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화신으로 불리는 한나라 여태후, TV의 역사 드라마 단골인 조선 왕실의 연산군, 장희빈 등은 왕과 권력을 둘러싼 왕비들의 시기와 질투, 견제와 투쟁이 배경이었다. 임진왜란의 패장 원균 역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지나친 시기심이 비극적 결론의 발단이었다. 그러나 그들만 탓할 일이 아닌 것이 사람은 누구나 시기와 질투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재명 정부의 갑작스러운 중폭 개각으로 장관 후보자들이 발표되자 각각의 적합성 여부를 두고 여론마당이 시끌벅적하다. 그중 가장 관심이 뜨거운 후보는 단연 만 서른여섯 살의 국회의원으로서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된 기본소득당 용혜인 원내대표이다. 앞 문장을 보면 ‘국회의원, 장관, 원내대표’ 등 고위 직책이 무려 세 개나 들어 있다. 더구나 장관에는 ‘지금까지 최연소’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평생에 걸쳐 죽을 애를 써도 셋 중 하나에 오르는 것마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처지가 대부분인데 대체 어떤 운을 타고나면 저렇게나 출세가 가능한지, 정신마저 혼미하다. 그렇지만 로마제국을 이끌었던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등 장군, 집정관, 황제들은 대부분 이삼십 대 젊은 나이에 지도자 반열에 올랐고, 조선의 풍운아 남이
평소 연필 만지기를 좋아해 집에서 한가로이 낙서를 끄적이거나 메모를 할 때 주로 연필을 쓴다. 어렸을 때 심에 침을 묻혀가며 공책에 꾹꾹 눌러 쓰다 짧아진 몽당연필을 볼펜 자루에 끼워 끝까지 썼던 추억이 되살아나고, 지우개로 쉽게 지울 수 있으며, 볼펜 같은 플라스틱 필기구와는 다른 나무의 부드러운 촉감, 쓸 때 사각사각 들리는 소리가 좋아서다. 엊그제 일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보이는 하늘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연필을 들고 노트에 스케치를 시작했다. 중간에 휴대폰 벨이 울려 전화를 받고 나서 다시 나와 계속 그리려는데 연필이 보이지 않았다. 노트 위에다 두었을 테니 밑으로 떨어졌겠거니 주변을 둘러봤는데 없었다. 전화를 받으려고 움직였던 동선을 따라 찾아도 없었다. 그게 발이 붙었나? 귀신이 곡할 지경, 슬슬 오기가 작동했다. 내 오늘 기어이 너를 찾고야 말 테다! 다시 전의를 다지고 예정된 외출을 미루며 집안 구석구석 연필이 숨었을 만한 공간을 뒤집어 탈탈 털었지만 연필은 온데간데 없었고, 때마침 40도를 웃도는 폭염에 온몸이 땀으로 목욕을 했다. 결국 ‘언젠가 때가 되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겠지’ 마음을 달래며 연필 찾기를 포기했다. 그런데 외출을 위
지방에서 조그만 펜션을 운영하는 지인이 엊그제 펜션 시작 이래 최악의 불경기라며 하소연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잦은 만실에 7, 8월 한여름에는 방이 없어 예약을 못 받았는데 올해는 빈방이 더 많다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동네 단골 정육점 사장도 올해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동네 주변을 돌다 보면 닫힌 문에 ‘임대’를 내건 가게가 예전보다 많이 보인다. 동네 장사가 안 된다는 말은 곧 돈을 써야 할 이웃 역시 지갑이 비었다는 말이다. 매스컴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여 직원들에게 수억 원씩 보너스를 뿌린다고 호들갑인데 그저 먼 동네 잔치일 뿐 내 통장에는 신사임당은커녕 세종대왕 한 장 보내주지 않는다. 주가가 단군 이래 최대로 오른다며 6.25 난리는 난리도 아닌 터라 가만히 있으면 나만 바보 되나 싶어 없는 돈 끌어모아 주식에다 걸었는데, 레버리지라는 이상한 놈 때문에 주식 시장이 경마장보다 예측이 어려운 돈 놓고 돈 먹기 도박장이 돼버려, 거름 지고 장에 따라갔던 서민과 취업난으로 허덕이는 청년들만 쌍코피를 흘린다. 주가가 치솟을 때는
공자니 맹자니 노자니 하면 휴대폰은커녕 신문이나 텔레비전, 자동차, 우주선, 컴퓨터 같은 문명 하나 없이 소가 끄는 수레나 타고 다니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관점과 인식이 21세기 인공지능(AI) 시대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 까닭에 한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제목만으로도 너무 섹시해서 그런 사람들 사이를 꽤나 파고들었다. 물론 현대의 관점에서 비판의 요소가 없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죽어야’ 할 정도일까? 삼천 년 전 대륙의 춘추전국시대는 눈만 뜨면 권력 투쟁과 전쟁으로 목숨은 백척간두에 붙어 있었고, 그때도 권세 있는 일자리는 적은데 차지하려는 사람은 많다 보니 출세 경쟁 또한 지금 못지않게 치열했다. 공자마저 뜻을 펴기 위해 여러 나라를 주유했지만 기대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양성하는 ‘사교육’밖에 할 수 없었던 것 아니었는가. 저런 문명의 이기 없이 생사가 엄혹했던 때 무탈한 사회생활의 도구는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대화와 교류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지금보다 훨씬 사람들 간의 처세가 중요했을 그 시절에 지식인들을 위한 필독서가 『논어』였다면 그
‘인생은 바둑판과 같다’고 한다. 오묘한 지적 승부를 벌이는 바둑판은 가로, 세로 각 19줄의 교차점이 361개다. 361점 안에서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한 수 한 수 돌을 놓는다. 장기 역시 90개의 교차점 안에서 각 12개의 장기짝을 가지고 벌이는 두뇌 싸움이라 경우의 수가 만만찮다. ‘소탐대실, 아생연후살타, 사소취대’ 같은 삶의 격언이 말하듯 바둑도 장기도 모두 평소의 실력과 인성으로 승부가 나지 뜻밖의 행운은 작용하지 않는다. 옆에서 훈수 두던 구경꾼이 흥분해 갑자기 판을 엎어버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은 없다’는 어떤 국수의 말처럼 이 세상에 의미 없는 사람 역시 없는 법, 누구의 삶이든 내력을 들여다보면 ‘풍찬노숙, 파란만장, 산전수전공중전’이 들어 있다. 이렇게 인생이 굴곡지는 까닭은 인간은 누구나 공평하게 다가올 미래의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멀고 먼 옛날 조상들은 도대체 알 수 없을 때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거북이 등뼈가 갈라지는 모습이나 별의 움직임 등으로 미래의 길흉화복을 점치려고 노력했다. 그 ‘거북이 등뼈’가 3천 년 넘는 세월을 건너면서 『주역(周易)』으로, 역경(易經)으로 발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금언이 있다.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는 말인데 과거 이와 관련된 자기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벌레의 입장에서 저 문장을 다시 써보면 어떻게 될까?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새에게 잡힌다.’가 된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의견과 판단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아프리카 초원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연약한 초식동물 가젤 무리가 풀을 뜯고 있다. 사람이 보기에는 무척 평화로운 풍경이나 막상 가젤의 눈과 귀는 매우 긴장된 상태다. 저편 숲에 숨어있을 사자가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숲속에 몸을 웅크린 사자 역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루 동안 사냥을 위해 전력 질주할 수 있는 체력은 한정돼있으므로 사냥에 실패하면 그만큼 굶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드디어 사자가 표적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이를 눈치챈 가젤도 잽싸게 도망치기 시작한다. 사자 입장에서는 최소한 꼴등으로 달리는 가젤보다는 빨리 뛰어야 배를 채워 살 수 있다. 가젤 입장에서는 가장 빠르게 뛰어오는 사자보다 더 빠르게 뛰지 않으면 잡아 먹힌다. 둘 중 하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논어 선진편 제15장은 공자의 과유불급에 관한 말씀이다. 자공이 공자께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나은가 여쭈니 ‘자장은 과過하고, 자하는 불급不及하다’고 하셨다. 이에 다시 ‘그럼 자장이 더 낫겠군요?’ 여쭈니 공자께서 ‘과한 것이 불급한 것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하셨다. 대개는 과유불급을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해석하는데 필자는 유猶에 ‘오히려’의 뜻이 있음에 주목해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보다 더 못하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는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상 능력이 조금 모자란 사람보다 넘치는 사람이 사고를 치는 경우를 많이 본 탓도 있다. 충분히 가졌음에도 만족할 줄 모르고 무리한 욕심을 부리다 패가망신을 당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은 물론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유력 권력자나 투자자, 사업가 등이 어디 한둘이던가. 오래전의 전직 모 대통령이 매우 신임하는 측근 참모 셋이 있었다. 그 대통령이 모종의 과제를 던져주면 셋 중 A는 80%, B는 100%, C는 120%를 달성했다. 대통령이 가장 신임한 사람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B였다고 한다. 실제로 A와 C는 정계에서 사라졌지만 B는 화려한 공직 경력을 두루 거치며 지금도 여전히 맹활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