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 유교사회 어른들의 지혜가 담긴 복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원(起源)은 알 수 없으나 복날(伏日)은 지금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여름 더위에 고생하는 몸을 위해 닭, 소, 돼지, 염소, 전복, 장어 등의 각종 보양식을 먹으며 다시 한번 힘을 내자고 다짐하는 날’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굳이 명칭을 ‘엎드리다’ ‘낮아지다’라는 다소 부정적 의미의 복(伏) 대신 ‘이기다’의 승(勝), ‘위로하다’의 위(慰), ‘힘쓰다’의 력(力)을 사용하여 승일(勝日), 위일(慰日), 역일(力日) 등의 긍정적 단어를 사용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지만 여기에 동양 유교사회 어른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예로부터 잘난 척, 이기는 척, 멋 부리는 척하는 외면의 허세에 매몰되기보다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올바르기 위해 애쓰고, 욕심내어 뭔가를 억지로 하기보다는 잠시 숨을 고르며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결국은 몸과 마음을 지키는 근본적인 지름길임을 알았기에 이름 하나에도 그런 의미를 담으려 했다. 따라서 맹렬한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뜨거운 화기(火)의 기운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서늘한 금(金)의 기운인 가을이 찾아오기를 ‘엎드려(
한국 족보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가문의 기록’이라는 협소한 틀에 가두어 이해해 왔다. 이제는 이 거대한 기록유산의 본질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 족보는 단순한 혈통의 나열이 아니다. 수백 년에 걸쳐 수많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기록하고 계승해 온 거대한 집단적 기억장치다. 다시 말해 인간 사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기억하고 관계를 이어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회적 기억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1930년대 전국 2만 8천여 개 마을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그중 절반 가까이가 동일한 성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집성촌(동성촌락)이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동성촌락이 일부 양반층에 국한된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 폭넓게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후기 부계 친족 질서가 확산되고 동성촌락과 문중을 중심으로 한 관계망이 사회생활의 중요한 기반으로 자리 잡았음을 말해준다. 집성촌이 발달한 한국, 족보는 ‘사회적 운영체제’였다 족보 편찬의 일차적 목적은 조상의 가풍을 계승하고, 조상의 덕목을 기리고(尊祖), 서로 화목하고 단결하는 것에 있다. 조선시대 여러 족보 서문에는 북송의 소명윤(蘇明允)의 노인(
동네 후배 한 사람이 로또에 당첨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참 운이 좋은 놈이구나"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저 친구는 평소에 착하게 살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복인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떠오른 말이 있다. “화복무문, 유인자초(禍福無門 惟人自召)” 화와 복에는 정해진 문이 없으며, 오직 사람이 스스로 불러들인다는 뜻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예기치 않은 불운에 마음을 다치고, 뜻밖의 행운에 기뻐한다. 젊은 날에는 삶의 길목에서 만나는 기쁨과 슬픔을 그저 ‘운명’이나 ‘운수’의 탓으로 돌리곤 했다. 나쁜 일이 생기면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라고 원망했고,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은 오롯이 내 노력과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지나온 날들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우연만은 아니었다. 내가 무심코 건넨 말 한마디, 누군가에게 베푼 작은 친절, 반대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내뱉은 날카로운 말, 욕심 때문에 내린 잘못된 선택들이 시간이 흐른 뒤 뜻밖의 결과로 돌아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복도, 화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36개월간 교정시설에서 합숙하도록 한 현행 제도가 다시 헌법재판소의 판단대에 올랐다. 이번 사건은 대체복무의 기간이나 교정시설 근무 자체를 다시 전면적으로 다투기보다, 건강상 이유로 신체등급 4급 판정을 받은 사람에게까지 아무런 예외 없이 장기간 합숙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를 묻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심판과 결이 다르다. 사건 당사자는 2020년 10월 대체역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대체역에 편입됐다. 이후 질병으로 소집을 연기한 채 치료를 받아왔고 2024년과 2025년 세 차례에 걸친 신체검사에서 모두 4급 판정을 받았지만, 현행 대체역 제도에서는 건강 상태에 따라 출퇴근 방식 등 다른 형태의 복무를 선택할 길이 없었다. 일반적인 병역체계라면 신체등급 4급 판정을 받은 사람은 원칙적으로 보충역으로 편입돼 사회복무요원 등 출퇴근 형태의 복무를 할 수 있다. 반면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2항은 대체복무요원이 합숙해 복무하도록 규정하면서 신체등급이나 건강 상태에 따른 별도의 예외를 두고 있지 않다. 당사자는 병무청과 법무부에 자신의 신체조건에 맞는 업무를 맡거나 출퇴근 방식으로 복무할 수 있
보편적 복지의 화려한 구호 뒤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미약한 존재들이 눈물 흘리고 있다. 최근 경기도가 포퓰리즘식 보편 복지 정책의 여파와 심각한 세수 부족으로 재정 파탄 위기에 직면하면서, 당장 생존을 위협받는 취약계층의 복지 예산부터 삭감이 우려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보듬어야 할 복지의 본래 기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기도의 재정 결손 상태는 이미 경고등을 넘어 심각한 위기 수준에 도달했다. 2025년 말 민선 8기 김동연 지사는 2026년 예산을 수립하면서 경기도가 가장 먼저 돌아보고 챙겨야 할 최약자들의 복지 예산 2,500억 원을 대폭 삭감하여 사회적 약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어 민선 9기로 당선된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약자들을 위한 2026년 예산이 8개월분밖에 편성되지 않아 추경을 해야 함에도, 재정 결손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은근히 약자 복지 예산 삭감을 염두에 둔 듯 군불을 지피고 있다. 이처럼 장애인 생존권 보장, 어르신들의 일상생활 지원, 발달장애인 지원센터, 성폭력 상담소, 자살예방센터 등 도민의 가장 약한 고리를 지탱하던 현장 사업들이 예산 소진으로 중단되거나 서비스가
경찰이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의혹에 강제수사로 들어가면서, 2년 가까이 이어진 대한축구협회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6일 충남 천안 대한축구협회와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 등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전력강화위원회와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관한 자료를 확보하고 관련자들의 진술과 전자정보를 대조하고 있다. 수사의 중심은 2024년 홍 전 감독 선임 과정이다. 정몽규 당시 대한축구협회장과 이임생 당시 기술총괄이사 등 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전력강화위원회와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단순히 협회 내부 규정을 지켰느냐를 확인하는 데 그치는 수사가 아니다. 감독 후보를 검토하고 추천하는 과정에서 공식 기구의 권한이 실제로 보장됐는지, 최종 의사결정이 어떤 경로를 거쳐 이뤄졌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에 가깝다. 그 과정까지 오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정 전 회장을 둘러싼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관련 고발은 2024년부터 이어졌다.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을 둘러싼 고발에 이어 같은 해 7월 홍 전 감독 선임 이후에도 관련 고발이 잇따랐고, 사건은 종로경
※ 필자인 김춘봉 경기도장애인홍보대사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이다.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는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나 식당을 자주 찾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동네 카페와 병원, 식당, 심지어 주민센터에서까지 카운터 직원의 목소리가 하나둘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훤히 빛나는 네모난 화면, 무인 키오스크다. 비장애인에게 키오스크는 편리하다. 줄을 기다리거나 직원과 이야기할 필요 없이 손가락 몇 번이면 주문과 결제가 끝난다. 기술은 사람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선물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반대다. 키오스크가 늘어날수록 내가 빼앗긴 것은 오히려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유’였다. 휠체어를 타고 키오스크 앞에 서면 화면 위쪽 메뉴는 손이 닿지 않는다. 카드 단말기조차 높아 결제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효자손’을 가지고 다닌다. 다른 사람은 등을 긁을 때 쓰지만, 나는 손이 닿지 않는 키오스크 화면을 누르기 위해 사용한다. 가끔 창피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것 좀 눌러주세요”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씁쓸하다. 세계적인 디지털 강국에서 장애인이 커피 한 잔을 혼자 주문하기 위해 효자손을 들고 다녀야 한다
한국만큼 족보 문화가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한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에도 족보가 있고, 한자 문화권인 일본과 베트남에도 있으며 유럽에도 계보 기록이 존재한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것처럼 “A는 B를 낳았고, B는 C를 낳았고…”와 같이 동일한 문장 구조를 반복하며 혈통을 기록한 단순한 계보도는 여러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문중 구성원을 거의 빠짐없이 동일한 형식과 방식으로 기록하고, 한 가문 전체의 인명록을 데이터베이스처럼 수백 년 동안 지속적으로 갱신하고 보완해 온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족보는 마치 국가의 공적 기록인 주민등록처럼 문중 구성원의 계보와 관계를 체계적으로 담아냈다.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으로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철폐되고, 1909년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 성씨와 본관이 행정적으로 등록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족보 편찬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족보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20여 년 동안 조선총독부 출판 허가 건수에서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족보(族譜)는 성리학적 유교 질서와 그 핵심축인 종법제도(宗法制度)라는 사회 규범을 시각화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평가 방식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교육 현장의 중심에 섰다. 절대평가 과목 확대와 서·논술형 문항 도입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익숙한 제도가 바뀌면 걱정이 앞서는 것은 자연스럽다. 어떤 문제가 출제될지, 기존 공부 방식이 통할지, 사교육 부담이 더 커지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이번 변화는 시험 문제의 형식만 바꾸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교육이 무엇을 가르치고, 학생에게 어떤 능력을 요구할 것인지 되묻는 계기가 돼야 한다. 오랜 시간 입시는 정답을 빠르게 찾고 실수를 줄이는 경쟁에 가까웠다. 한두 문제 차이로 등급이 갈렸고,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이해했는지보다 다른 학생보다 몇 점을 더 받았는지를 먼저 살폈다.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개인의 성취보다 순위가 앞선다. 학생이 충분한 학업 능력을 갖췄더라도 다른 학생보다 점수가 낮으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배움의 과정이 성장보다 비교에 매이기 쉬운 구조다. 절대평가는 정해진 성취 기준에 학생이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를 살피는 방식이다. 제도가 제대로 설계된다면 남을 앞서는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보완하는 학습으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농담의 소재가 아니다. 피해자가 살아남기 위해 견딘 시간을 웃음거리로 바꾸는 순간, 정치는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잃는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지옥문이 열렸다’ 간담회는 범죄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형사사법제도의 허점을 따져 묻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도 참석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맞은편에 앉은 진종오 의원에게 말했다. “진종오 의원님, 돌려차기 한판 하지?” 진 의원은 자신은 발보다 손을 더 잘 쓴다는 취지로 맞장구쳤다고 한다. 피해자는 현장에서 이 말을 듣지 못하고 뒤늦게 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문제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듣고 있을 때만 조심하는 태도를 우리는 예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유가에서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를 삼가는 ‘신독(愼獨)’을 군자의 근본으로 삼았다. 피해자가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면 문제는 오히려 더 무겁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여긴 순간에 드러난 말이 그 사람의 평소 품격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자리는 ‘돌려차기’라는 범죄로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은 피해자가 용기를 내 참석한 자