” 대화는 비슷하게 끝나지만 부모들의 표정은 닮아 있다. 불안과 죄책감이 함께 묻어난다. 저녁 여덟 시가 되면 단지 앞 도로에는 노란 학원버스가 줄지어 서고, 창밖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다음 수업으로 향한다. 학원가 골목에는 밤 열한 시가 넘어도 건물 간판에 불이 꺼지지 않는다. 만 네 살, 다섯 살짜리를 위한 영재원 입학 대비 과정이 성업 중이고, 그 골목을 채운 아이들 중 상당수가 아직 초등학생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입시 경쟁이 고등학교를 넘어 초등학교로, 유치원으로, 급기야 만 네 살짜리 아이의 일상으로까지 스며든 것이. 우리 세대도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밤 열한 시, 열두 시까지 교실에 붙잡혀 있었지만, 그것은 적어도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의
온종일 진상 민원을 넣는 학부모로부터 시달리다가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넷플릭스를 켠 선생님을 상상해보자. 화면 속 나화진이 진상 학부모를 응징하는 순간, 오랫동안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교실에서 느꼈던 무력감, 민원 앞에서 참아야 했던 모멸감,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은 통쾌함이었을 것이다. 그 통쾌함이 큰 만큼 우리 교실이 무너졌고 교실을 지켜온 사람들이 지쳐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잠깐 멈춰야 한다. 드라마는 선한 학생과 악한 학생, 천사 같은 교사와 악마 같은 학부모로 세상을 나눈다. 선과 악이 선명할수록 응징의 쾌감은 극대화된다. 그러나 악당이 지목되는 순간, 정작 우리가 진정코 물어야 할 것들은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진다. 교실은 그저 이 사회가 만들어낸 거울일 뿐인데, 우리는 거울에 등장한 얼굴에 손가락질하며 통쾌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교육의 기본이 되는 사회구조는 해방 이후 전쟁과 분단, 초압축 성장을 거치며 온몸에 하나의 명령을 새겼다. 이겨야 산다. 서울로 가야 하고 명문대에 들어가야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다. 학벌이 한 사람의 가치를 결정짓는 구조 속에서 학교는 서서히 배움터가 아
2036년의 어느 아침. 민진 씨는 커피를 내리며 자신의 AI 비서에게 묻는다. "어젯밤 우리 동네 어린이집 문 닫는 문제, 어떻게 됐어?" AI 비서가 답한다. "이웃들과 밤새 의논했어요. 처음엔 그냥 받아들이자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다른 어린이집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생각이 바뀌었어요. 동네 공공돌봄시설로 바꾸자는 안이 가장 많은 동의를 얻었습니다." 민진 씨는 잠든 사이 자기 동네의 결정에 참여했다. 누구도 그녀를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2026년 오늘의 민진 씨는 그렇지 못하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딱 일주일. 동네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사는 동네 어린이집에 문을 닫는다는 공문이 붙었다. 아이를 키우는 민진 씨에게는 당장 오늘의 일이다. 어린이집 폐쇄에 반대하고 싶었지만, 결정 과정에서 어디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말한다고 해서 바뀔 것 같지도 않았다. 선거 때 그렇게 문자를 보내던 의원들에게 이 문제로 연락해 봤지만 답이 없다. 왜 이럴까. 이번 선거의 속을 들여다보면 답이 보인다. 투표도 없이 당선이 확정된 사람이 전국에 513명. 후보가 한 명뿐이라 경쟁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당선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