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0일 거행된 심산 김창숙 선생 추모제에서 초헌관 서정기 성균관장이 헌작을 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 유교역사의 위상을 높인 심산 김창숙 선생을 기리는 추모제가 52주기 기일인 지난 5월10일 서울 수유동 소재 심산 김창숙 선생의 묘역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성균관(관장 徐正淇)이 유도회총본부, 성균관대학교, (사)심산선생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주최하고 국가보훈처, 강북구청, 서초구청, 광복회, 독립기념관, 의성김씨대종회가 공동으로 후원한 이날 추모제는 당일 배부된 안내문에 따라 헌관은 초헌관 서정기 성균관장, 아헌관 이종목 유도회총본부 전 회장직무대행, 종헌관 김윤철 의성김씨 대종회장이 맡았자. 제집사는 집례 최성종 성균관 전례위원장, 축관 김동목 성균관 전례위원, 알자 서정택 전례위원, 집사 황원일·안도섭 성균관 유교동문회원, 사세 박홍양 성균관 유교동문회원이 담당했다. 제례 순서는 묘전제의 격식에 따라 초헌관이 점시진설을 하고, 삼상향과 땅에 술을 붇는 강신례, 술을 올리는 초헌례와 축문을 읽는 독축,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례,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종헌례를 하고, 음식을 권하는 유식례, 예를 마치는 절차인
성균관 대학교 졸업식 2월 말과 3월 초는 졸업과 입학의 시기이다. 수년간의 노력을 마무리 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의식을 통하여 학생은 마음을 가다듬고 이러한 의식을 통해 가족과 공동체는 다시 한 번 결속했다. 그리고 의례를 통하여 유교사상을 사회 저반까지 깊이 심었다. 우리 전통의 입학과 졸업 나아가 학교를 떠나 새롭게 맞이하는 사회생활에서의 의례와 풍속을 알아보자 - 편집자 주 - 작은 졸업식 풍속 - 서당 책걸이 - 조선시대 아이들은 대부분 서당에서 교육의 첫 걸음을 뗐다. 서당은 향촌 사회에 생활근거를 둔 사족과 백성이 주체가 되어 설립한 초등교육 기관으로 계급사회인 조선에서 사농공상의 차별이 없이 누구나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대중교육기관이었다. 사대부들이 자신의 집안에서 자제들과 제자들을 소위 문도제(門徒制)와는 분명히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서당의 훈장은 식사, 잠자는 시간까지 하루 24시간을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훈장은 부모를 대신하여 하루 종일 학문뿐만 아니라 사람됨을 가르쳤으므로 군, 사, 부 일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서당을 거쳐 서기(徐起) 송익필(宋翼弼), 홍세태(洪世泰) 같은 낮은 신
고흥향교가 교육활동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고흥향교(전교 공윤필) 는 지난 2월20일 생활관 준공식을 가졌다. 고흥향교 생활관은 군비 4억3천여만 원을 들여 2013년 10월부터 3개월간 공사가 진행돼 이날 준공을 한 것이다. 이번 준공식은 박병종 고흥군수, 국회의원, 도의원, 군의원, 유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생활관은 면적이 109㎡로서 지역유림들의 행사 및 회의공간 등 다목적으로 이용될 예정이다. 박병종 고흥군수는 "생활관이 인성을 기르고 가르치는 인성 교육, 도덕 교육의 중심 역할과 함께 우리 전통문화가 더욱 계승 발전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한편, 고흥향교는 지난 1985년 2월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었으며,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내·외삼문, 제기고, 교직사 등이 있다.
호남 항일 의병장의 대미를 장식한 형제 장수 김원국과 김원범은 광주에서 태어나 1906년 무등산에서 300명의 의병을 규합하여 의병을 봉기한다. 형인 김원국 장군이 의병 대장이었고 동생 김원범은 선봉장이 되어 맹위를 떨치고 이듬해인 1907년 9월에는 호남의병장의 거목인 기삼연 의병부대에 합류하고 같은 해 12월에 김준과 합진하여 일본군 4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둔다. 이듬해인 1908년 7월 김원범은 전해산 의병장과 함께 대동창의단을 조직하고 중군장으로서 영광 불갑산, 장성 동화, 담양 한재, 함평 원야 등 여러 지역에서 활약한다. 9월에는 김원국이 김원범을 따라 선봉장이 되어 100여명을 거느리고 전남 나주, 함평, 광주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최후의 호남의병장 그러나 이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호남의병을 초토화시키려는 일본군의 대대적인 탄압작전은 의병부대를 사방에서 압박하게 된다. 1909년 1월 일본군의 기습으로 광주 전투에서 조경환 의병장이 전사하고 김원범은 체포된 후 자결 순국한다. 아우의 죽음에도 김원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김원국은 아우가 체포된 이후 의병을 수습하여 의병대장이 되었고, 나주향교 유림들에게 격문을 보내어
문경향교(고영조 전교) 김해향교(공기옥 전교) 무장향교(관천기 전교) 순흥향교(권용학 전교) 고부향교(김동균 전교) 가평향교(김종구 전교) 보은향교(나대찬 전교) 남포향교(박성협 전교) 성주향교(송정근 전교) 영천향교(이규택 전교) 석성향교(이재선 전교) 연일향교(이태암 전교) 청도향교(장심재 전교) 충주향교(정태익 전교) 평택향교(최철주 전교)
다문화 가정교육 시간에 전통 다례 체험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경산향교(전교 鄭在復)는 1390년(공양왕 원년)에 창건되었으며, 1550년 현령 박세린(朴世麟)이 중수했다. 시간이 흘러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향교를 1633년 현령 박창(朴敞)이 중수하였으며, 1681년에 현 위치로 이건했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고, 1862년에는 기와 보수, 1911년에는 경산공립보통학교(慶山公立普通學校)를 설립할 당시 부지의 일부를 학교에 제공함에 따라 명륜당과 동서재를 해체했다. 그 후, 1919년 대성전 서편에 모성당(慕聖堂)을 신축했다가 1946년 다시 동편으로 이건했으며, 현재는 이 건물을 명륜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향교의 대성전삼문(大成殿三門)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5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산향교는 현재 지역의 역사?문화자원과 특산품, 인적자원을 활용한 생애 단계별 맞춤형 체험코스로 타시군과 차별화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하여 도시민과 농민들의 화합·유도를 원활하게 이뤄내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지역의 문화자원인 향교를 활용하여 사라져 가는 선조들의 지혜를 접목한 예절 및 인성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는 경산향교의 열공중을
김두봉 전교는 40여년의 유림 생활을 바탕으로 향교의 지역사회 역할을 강조해 왔다. 따라서 김 전교는 기장향교 유림들과 함께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다음은 김두봉 전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김두봉 전교님의 주요 경력과 유림으로서 활동사항은 무엇입니까? ▶ 향교장의로 임명된 지 40여 년이 넘었으며 현재 생존해 있는 기장향교 장의 중 서열 1번이다. 그리고 장의를 거쳐 유도회지부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부산지역 전교협의회장으로 있으며 부산시향교재단평의원, 감찰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 기장향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향교 <힐링사업>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우리 향교가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급의 향안(1498년, 무오년 정월)에 의하면 각 문중의 활발한 유림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껏 그 정신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현재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을 모토로 하여 향교방문을 활성화하여 스토리텔링이 있고 힐링이 되는 전통문화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3~4세의 유아로부터 어른까지 그리고 저 멀리 해외에서도 우리 향교를 방문하여 전
곤양향교(전교 金平洙)는 계사년 추기석전을 9월8일 성대하게 거행했다. 이날 제관은 초헌관 정만규 사천시장, 아헌관 최갑현 사천시의회의장, 종헌관 강정갑 사천교육장, 동서종분헌관은 조봉영과 김윤생, 대축은 정용규 유도회장이 각각 맡았으며 강남덕 유림의 집례에 따라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석전이 끝난 후, 정만규 시장을 비롯해 기관단체장 및 유림들이 유림회관에 모여 점심을 함께 했다. 특히 김평수 전교는 우리 유림이 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인사말에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